보노 스프 선물세트 책 이외

그루폰으로 보노 선물세트를 샀습니다. 딱히 엄청 싸게 팔아서 산 건 아니고 최근 아침을 먹을 시간이 없어서 자주 거르고는 하는데

스프라면 대충 빨리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 오늘 아침에도 먹고 나왔는데 안 먹는 거 보다는 훨씬 나은 듯 합니다.

구성품. 콘스프 2개, 포르치니 버섯 스프 2개, 옥수수알 그대로 콘스프 2개, 체다치즈 스프 2개, 포타주 2개에 보노 스프 컵 2개입니다.

...결국 콘스프만 4개인 기분인데. 게다가 콘스프 옥수수의 원산지가 다 일본이야... 무섭게스리...

치즈가 땡기던 아침이라 처음으로 먹은 건 체다치즈 스프. 스프 곽을 열면 저런 라면 스프 봉지 같은 것이 세 개 들어있습니다. 그간

5인분이 걍 통째로 든 오뚜기 스프만 먹어서 저런 분할 포장이 편하고 좋더군요. 따로 끓일 필요 없이 끓는 물만 부어도 되는 조리법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추운 겨울의 아침은 라면조차 끓이기 귀찮은 법이니까요.

남에게 선물할 것도 아니고 내가 다 먹을 건데 왜 선물세트로 샀느냐? 바로 컵 때문이지요. 동일 품목을 따로따로 사는 게 1900원이 더 싸니

결국 보노 스프 컵 2개를 1900원에 산 셈입니다. 돈 주고 샀으니 스프는 꼭 이 컵에 먹어야지!

그래서 보노 컵에 만들어 먹었습니다. 물을 150ml 넣으라던데 밍밍할까봐 좀 적게 넣었더니 괜찮네요. 앞으로도 계속 적게 넣어야지.

체다치즈맛만 먹어봤는데 의외로 확 풍기는 치즈향이 만족스러웠습니다. 맛도 짭쪼롬한 것이 꽤 괜찮더군요. 다만 서너 숫갈이면 사라지는

양이 약간 아쉽습니다. 내일은 2개를 한 번에 넣어 먹어야겠어요.

겨울이라 추워서 그런지 15분만 빨리 일어나면 밥을 먹는데... 먹는데... 먹는데... 귀찮아... Zzz.... 의 연속이라 아침을 거르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먹은 스프라서 저의 게으름과 식욕을 동시에 만족시켜주었습니다. 물론 부지런한 분들께서 제대로 차려드시는

아침보다는 당연히 못하겠지요. 그래도 법을 거르는 것보다는 든든하니 아침 식사로서 나름대로 괜찮은 선택지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일곱 도시 이야기

'은하영웅전설'은 작가 '다나카 요시키'의 대표작이기도 하지만 저의 SF입문작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최초로 사서 모은 책이기도 합니다.

용돈을 받지 않고 세뱃돈 등의 수입도 전부 어머니께 고분고분 넘기는 아이였던지라 책을 살 돈이 없어서 갖고 싶은 게 있을 땐 마냥

떼를 쓰는 방법 밖에 없던 시절의 수집이라 어머니께서는 다나카 요시키를 싫어하셨지요... 그래도 콩을 안 먹겠다고 떼를 썼을 땐 마구

때려가며 먹이셨던 어머니인데 책만큼은 못 이기는 척 결국 사주셨으니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의 가정교육은 꽤나 훌륭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음, 그런데도 저는 어떤 의미로든 전혀 큰 사람이 되지 못했으니 그건 다 제가 원인이군요. 이럴수가! 하하하! 하하... ㅜㅜ

'은영전'이 화제로 나오면 역시 일단 제국파인지 동맹파인지 묻고는 하는데 저는 제국파입니다. 그렇지만 라인하르트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맨날 얀 - 을지서적으로 입문한지라 '얀 웬리'가 더 정감이 가네요 - 한테 얻어맞고 다른 사람들 때려잡아 화풀이하는 걸로 보여서

정이 안 가더라고요. 로이엔탈이나 미터마이어는 둘 다 좋아합니다. 특히 미터마이어 쪽은 그가 아내와 결혼하는 에피소드를 읽고 완전히

팬이 됐지요! 그러나 제가 제국파를 자처하는 진정한 이유는 바로 키르히아이스 때문입니다! 키르히아이스 너무 좋아! 2권에서 죽어서

더 좋아! 키르히아이스 덕분에 이후 어느 소설을 봐도 단명하는 인물들에게 호감도를 1점씩 더 주고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미인박명!

...이건 아닌가?


