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터 킹 - 아서 왕에 대한 색다른 이야기 -유럽


작가 '버나드 콘웰'은 역사소설로 유명한 작가라고 하는군요. 역사소설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이 분이 쓴 '샤프 시리즈'가

'왕좌의 게임'의 1기의 주연 '숀 빈'을 주인공으로 미니시리즈화 되었고 무려 40%가 넘는 시청률이 나왔다는 소개를 읽으니 상당히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영향력이 있는 작가라는 것이 와닿습니다. 뭐, 미니시리즈라는 게 원작의 힘만으로 되는 건 아니긴 합니다만.

사실 '윈터 킹'의 표지 한쪽 구석에 적힌 '아서 왕 연대기'라는 걸 보고 읽을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아더' 왕이라

불리긴 했지만 아무튼 요 몇 년 사이에 아서 왕을 소재로 삼은 창작물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었지요. 당장 기억 나는 건 2004년에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을 맡았던 영화 '킹 아서'가 있었고 2008년에는 아서가 아닌 '멀린'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국드라마 '멀린'이
 
제작되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2011년에도 아서 왕 신화를 바탕으로 색다르게 각색을 했다는 미국 드라마 '카멜롯'이 방영을

했었지요. 카멜롯은 시즌2가 취소되었다던데 시청률의 문제였을까요? 제가 좋아하는 배우 '에바 그린'이 나온다고 해서 한번 보고

싶었는데 말이지요. 조금 더 과거로 가보면 1995년 작으로 '숀 코네리'와 '리처드 기어'가 출연했던 '카멜롯의 전설'도 있었고요.

거기서도 리처드 기어는 참 느끼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서 왕의 전설은 검과 마법, 신과 요정이 넘쳐나는 말 그대로 신화인데

사실 생각보다는 그리 오래되지 않습니다. 5~6세기의 이야기이니 완벽하게 옛날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신화라는 단어에서

떠올리게 되는 말도 안 되게 머나먼 연대까지는 아니지요. 당장 주몽이나 박혁거세의 건국신화만 해도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니까요.

신화하면 가장 유명한 그리스, 로마 신화나 북유럽, 힌두 신화 등도 역시나 기원전은 우습게 거슬러 올라가니 5세기 정도면 신화치고는
 
제법 젊은 편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쯤되면 미신보다는 이성이 지배하는 시기여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하긴, 마녀사냥은
 
16세기가 절정이었다고 하니 인간사 이성을 논하기에는 아직까지도 이른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역사란 무겁군요.

어쨌든 읽을 마음은 별로 들지 않았지만 6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함에 끌려서 그만 빌리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두꺼운 책 너무 좋아...


로마군의 지배에서 풀려난 브리튼의 땅은 새로운 혼돈에 빠져듭니다. 서쪽에서는 아일랜드인들이 약탈을 자행하고 북쪽에서는 스코틀랜드의

고지대에 사는 자들이 침범해왔지요. 그리고 색슨 야만족들은 브리튼의 동쪽 땅을 빼앗아 잉글랜드로 개명한 뒤 자신들이 차지해버립니다.

...외국인이고 지금을 사는 저의 눈에는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그리고 잉글랜드 몽땅 다 그냥 영국 아닌가 싶지만 아무튼 5세기에는

서로를 야만족이라 부르며 박터지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IRA 같은 걸 보면 딱히 옛날일이라 치부하기도 힘들긴 하지만. 브리튼이라고

해도 군벌들이 난립한 상태였고 제각기 왕을 자처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다만, 개중 가장 강력한 나라인 '둠노니아'의 왕 '유서'가 대왕의

자리에 올라 나름대로 한데 뭉쳐있긴 했지요. 유서의 아들 '모드레드'는 전투 중 그만 사망합니다. 모드레드의 성급함이 원인이었으나

유서는 자신의 서자 '아서'에게 그 책임을 돌려 그를 미워하지요. 모드레드의 부인은 이미 태내에 아기가 자라고 있었으며 순조로이

출산에 성공합니다. 유서는 크게 기뻐하며 태어난 남자아기에게 아버지의 이름 모드레드를 물려준 뒤 후계자로 삼지만 아기는 한쪽

발이 뒤틀린 장애아였습니다. 미신이 팽배한 시대에 이는 불길한 징조였으나 유서의 태도는 확고하여 아기 모드레드는 둠노니아의

후계자가 되지요. 이미 노구였던 유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여전히 아기인 모드레드의 왕좌는 위태롭기만 합니다. 결혼 동맹으로

나라의 안위를 지키려던 둠노니아였지만 '실루리아'의 왕 '군들레우스'는 약속을 어기고 모드레드의 어머니를 죽인 뒤 땅을 차지하려

합니다. 그리고 바다 너머 '베노익'에서 군대를 이끌던 아서가 돌아와 그를 격퇴하지요. 아서는 '포위스'의 공주와 결혼하여 포위스,

실루리아, 궨트, 그리고 둠노니아의 동맹을 굳건히 하여 색슨족에 대항하려 계획을 짜지만 약혼식 당일 눈이 마주친 '귀니비어'와

광기와도 같은 사랑에 빠져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고 맙니다. 그리고 브리튼의 동맹은 유리처럼 간단하게 박살이 나버리지요.

