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의 비극 -일본


습관이라는 건 참 무서운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니 평소보다 아주 약간 바빴는데 평소 습관이었던 일 외에는 전부 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거든요. 1시간 정도 책보고 30분 게임하고 30분 인터넷하고 GSL도 한 게임 정도 시청하고... 습관이 아니었던 블로그는 서슴없이
 
개점휴업. 게임 요즘 재미있지도 않은데 그건 굳이 하고 블로그는 그냥 버려두다니, 과연 습관이란 무서우...운가? 그냥 제가 게을렀네요.

하지만 시인 서정주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듯 나를 만든 건 팔 할이 게으름! ...어쩐지 어머님께 대한 죄송함이 격렬하게 차오른다...

서정주는 아무 것도 뉘우치지 않겠다고 했지만 나는 좀 많은 걸 뉘우쳐야 할 듯. 아니 그냥 다 잘못했습니다. 미안해요, 엄마...


책에 쓰여있던 저자 '나츠키 시즈코'의 이력을 보니 일본보다 해외 수상이 더 많은 게 이색적이더군요. 먼저 해외에서 인정을 받고

그 뒤 자국에서도 유명해진 작가인 듯 보입니다. 수상 이력을 보니 해외에서 받은 상의 년도가 일본에서 받은 것들보다 빠른 게 많더라고요.

뭐, 어디든 인정을 받는다는 건 기쁜 일이겠지요. 제목에서부터 연상이 되지만 'W의 비극'은 '엘러리 퀸'의 알파벳 시리즈 - X의 비극,

Y의 비극, Z의 비극 - 에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엘러리 퀸에게 허락과 조언을 얻어 출간을 했다고도 하고요. 엘러리 퀸과

아는 사이라니 좀 부럽네요. 아무튼 저자는 알파벳 시리즈에 이어지는 네 번째 비극이자 여러 가지 중의적인 뜻을 담아 W의 비극이라고

제목을 붙였답니다. 음, 아름다운 이야기군요.


주인공 '하루미'는 예전에 영어를 가르쳤던 제자 '마코'에게 초대를 받습니다. 마코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쓰지 제약'의 회장 '와쓰지 요헤'의

손녀로 착하고 예쁘장한 아가씨이지요. 와쓰지 일가는 겨울철 별장에서 가족들끼리 시간을 보내는 관습이 있는데 하루미는 거기에 초대가

된 것입니다. 물론 가족들 간의 이벤트이니 참석하기가 꺼려졌지만 아끼던 제자 마코가 졸업논문으로 도움을 청한 상태라 초대에 응하기로

합니다. 그렇게 한 겨울 눈밭의 한가운데에 놓인 별장에 도착한 하루미는 와쓰지 일가의 여러 사람과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첫날이

지나가나 싶었지만... 와쓰지 요헤가 마코를 추행하려다가 그만 저항하던 마코에게 죽게 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친할아버지가 손녀를

범하려 했고 그 손녀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 상황. 두려움에 떠는 가녀린 마코를 바라보며 가족들은 뭔가 수를 써야겠다고 결심하고

결국 모두가 합작해 외부인의 소행으로 만들기로 결정합니다. 하루미는 가족의 일원이 아니었지만 마코를 아끼는 마음만은 같아 동참하지요.

괜히 야식을 시켜 목격자를 만들고 각종 증거를 날조하며 서로 간의 알리바이를 만든 뒤 경찰을 부른 와쓰지 가족들입니다만 과연 경찰의

날카로운 눈을 속일 수 있을까요? 와쓰지 가족과 경찰의 두뇌 싸움의 결말과 친할아버지를 죽인 마코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등장인물 대부분이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건 Y의 비극보다는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이 연상되지만 이 소설은 공개된 범인이 경찰과

대립하는 것에서 한 걸음을 더 나아갑니다. 전개는 평범한 예상을 벗어나 단순히 보이는 것 이상의 비밀이 숨겨져있음을 알리지요.

전형적인 클로즈드 서클을 배경으로 삼고 미리 범인이 밝혀진 상태에서 전형적인 범인 대 경찰의 구도를 보이는 듯 하지만 아주 조금만

읽으면 이내 색다르게 전개되는 이야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근 30년 전에 출간된 작품입니다만 그런 점에서 꽤나 새롭다고 할 수 있지요.

허나 그렇게까지 엄청나게 참신한 건 아니고 금방 일반적인 미스터리의 행보를 따릅니다. 범인이 밝혀진 줄 알았더니 그 너머에 뭔가

다른 비밀이 있으니 그럼 그 비밀을 찾자, 는 식으로 다시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지요. 이 소설의 장점은 참신함이 아니라 강한

드라마성에 있습니다. 이 소설은 트릭이 뛰어나거나 반전이 대단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반전의 부분은 쓸데없이 한 번 더 꼬아서 그리

깔끔하지 않기도 하고요. 한 일가를 배경으로 한 군중극은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휘둘리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마치

저희 어머니께서 돈도 많이 못 버는 자식 때문에 아직도 편히 쉬시지 못하고 일을 하는 것처럼 가족에게 휘둘리는... 아, 마음이 아프다.

엄마, 미안...

그러고보니 평소 트릭이나 반전에 대해서만 가타부타 이야기를 하다보니 강한 드라마성이 특징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 쓸 말이 없네요.

어느 정도 진부하기는 하지만 우리네 일생 어차피 진부함이 팔 할 아니겠습니까. ...이런 말을 쓰려는 게 아니었는데. 블로그를 일주일

쉬었더니 스스로도 대체 뭘 쓰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 건실하고 성실하고 착실하고 건전하고 훌륭하고 착한 블로거라면 글을

다시 한 번 검토하고 새로 쓰겠지만 나는 팔 할이 게으름인 몸에 수분보다 게으름이 더 많은 인간! 그냥 결론을 내리고 글을 맺어버리겠습니다.

재밌어요. 하지만 세월의 탓인지 이야기 자체에 진부함이 느껴집니다. Y의 비극에 비길만한 걸작이라고 하기에는 힘들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책에 대한 횡설수설은 그만하고 소설은 2010년에 한 편짜리 특별 드라마로 만들어진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년도 4월부터 방영하는

드라마로도 제작이 된다고 합니다.


4월부터 방영되는 드라마는 원작의 이야기를 크게 바꿔 전개된다고 합니다. 드라마를 먼저 보고 책을 읽어도 별 문제가 되지 않겠네요.

주인공 역의 배우 분께서는 시원스런 이마가 매력적이네요. 눈빛은 좀 무섭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보고 싶기도 합니다.

덧글

  • 엘러리퀸 2012/03/24 11:11 # 답글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 저 마지막 사진의 여배우는 마코 역일까요, 하루미 역일까요. 뜬금없이 궁금해지네요.
  • 정윤성 2012/03/24 11:36 #

    으헛, 그걸 안 적어놨군요. 저 여성 분은 마코 역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마코 역인데 주인공인데다 1인 2역을 한다고 하니 책과는 굉장히 다른 내용이 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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