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 -유럽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은 작가 P.D 제임스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국내에는 2007년 말에 출판사 황금가지의 밀리언셀러 클럽을 통해 ‘여탐정은 환영받지 못한다’라는 제목으로 소개가 된 바 있습니다. 원제는 ‘An Unsuitable Job for A Woman’으로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는 제목 쪽이 원제와 뜻이 통하지요. 밀리언셀러 클럽의 제목은 원제와 뉘앙스가 다르긴 한데 내용과는 부합하는 면이 있어서 잘못된 의역이라고 하긴 힘듭니다. 허나 개인적으로는 센스가 떨어지는 번역이라는 느낌이 드네요. 비슷한 이유로 밀리언셀러 클럽 레이블의 소설은 언제나 읽기 망설여지더군요.

  작가 사쿠라바 카즈키가 이 작품의 제목을 패러디하여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는 작품을 쓴 바가 있습니다. 내용 자체는 딱히 연관성이 없지만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의 주인공이 탐정이고 소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의 주인공이 킬러라는 점은 묘하게 대비가 되어서 재미있네요.

  여담이지만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을 읽고 쓴 감상문이 처음으로 이글루스 밸리 인기 글에 올랐던 경험이 있습니다. 벌써 근 7년 전의 일이네요. 세상에나, 시간 참 빠르다.


 코델리아 그레이는 별 볼 일 없는 사설탐정 버니 프라이드의 동업자입니다. 버니가 권총 한 자루와 성공을 빈다는 말만 남기고 자살한 뒤 코델리아는 홀로 탐정사무소를 운영하기로 마음먹지요. 이 결심은 아주 투철한 정도는 아니었고 그저 죽은 버니를 위해서 더 이상 임대료와 기타 비용을 낼 수 없을 때까지 남은 몇 달이나마 더 유지나 하자, 정도의 오기 섞인 마음가짐이었습니다. 버니의 장례식에 다녀온 코델리아는 그간 파리만 날리던 사무소 앞에 웬 여성 한 명이 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드디어 찾아 온 의뢰인을 붙잡고 사정을 묻자 여성은 자신이 엘리자베스 리밍이며 유명한 과학자이자 환경보호 활동가 로널드 칼렌더 경이 탐정을 고용하길 원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리밍을 따라 칼렌더 경의 저택으로 향하는 코델리아. 그곳에서 코델리아는 칼렌더 경의 외아들 마크가 자살을 했으며 아버지로서 아들이 왜 자살했는지 알고 싶다는 말을 듣습니다. 마크는 갑작스레 대학을 자퇴했고 어떤 시골 저택의 정원사로 고용되었는데 자신이 기거하던 저택의 오두막에서 목을 맸다고 합니다. 의뢰를 받아들인 코델리아는 마크의 행적을 쫓는 것으로 자신의 독립 데뷔전을 시작하지요. 허나 자살의 원인을 찾는 코델리아의 앞에 하나하나 나타나는 건 살인이라는 선명한 단어였습니다.


 처음 몇 페이지를 넘겼을 때 강한 기시감을 느꼈어요. 어라, 이거 읽었던 거 같은데… 싶었고 실제로 읽은 게 맞았습니다만(‘여탐정은 환영받지 못한다’로) 읽다보니 재미있어서 끝까지 읽게 되었습니다.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기도 했고요. 늙어서 기억력이 떨어졌나봐…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님의 명성에 버금가는 작가 P.D 제임스의 작품답게 소설은 짜임새가 꽤 치밀합니다. 1972년도 작품입니다만 황금기 추리소설 특유의 고상함을 갖추고 있어 그리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물론 케임 강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는 케임브리지 대학생들에 대한 서술을 읽고 있으면 옛날은 옛날이구나, 싶기도 합니다만. 설마 아직도 수영을 하는 사람은 없겠지… 없겠지?

 추리소설로서의 완성도를 보자면 꽤 괜찮다고 여겨집니다. 탐정 캐릭터가 충분히 매력적이고 범행동기도 설득력이 있으며 단서 제시 역시 제법 공정하고 해결방식 또한 상당히 근사하지요. 다만 단점이 없는 건 아니어서 별다른 의미 없이 소모되는 등장인물이 있다는 점이나 살짝 얼렁뚱땅 넘어가는 경우가 가끔 보인다는 점, 이러니저러니 해도 진부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점 등은 아쉽습니다. 추리라는 관점으로만 보자면 취향을 탄다고 볼 수밖에 없네요. 허나 이 작품은 소설 쪽의 무게감이 강합니다. 주인공 코델리아가 가진 정교한 다면성과 그런 인물의 시각을 통해 그려지는 70년대 영국의 풍경은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옛날 작품에서 세대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늘 흥미롭던데 이 작품에도 등장해요. 죽은 마크가 일했던 저택 주인의 동생이자 젊을 적 약혼자를 잃고 긴 세월 홀로 지낸 노부인 엘리노어는 코델리아를 향해 뜬금없이 젊은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요.