둠노니아를 노리는 포위스, 실루리아, 그리고 색슨족들에 더해 아서가 수호를 서약했던 바다 너머의 나라 베노익에서도 '프랑크족'을

토벌해달라는 구원을 요청하여 아서는 말 그대로 사면초가의 상태에 놓입니다. 영국 통일은 커녕 둠노니아 마저 박살날 위기에 처한

아서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소설은 아서 왕의 측근이었던 '데르벨 카다른'이라는 화자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그는 아서 왕의 이야기를 하겠다고 하지만 자기

이야기도 잔뜩 한 터라 소설 전체가 아서에게 집중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데르벨의 여정 또한 아서 왕의 이야기 못지않게 흥미진진하여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긴 하지요. 이 소설은 기존 아서 왕 신화를 철저할 정도로 달리 해석합니다. 당장 아서를 군벌 중 하나의 위치에

놓은 것부터가 상당히 파격적이지요. 파격적인 걸로 따지면 아서 왕을 여자로 만들었지 그 외에는 별 차이가 없던 모 게임보다 훨씬

더 격하게 변형시킨 셈입니다. 어릴 때부터 주군의 왕비랑 눈이 맞은 주제에 왜 저런 칭호를 가졌는지 의문이었던 유명하기 짝이 없는

'기사 중의 기사 란슬롯'도 신화랑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나오고 '갤러해드'도 멋있긴 하지만 신화와는 전혀 다른 인물으로 나옵니다.

멀린도 아서의 왕도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을 보이지요. 작가는 철저히 그 당시의 시대를 재현하여 아서 왕을 비롯한 기존의 모든

인물들에게 색다르지만 있을 법한 역할을 맡기고 이에 더해 매력적인 인물들을 만들어 가장 리얼한 아서 왕의 이야기를 창조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신화에서 따온 것이 아닌 그저 정밀한 역사와 전쟁 소설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책은 독자를 신화의 세계에서 끄집어내어 리얼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제껏 보지 못했던 가장 환상적이고

중독성이 있는 아서 왕의 이야기를 함께 제공하여 독자에게 이것이야말로 진짜 아서 왕의 이야기라고 확신을 가지게 만듭니다. 작가의

재주는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고 이야기는 짜임새가 있으며 신화와 접한 공통점, 변이점은 흥미를 자아내고 인물들은 매력적이며 묘사는

현장감이 넘치고 몰입도는 너무나 뛰어나 대단히 즐거운 작품이라 아니 할 수가 없습니다. 얼른 다음 권이 읽고 싶네요. ...누가 이미

빌려갔지만. 2권만 빌려가고 1, 3권만 남아있는 책장을 보는 건 너무 슬픈 일이에요... 그냥 3권을 다 빌려가면 미련이라도 안 남지...

덧글

  • 빼뽀네 2012/07/14 21:44 # 답글

    예전에 읽고 나서 깜박하고 있었는데 윈터킹이 3권까지 나왔군요. 덕분에 새로운 정보를 얻었습니다.
    저도 윈터킹을 재밌게 봤습니다. 마법과 기사도가 없는 아서(하지만 아더가 입에 더 맞아요. ^^) 왕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게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특히 저는 란슬롯에 대한 묘사가 맘에 듭니다. 저는 윈터킹에 나오는 란슬롯이 어떤 아서 왕 이야기에 나오는 란슬롯 보다도 맘에 듭니다.
  • 정윤성 2012/07/14 23:21 #

    네, 3권 모두 나왔습니다. 저도 빨리 다음권을 보고 싶네요.
    저도 이 소설의 란슬롯이 기존의 란슬롯 중 가장 설득력있는 인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은근히 정감도 가고요.^^
  • 빼뽀네 2012/07/16 10:15 #

    1. 윈터킹은 전체가 모두 몇 편인가요?

    2. 정윤성님은 윈터킹에 묘사된 란슬롯에게도 정감을 가지시는군요. ^^
    전 사실 란슬롯을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매우 싫어합니다. 그래서 전 언제나 란슬롯을 '배신자 란슬롯'이라고 부르지요.
    2~3권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빨리 봐야겠네요.
  • 정윤성 2012/07/16 15:56 #

    총 세 권입니다. 1권이 윈터 킹, 2권은 에너미 오브 갓, 3권은 엑스칼리버입니다.

    윈터 킹의 란슬롯 같은 사람은 사실 어딜가도 한 명쯤은 봤을 법한 느낌의 인물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더군요. 저 역시 저런 류의
    허세에서 아예 자유롭다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은근히 이해도 가고 정감도 조금 갑니다.^^;;
  • 빼뽀네 2012/07/16 16:08 #

    1. 윗 답변에서 이미 '모두'라고 알려주셨었군요. ^^;;

    2. 제가 몇몇 인물들에 대해서는 好不好가 극명하게 갈리는데, 不好쪽에 대표적인 인물이 란슬롯입니다. 그래서 윈터킹에서의 란슬롯이 무척이나 반가웠지요.

    3. 친절하게 관련 정보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윤성 2012/07/16 16:11 #

    네, 남은 두 권도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오늘 빌리러 갈 생각인데 기대가 많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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