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일본

하드보일드라는 거 사실 참 별 거 없지요. 그저 무뚝뚝하고 유능한 남자 탐정이 나와서 온갖 쾌락을 담배 한대 피우는 걸로 물리치면 그게 하드보일드! 그런데 또 한끗만 빗나가면 바보같은 마초물이 되고 반대쪽으로 빗나가버리면 어중간한 로맨스가 되지요. 그래서 저는 주장합니다. 하드보일드란 밸런스가 생명이라고! ...라지만 제가 뭘 주장한들 무슨 소용이나 있겠어요? 아무튼 마초물만큼 한심한 것도 세상에 또 없지요. 사실 이 소설을 참 재미있게 읽고 그래서 같은 작가의 다음작인 '내가 죽인 소녀'를 찾았지만... 갖춘 도서관이 없어서 무척 울적합니다. 하드보일드 탐정에게 가장 필요한 건 뭐니뭐니해도 역시 레인코트겠지요. 트렌치코트? 사실 옷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그런 류의 코트, 면 되고. 저희 어머니께서 누이에게 'You, 선을 봐야하니 코트를 사세요.' 라고 했답니다. 그런 뒤 일하는 곳에서 받아 차곡차곡 모은 노떼백화점 상품권 130만원 어치를 누이에게 하사하셨더랬지요. 누이는 희망에 찼답니다. 130만원! 50만원짜리 코트를 사도 돈이 한참 남잖아! 아, 70% 정도 사야 거스름돈 주나? 허나 어머니, 그런 누이를 비웃으시며 '그걸로도 모자랄터다.' 라고 선언하셨지요. 누이, 그 말 이해 못했답니다. 코트 따위야... 허나 노떼백화점 코트는 150만원이 기본이더이다. 재질이 뭔 신소재더라마는 기억은 안나고. NASA가 만들었나요? 형상기억털실인가요? 누이 말씀하시길 '예쁘지도 않았는데!' 이미 그 시점에서 구매의사는 소멸. 기왕 온 김에 누이 눈으로 즐기는 명품관에 갔더랍니다. 거기도 코트는 있겠지요. 150만원짜리보다도 놀랍게도 더 못난 코트를 발견. 우리 누이 이딴 걸 누가 사나 궁금해서 가격을 물어보았답니다. 허나 판매원분은 우리 누이 나이대 퍼슨이 쓰기에는 가격대 좀 높다고만 말하더군요. 누이 그런 거에 화 잘냅니다. 우리집 가난하니 그런 일에 더더욱 화냅니다. 사실 요즘은 딱히 가난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그 근성 뿌리 깊습니다. 누이가 다그치자 판매원 Say, 1500만원이라 하더이다. 옷이 1500만원... 옷에 CPU를 달았나요? 옷에 원룸 보증금이 포함되었나요? 허나 하드보일드 탐정은 싸구려 코트를 10년 내내 입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드보일드지요. 기왕이면 차도 옛날 걸로. 허나 후진 건 안되고요. 약간 유명세를 즐겼던 고전 카를 타야한답니다. 세차같은 건 해서는 결코 안되고 10년의 먼지가 지층을 이루어야 하지요. 하라 료의 사와자키 탐정은 하드보일드의 귀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레이먼드 챈들러와는 다른 매력을 끌어내는데 성공하지요. 사실 이 챈들러씨가 워낙 대단해서 다른 하드보일드씨들은 다 열화 복제품으로 밖에 안 보이는데, 사와자키씨는 참 좋더군요. 조만간 도서관에서 '내가 죽인 소녀'를 들여놓지 않는다면 제가 직접 사는 큰 모험을 감행할지도 모르겠네요. 

P.S 문득 기억이 났는데 신소재의 이름은 캐시미어였습니다. ...어라? 딱히 새롭지 않은데. 책에서 몇번이나 읽은 듯한. 캐시미어라는 게 그렇게나 비싼 거였다니.

덧글

  • 하라료 2010/12/11 16:39 # 삭제 답글

    내가 죽인 소녀는 정말 뛰어난 명작입니다
    개인적으로 내가 죽인 소녀에 비하면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는 그저 그런 2류 하드보일드 소설정도 되는듯;
  • 정윤성 2010/12/11 20:37 #

    그렇군요. 전 밤은 되살아난다도 꽤 재밌게 읽었는데 내가 죽인 소녀는 정말 뛰어난가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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