엘리노어 “나는 아가씨 세대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레이 양. 당신네의 오만함, 이기심, 폭력성, 게다가 이상하게 선별적인 그 동정심까지. 당신네는 스스로 대가를 치르는 법이 없지. 심지어 자기 이상을 위해서도 희생하지 않아. 오로지 훼손하고 파괴하지 건설하는 법이 없어. 반항아처럼 벌 받을 짓을 자초해놓고 막상 벌을 받게 되면 악을 쓰고 울지. 내가 알던 사람들, 함께 자란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어.”

엘리노어 “아가씨는 보나 마나 내가 젊음을 질투하고 있다고 말하겠지. 우리 세대의 고질병이라고 말이야.”

코델리아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왜 젊음을 질투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거든요. 젊음은 특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똑같이 나눠 가졌던 거니까요. 남들보다 더 수월한 시대에, 혹은 더 부유하거나 특권이 있는 곳에 태어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젊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게다가 때론 젊다는 게 끔찍한 일이기도 하죠. 젊음이 얼마나 끔찍할 수 있는지 기억하고 계시지 않나요?”

엘리노어 “암, 기억하지. 하지만 다른 것들도 기억해요.”(P.86)


 1970년대 소설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니 재미있죠? 게다가 이때 작가의 나이가 50대 초반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욱 의미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70대 초반 혹은 60대 후반일 엘리노어 - 작가 - 20대 초반의 코델리아 사이에는 시간이라는 간극과 함께 세계대전이라는 비극도 끼어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요. 식민시대와 1차,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은 엘리노어, 2차 세계대전 때 19살이었던 작가 P.D 제임스, 전쟁이 모두 끝나고 한 시대가 끝났을 때 태어난 코델리아 그리고 냉전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체제. 그 모든 것을 고려하면, 혹은 전혀 고려하지 않더라도 엘리노어와 코델리아의 대화는 흥미롭습니다. 시대의 특수성이 낳은 인식의 차이라고도, 시대를 뛰어넘어 언제나 존재하는 세대 간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이 대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엘리노어의 “하지만 다른 것들도 기억해요”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들, 사는 동안 내내 기억할 만큼 중요한 것들.


 앞서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 제가 원제를 굳이 의역한 밀리언셀러 클럽의 제목에 대해 센스가 떨어진다고 했던 이유는 딱 봐도 영 센스가 없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 외에 작중 등장인물들이 탐정에 대해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말을 한 사람인 버니의 단골 술집 주인 메이비스와 마크의 친구 이사벨 둘 다 여성이라는 점도 재미있지요. 사실 버니의 끄나풀을 포함해서 비슷하게 말한 등장인물은 더 있지만 뭐, 비슷하게 말한 것뿐이니까. 반면 여자에게 완전히 어울린다고 말한 인물도 있습니다.


호스폴 교수 “삼촌은 숙모가 담당 치과의사와 잤는지 알아보려고 사립탐정을 고용했었죠. 정말로 자긴 했지만 그런 건 그냥 물어보기만 했어도 쉽게 알아낼 수 있었을 겁니다. 괜히 사립탐정을 고용하는 바람에 삼촌은 부인과 치과의사 모두의 마음을 잃었고 공짜로 얻을 수 있었던 정보를 알아내겠다고 터무니없이 바가지를 썼죠. 한때 친척들 사이에 꽤 시끌시끌했어요. 그때 저는 생각했죠. 이 직업은…”

코델리아 “여자에겐 어울리지 않는다고요?”

호스폴 교수 “전혀 아니에요. 완전히 어울린다고 생각했죠. 제 생각에 이 직업은 무한한 호기심과 무한한 고통과 다른 사람 일에 끼어들기 좋아하는 성격이 필요하니까요.”(P.170)


 탐정이란 무엇이고 코델리아가 탐정이 되길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의문을 가진 등장인물은 애석하게도 없다보니 탐정이 여자에게 어울린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 또한 의미가 없습니다. 개인은 없고 성별만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현대의 페미니즘 담론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또한 개인의 총체성과 집단의 특이성을 구분하지 않는 담론이라는 점에서 현대에 쏟아지는 무분별한 논쟁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아 재미있습니다. 뛰어난 작가의 손에 의해 문장으로 다듬어진 걸 읽어서 재미있는 거지만요. 넘쳐나는 날것의 외침은 읽고만 있어도 귀가 따가워요. 그나저나 이런 걸 보면 인간이란 잘도 이렇게까지 바뀌는 게 없구나, 싶네요. 오만함, 이기심, 폭력성, 게다가 이상하게 선별적인 그 동정심까지. 제 윗세대도, 저도, 아마도 제 조카 세대까지.