'일곱 도시 이야기'는 '은영전' 집필 말기이자 '아루스란 전기' 집필 초기인 86년부터 90년 사이에 쓴 연작 단편 모음입니다. 은하 단위의

스케일을 보였던 '은영전'과 달리 '일곱 도시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180년 후의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구의 지축이

변동하는 '대전도'가 일어나 그간의 문명이 황폐해지고 달에 건설한 월면도시만이 살아남아 인류의 존속을 유지하다가 지구의 환경이

안정되자 인류는 다시 어머니 별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일곱 개의 도시를 세워 뿌리를 다시 한 번 내리지요. 월면도시에서는 그러한

일곱 도시 사람들에게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항공 및 우주 기술을 제공하지 않고 고도 500미터 이상의 상공을 나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고 파괴하는 '올림포스 시스템'을 만듭니다. 허나 그 후 월면기지는 의문의 질병이 유행하여 전멸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유로우나 하늘을 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특이한 일곱 개의 도시들은 이제 서로가 서로를 한 손에 꽃을 들고 다른 손에 칼을 든 상대로

보며 긴장된 삶을 이어갑니다.


일곱 도시 간에 일어난 5개의 전투를 그리고 있는 '일곱 도시 이야기'는 마치 농축시킨 '은영전' 같은 맛이 납니다. 지저분한 정치가들과

그들에게 휘둘리는 군인들,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이 전쟁이라는 결과가 되고 끊임없이 희생을 거듭하는 광경을 그려내고 있지요.

책 한 권, 단편 다섯 개의 분량에 이러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진행이 아주 빠르고 구조가 간결합니다. 다양한 복선이 깔리는 근사한

거미줄 같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힘이 있고 재미도 있어 읽는 맛이 꽤 괜찮습니다. '다나카 요시키' 특유의 테이스트라고 불러도 좋을만한

심각한 상황을 농담으로 그려내는 것이나 아닌 척 하면서 신랄한 표현들이 페이지마다 가득해서 팬에게는 '다나카 요시키 맛 과자 세트'

같이 보일 지경입니다. 다만 마냥 장점만 있는 소설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팬들의 구미에만 딱 맞는 소설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빠르고 간결한 이야기는 단순한 구조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는데다 주역 격인 인물 세 명 '케네스 길포드', '알마릭 아스발',

그리고 '유리 크루건'은 모두 서로 너무나 흡사한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강도'의 차이가 있지 '개성'의 차이가 있다고 하긴 힘드네요.

비슷비슷한 캐릭터가 나오는 비슷비슷한 다섯 개의 단편 모음집이라 저를 포함한 팬들에게는 '맛있는 이야기가 다섯 개나 있어!'지만

팬이 아니라면 '에, 맛이 똑같은 이야기가 다섯 개 있네.'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니까 '일곱 도시 이야기'로 아예 장편을 썼음 좋았을텐데요. 아니, 지금이라도 썼음 좋겠는데. 기왕이면 창룡전도 좀 완결내주고...

밀실 · 살인 - I see nobody

길에는 아무도 안 보여요, 앨리스가 말했다 - I see nobody on the road, said Alice. <'거울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옛날 농담 중에 이런 게 있지요. '없는 것'이 '없는' 가게에 '없는' 것은? 답은 '없는 것'. 철지난 시시한 농담입니다. 이 농담처럼 위의

'앨리스'가 '본 것'은 뭘까요? 네, 'nobody', '아무도 없다'가 되겠지요. 소설 '밀실 · 살인'은 이와 같은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작가 '코바야시 야스미'는 '완구수리자'라는 호러 소설로 수상을 하며 데뷔를 했습니다. 이후 호러는 물론 SF, 미스터리까지 영역을 넓혀

다양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국내에 소개된 소설은 이 '밀실 · 살인'이 유일한 듯 합니다만 일본에서는 이미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다시 나오는 후속작도 발표가 된 상태라고 하니 앞으로 작가의 소설을 더 많이 접할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밀실 · 살인'은 밀실살인이 아닙니다. 밀실과 살인 사이에 점이 하나 찍혀있지요. 그 이유는 피해자가 밀실에 있었으되 시체는 밀실

밖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독자인 저는 물론이고 소설 속의 탐정조차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라고 

생각했지만 사건의 정황은 이렇습니다. 네 남녀가 별장 2층에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 남편의 내연녀, 그리고 남편의 변호사.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에게 아내는 거액의 위자료를 청구합니다. 남편은 온갖 괴변을 늘어놓으며 위자료 지급을 거부하고 아내는 그런 남편을 비웃듯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잠급니다. 그리고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아내의 비명소리가 들립니다. 남편은 얼른 아내의 방문을 두드리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습니다. 변호사가 옆 방의 창문을 통해 방 안의 상황을 살펴보자고 제안하고 두 사람은 창고로 쓰는 옆 방의 문을

열려고 하나 역시나 잠겨 있습니다. 그 다음 방인 자신의 방에 들어가 창문 너머 아내의 방을 보려던 남편은 창문 아래에서 눈밭에

널부러진 아내의 시체를 보게 됩니다. 남편은 변호사와 함께 아내에게 달려내려가고 내연녀는 어쩔 줄 몰라 가만히 있습니다. 1층으로

내려가니 역시나 아내는 죽은 게 확실합니다. 얼어붙은 얕은 호수를 깨고 얼음물에 반쯤 잠겨있는 그녀의 시체는 남편을 원망하는 것만

같습니다. 2층으로 돌아온 남편과 변호사는 닫힌 아내의 방문을 부수어 엽니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단단히 잠긴 창문이 들어옵니다.

