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천사 -일본


'업계 최고의 미소녀'라는 별명이 있었던 작가 '사쿠라바 가즈키'의 '제철천사'를 읽었습니다. 미소녀...? 글은 아름답습니다.

제철천사는 작가의 다른 소설인 '아카쿠치바 전설'의 스핀오프 작품입니다. 아카쿠치바 전설은 참 재밌었지요. 전설이나 신화를

존재할 수 있는 시대가 있다고 설정하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아무튼, 스핀오프라는 점을 미리 알고 있지 않은 채 그냥 읽는다면 이 소설이

아카쿠치바 전설의 '아카쿠치바 게마리' 파트와 너무 흡사하다는 것에 의아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바로 제가 그랬지요. 이 소설은

아카쿠치바 전설에서 게마리가 그렸던 만화 '제철천사'를 소설로 쓴 것입니다. 게마리의 만화는 게마리 자신의 삶을 그림으로 옮긴

것이라서 이 제철천사 역시 게마리의 삶과 상당히 비슷할 수 밖에 없긴 합니다. 그렇지만 좀 너무 똑같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읽었던 소설을 또 읽는 기분까지 들었으니까요.


'아카도리마메 제철소'의 딸인 '아카도리마메 아즈키'는 '불량천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말광량이입니다. 제철소는 제지

공장과 함께 마을을 지탱하는 경제적 원천이라 제철소의 경영자인 아카도리마메 가문은 마을의 지주로 대우받고 있으며 그에 어울리게

행동하려 하지만 아즈키만은 별종입니다. 아즈키는 어느 날 굴러간 동생의 공을 찾으러 5층 주차장 '에드워드'로 향합니다. 주차장은

마을 최악의 불량 여학생들이 모여 만든 '에드워드 족'의 본거지로 초등학교 6학년생인 아즈키가 들어갈 곳은 아니었습니다. 예상대로

불량학생들에게 습격을 받은 아즈키는 자신을 쫓는 여학생 몇 명에게 조각칼로 즉석에서 지은 별명을 몸에 새겨준 뒤 3층에서 뛰어내려

달아납니다. 그 뒤 중학교 입학식을 마치고 앙금이 남은 에드워드 족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한 아즈키는 제지 공장의 딸에게 받은 지도를

따라 무기 상점에 도착합니다. 철이 따르고 철을 자유자제로 부리는 아즈키는 퇴역한 폭주족 '야마토 이치'에게 츄고쿠 지방을 통일하는

최초의 여자가 되라는 권유를 받고 각종 무기들을 싼 값에 얻습니다. 그렇게 얻은 무기로 에드워드 족을 쓸어버린 아즈키는 어느새

자신 주위에 모인 친구들과 함께 폭주팀 제철천사를 조직, 머나먼 지방 제패의 길에 첫 발을 내딛습니다. 과연 아즈키는 츄고쿠 지방을

자신의 발 아래에 꿇릴 수 있을까요...? 이게 대체 뭔 소리래...


스핀오프라는 이름을 따고 있긴 하지만 아카쿠치바 전설에서 게마리의 부분 중 전반부를 떼어내 늘린 듯한 느낌이 강합니다. 결국

이미 봤었던 이야기를 재탕하는 셈인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작가는 만화적인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애초부터 태생이 만화를

다시 소설로 바꿨다는 설정이니 문제가 없지만 손발이 좀 오그라드는 감이 없지 않습니다. 작중 쉴 새 없이 등장하는 '빠라바라바라밤'을

보고 있자면 오그라든 손발이 펴질 틈이 없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저 빠라바라바라밤은 오토바이의 경음기 소리 아니었나요? 작중에선

오토바이를 탄 애들도 입으로 저 소리를 낸다고 하고 있어서... 어떤 소리를 저런 식으로 번역했는지 모르겠지만 꽤 어색한 느낌이라

더욱 손발이 많이 오그라듭니다... 하긴, 폭주족이나 불량 조직을 다룬 만화나 소설은 남들이 보기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자기들만의

멋짐이 핵심이긴 하지요. '럭키짱' 같은 건 보고 있자니 고등학교에 대통령도 있고 퍼스트 레이디도 있고 전국 싸움신도 있고...

큭, 단지 럭키짱을 떠올렸을 뿐인데 손가락이 오그라들어서 키보드를 치는데 애로사항이 꽃핀다...!

조각칼을 휘둘렀을 뿐인데 유려한 한자가 적의 얼굴에 새겨진다거나 5층 건물을 그냥 맨몸으로 막 뛰어내린다거나 오토바이가 알아서

혼자 움직인다거나 제철소 딸이라는 이유로 철을 부린다는 등의 만화적인 표현 안에 있지만 기본은 여자 아이의 성장 이야기이기

때문에 유쾌하지만 미묘한 잡음이 느껴집니다. 폭주하는 삶과 우정을 다루지만 포맷과 이야기가 완전한 합치를 이루고 있는지 좀

의문이 드네요. 이제껏 소녀들의 성장을 자주 다루었던 작가의 솜씨에 비하면 아쉬움이 있습니다.

또 하나의 아쉬움은 앞서 언급했듯 읽은 소설을 또 읽는 기분이라는 것인데 비단 게마리 부분의 내용과 대단히 일치한다는 것을 넘어

시대와 전설, 그리고 여성의 삶이라는 아카쿠치바 전설에 있던 키워드도 이 소설에서 다시 한 번 가볍게나마 다루어지고 있어서 아무리

스핀오프라고는 하나 독립성이 너무 없지 않나 싶은 마음이 듭니다. 물론 게마리와 아즈키의 삶에서 세부적인 부분은 상당히 차이가

있지만 생애의 큰 사건, 특히나 친구의 죽음 부분이 겹치는 게 꽤나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전 불호의 입장이네요.

허나 청춘이 끝나는 동시에 그저 씁쓸하게만 이어졌던 게마리의 삶을 생각하면 아즈키의 활력이 반가운 것 또한 사실입니다. 마치

게임을 해서 처음에는 배드엔딩을 보고 다시 한 번 플레이를 한 뒤 이번에는 해피엔딩을 본 느낌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렇기 때문에 아카쿠치바 전설을 재밌게 보신 분들께, 특히 게마리에게 매력을 느끼신 분들께 추천을 하고 싶지만 '다시 한 번 플레이를'

부분이 마음에 걸려서 미묘하네요. 그렇다고 안 보신 분들께 추천을 하기에는 차라리 아카쿠치바 전설 쪽을 읽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또한 미묘합니다. 간만에 보는 포지션이 애매한 소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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