 지금 읽기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작품입니다. 특히 주인공이 매력적이에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여의고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지만 씩씩하게 자라난 여성이자 비록 쓰레기였지만 든든했던 파트너를 잃고 그 유지를 이으려 노력하면서도 또래의 우정에 굶주린 젊은이 그리고 풋내기지만 진실을 찾아내고 그 너머의 최선 또한 놓치지 않으려는 훌륭한 탐정. 이토록 매력적입니다만 애석하게도 코델리아 그레이 시리즈는 두 권으로 끝입니다. 작가가 돌아가셔서 더 나올 수도 없어요. 다른 한 권은 91년에 일신서적에서 나온 피부 밑의 두개골(원제 The Skull Beneath the Skin)입니다만… 이것도 얼른 재출간되면 좋겠습니다.




[데레스테] 돈도 처음 쓸 때가 힘들죠 책 이외


 그 힘든 걸 제가 해냈습니다. 인생 첫 과금! 힘든 고비를 넘겼으니 이제부턴 쉽게쉽게 쓸 수 있겠군요. 하하하하! 후, 인생이 더욱 나락으로...

 한정SSR 포함 스카우트 티켓(+SR 스카우트티켓)을 인질로 잡고 흔드니 사지 않고 버틸 수가 없네요. 게다가 10연차 티켓을 두장이나 준다니? 거저나 다름이 없구만! 하하하하하! 하아...






스카우트권으로 데려온 건 작년에도, 이번 복각에도 놓쳤던 2주년 기념 모리쿠보입니다. 쿨 프린세스는 이미 3차 후미카가 있지만 제게 쓸모나 유용성 따위를 따지는 현명함이 있었다면 애초에 게임 자체를 안 했겠지요. 돈도 없는 주제에 무슨 게임이야! 하면서...




아 너무 예쁘다... 5000엔 쓰길 잘 했어.

스카우트 티켓을 사고 남은 쥬얼은 색놀이 의상(딥 스카이 블레이즈)를 산 뒤 그간 모은 것들까지 다 포함해서 페스에 다 쏟아부었습니다. 탈탈 털어넣으니 200연차까지 할 수 있었어요. 가챠를 원 없이 돌리는 날이 오긴 오는구나...

결과도 만족스럽습니다. 페스 나오와 유우키는 물론이고 다른 통상 SSR도 잔뜩 나왔어요.




원랜 30연차만 하려고 했는데 처음부터 나나가 나와서 흥분이 끓어오르기 시작...





2번째 10연차에 아무 것도 안 나와서 흥분이 급격히 가라앉았다가 3번째와 4번째에 라이라씨가 연속 등판하여 다시금 대 흥분.







그 다음부터 연차 한 번에 SSR 한 장씩이 꼬박꼬박 나와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는데




심지어 언젠간 꼭 데려오려고 했던 후미카 마저 등장! 이 시점에서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걸 깨닫고 남은 쥬얼은 아끼기... 는 무슨, 이성의 끈은 이미 끊어진지 오래! 야호! 내 운은 지금 상종가다! 남은 쥬얼도 전부 들이붓자! 히하!













스크린샷 찍을 정신도 없던 1차 린을 포함해 연차마다 거의 꾸준히 SSR들이 나와줬습니다.

그렇게 206연차로 광란의 레이스는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94번만 더 하면 천장이잖아, 얼른 만엔을 더 쓰자! 라고 외치는 마음의 소리에 그래! 하고 동의했다가 야 잠깐, 만엔? 처음 후쿠오카 여행 갔을 때도 만엔은 안 썼는데! 라는 기억이 두뇌 깊은 곳에서 다급하게 튀어나와 저를 말렸습니다. 그 여행도 벌써 10년 넘게 지난 일이구나, 길바닥에서 자기도 하고 그때의 나는 정말 몰골이 거지와 다를 게 없었지... 거지 꼴의 추억이 냉각수처럼 과열된 흥분을 식혀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과금을 하고 나니 이상하게도 데레스테에 더욱 애착이 가네요. 노예가 주인님에게 품는 감정이 이런 걸까요? 이제 3주년을 맞은 데레스테가 제 티끌 같은 5000엔을 바탕으로 더욱 발전하길 바라겠습니다. 후... 빨리 다음 한정 스카우트티켓 팔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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