아내는 자살했을까요? 그렇다면 창문으로 뛰어내려 죽은 뒤 다시 창문을 잠궈야만 합니다. 살해되었을까요? 그렇다면 범인은 어디로 

나갔을까요? 창문? 안 쪽에서만 잠기는 방식이라 열고 밖으로 나갔다면 잠그는 게 불가능합니다. 문? 밖에는 목격자가 있습니다. 비밀문?

그런 건 애초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고? 대체 어떤 사고가 밀실 안의 피해자를 창 밖으로 내던질 수 있겠습니까. 밀실이 존재하고 

죽은 사람이 존재하나 밀실 안에는 죽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것이 '밀실 · 살인'입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책을 읽으면 진상을 알 수 있습니다. 작가 소개에서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고 있다 말했는데 이 소설에도 그 특징이 여실히 묻어납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밀실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 같은 전개를 보이다가 느닷없이 영산에 봉인되었던 마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별장 근처의

마을에 사는 노인은 별장이 신사를 허물고 세운 것이며 허물어진 신사는 본디 마물을 봉하고 있었다는 말을 합니다. 탐정 조수 '요츠야 레이코'는

그 말에 코웃음을 치지만 피해자의 남편 '니시다 타츠히코'의 서재에서 발견된 신사의 기원을 그려놓은 고문서에는 세 남녀의 치정극과

그 와중에 죽은 여인, 그리고 죽은 여인에게 빙의하는 기괴한 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마치 방금 벌어진 사건처럼 말이지요.

남편과 내연녀, 그리고 아내 세 사람의 치정극과 아내의 죽음. 그렇다면 아내는 봉인이 풀린 마물에 씌여 귀신이 되는 걸까요? 중반의

이러한 호러블한 분위기는 마지막에 다시 한 번 변모합니다. 탐정이 등장하여 사건의 진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해내는 것이지요. 하지만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해결부분과는 다릅니다. 탐정 조수가 지닌 과거의 트라우마, 그리고 그녀만이 볼 수 있는 'nobody'. 소설은 마지막에

또 다시 굳어지려는 자신의 장르를 탈피하고 뱀처럼 스물스물 기어 사라집니다. 이러한 다각적인 변모는 꽤 신선한 재미를 제공합니다.

사실 호러와 미스터리의 조합은 아주 흔한 편인데 거기에 주인공의 심리까지 더해져서 그간의 호러 미스터리보다 더욱 색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트릭 또한 알고 보면 시시하고 경찰이 놓치지 않을 법한 증거가 남을 듯도 하지만 그래도 꽤 설득력이 있습니다. 밀실과

시체가 다른 장소에 있다는 점 또한 빼놓지 말아야 할 창의력이라 여겨집니다.

다만, 역시나 아쉬운 것은 장르의 변화에 주어진 밸런스입니다. 미스터리와 호러의 밸런스가 그닥 좋지 않습니다. 본격 밀실추리로

시작하는 소설은 조수 '요츠야'와 탐정의 만담 같은 가벼운 분위기였다가 뜬금없이 호러의 영역이 침범합니다. 허나 이 호러는 제 자리를

꽉 잡지 못하고 다시 추리에 자리를 비켜준 뒤 가끔 남편 '타츠히코'의 기행에 살짝 모습을 비추다가 다시 사라지고는 합니다. 그러나

'타츠히코'의 기행이래봐야 아무리봐도 호러가 아닌 히스테리의 영역 정도에 머물러 별로 무섭지 않습니다. 주인공의 트라우마 역시

호러의 부분에 접점이 있어 일부러 분량을 조절한 듯 싶지만 결국 미스터리에 호러라는 향신료를 약간 친 정도에서 머물었다는 인상이

남습니다. 마지막에 알게 되는 주인공의 트라우마의 정체 역시 조금 비중이 적은 감이 있습니다. 좀 더 분량을 들여 설명했다면 한층

효과가 컸지 않나,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결합으로 시종일관 신선함을 제공하려는 소설 '밀실 · 살인'. 하지만 세 가지 맛이 절묘하게 섞인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단지 초콜렛과 아몬드를 적당히 송송 박아놓은 바닐라 맛이라는 느낌이 더욱 강하다는 점에서 재미있고 참신할 뻔 했으나 결국 약간 

평범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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