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묘점 -일본


'마쓰모토 세이초'의 장편 미스터리 로맨스(?) 소설인 '푸른 묘점'을 읽었습니다. 재미있었어요. 이제껏 읽은 작가의 작품들 중 가장

밝은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이 될 정도였습니다. 가장 밝다고 해봐야 살인에 자살에 불륜에 속고 속이고 할 건 다 하지만... 어라?

되새겨보니 별로 밝지도 않네... 출판사 '북스피어'와 '모비딕'의 노력에 힘입어 국내에도 이제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들이 제법

소개가 되었다고 여겨지는데 작가에 대한 입문으로 데뷔작이 수록된 '잠복'과 함께 가장 추천할만 한 소설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잡지사의 편집일을 하고 있는 '노리코'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여류 작가 '무라타니 아사코'의 원고를 받으러 갑니다. 하지만 최근

점점 작품의 질과 함께 집필 속도가 떨어져가는 아사코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노리코를 기다리게 만듭니다. 도망치듯 여행을 떠난

무라타니를 쫓아 자신도 온천 여관으로 따라간 노리코는 그곳에서 간신히 원고를 주겠다는 약속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폭로와 가십을 전문으로 취재하여 잡지사 등에 기사를 파는 하이에나같은 기자 '다쿠라'와도 만나게 됩니다. 말을 거는 다쿠라에게

대충 대꾸를 하고 얼른 달아난 노리코는 다음날 아침 무라타니 가족들이 새벽녘에 여관을 나섰다는 말을 듣게 되고 원고를 걱정하나

다행히 원고는 여관에 맡겨져 있었습니다. 노리코가 놀라야 할 일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다쿠라가 근처 절벽에서 낙사했다는 것.

노리코는 잡지사로 돌아와 이 이야기를 했고 동료 편집자 '사키노 다쓰오'는 흥미를 보입니다. 죽은 다쿠라, 도망치듯 사라진 무라타니

아사코와 그 가족들, 게다가 노리코는 다쿠라와 무라타니가 대화를 한 모습도 안개 너머로 목격하기까지 했습니다. 다쿠라는 절대

자살 같은 걸 하지 않을 독한 남자이기에 취재거리가 된다고 본 편집장은 노리코와 사키노에게 이 일을 좀 더 파보라고 지시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 평소에는 편집 일을 하면서도 휴일에는 기차를 타고 일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사건을 쫓는 두 명의 아마추어 

탐정들이 탄생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다쿠라와 무라타니 두 사람을 조사하던 것으로 시작했지만 사건에 관여된 인물이 점점 늘어가고

시체도 늘어나며 사건 자체의 몸집마저 커져만 가는데 과연 아마추어 탐정 두 사람이 이 사건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두 사람의 아마추어 탐정이라고 해도 사건의 해석 자체는 사키노에 집중이 되어 있습니다. 다만 독자들의 시선을 노리코에게 향하도록

작가가 조절하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사건과 약간 거리감을 가진 채 임하게 됩니다. 물론 중간중간마다 사키노가 노리코에게

들려주는 방식으로 독자는 정제된 정보를 얻습니다만 약간 부족한 감이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고

주구장창 움직이는 노리코를 보며 마치 여행 에세이를 읽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여행과 추리가 결부된 작품들은 이전에도

많았지만 - 예전에 읽었던 '침대 특급 하야부사 1/60초의 벽' 같은 것이 해당되겠지요. - 여행과 추리가 한 작품 내에 있으면서도

다른 인물들에게 각기 할당이 된 형식은 제법 참신하다는 인상입니다. 뭐, 바꿔 보자면 추리에 영 소질이 없는 노리코가 몸 쓰는 일을

전담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요. 600페이지에 달하는 제법 긴 분량의 소설은 노리코의 여행과 사키노의 추리, 그리고 의외로 깊고

오래된 사건에 각기 할당되어 아주 알차게 소모됩니다. 젊은 여성인 노리코의 밝은 분위기 때문에 밀도가 그리 높아보이지 않지만

인상보다는 꽤 꽉 찬 전개가 이어집니다. 노리코와 사키노의 로맨스는 시대가 시대이다보니 - 1959년도 작품 - 영 밋밋한 감도 있지만

그게 역으로 신선하지 않나 여겨지기도 하네요. 요즘은 TV든 소설이든 만화든 기본적으로 연애를 끈적끈적하게 하다보니... 스킨십

너무 빨라! 너무 진하고! 감사합니다! ...헤헤. 연애의 부분에 있어서는 노리코 쪽의 시각에서만 진행되기 때문에 남성의 관점이 없다는

점에서 약간 아쉽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화를 냈다가 기뻐했다가 바쁘게도 왔다갔다하는 노리코의 모습을 보면 이대로도 좋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 만족스럽습니다. 과연 여자의 마음은 갈대. 사키노 부분의 추리 영역은 정제된 정보를 제공하지만 사건 자체가

100%의 단서를 주는 게 아니라 어림짐작에 의존하도록 하는 경향이 있어 이 부분으로 보자면 그닥 독자에게 공평하지는 않습니다.

논리와 감 모두를 사용하길 종용하다보니 이 점이 마음에 들지 않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애초에 탐정으로 내세운

인물들부터 아마추어이니 감안할 수 있는 부분이지 않을까 생각도 되네요. 사건 그 자체는 제법 무겁고 찐득찐득합니다. 십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동기에다 공감의 요소가 거의 없는 악당, 굴절된 애정까지 더해져 꽤나 난장판이지요. 후기에도 적혀 있습니다만

세이초 작품들 중에는 만주에 있다가 망가지는 인물들이 꽤 많은데 어느새 그게 만주에 있었다, 라는 한 줄로 설명을 대신하다보니

공감이 어려워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뭐,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식민지 시절인데다 일본인이 망가졌다는 만주 생활인데 억지로 

끌려가셨을 조상들을 생각하면 좀 씁쓸하기도 하고요. 하여간 전쟁이란 건 아무 짝에 쓸모가 없어. 사건의 무거움 때문에 소설은

초반과 중반, 그리고 후반의 분위기가 제법 일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노리코에 의해 밝고 가벼웠다가도 한 순간에 훅 무거워지고

후반으로 갈수록 무게가 점점 더해져 쓴 맛이 나는 결말에 이르게 되는데 마치 사탕을 물고 보약을 마시다보니 처음 입 안 가득 있던

단맛이 싹 빠지고 나중에는 쓴맛을 제대로 간직한 보약 건더기(?)가 입 안에 쑥 밀려드는 느낌이랄까요. 게다가 지금의 관점에서는

납득이 힘들 정도로 급진적인 관계의 발전도 좀 그렇고... 뭐, 예전엔 얼굴만 보고 결혼하는 게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겠습니다만.

결론은 장점이 많은 소설이라는 것. 저 자신은 꽤 재미있게 읽었고 세이초 작품들 중 처음에 읽기 가장 좋지 않나 싶은 마음도 들지만

소설의 분위기가 점점 무거워진다는 것과 50년도 더 전의 작품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되는 시대 차이가 구석구석에서 꽤 

느껴진다는 것 때문에 추천은 조금 망설여지네요.



드라마로도 꽤나 많이 제작된 작품입니다.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들이 원래 꽤 영상화가 되긴 했습니다만 개중에 가장 영상화를

하기 좋은 작품이지 않았나 생각이 되네요. 일단 사랑에 빠지는 두 남녀가 나오고 일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구질구질한

사건들도 많고... 드라마가 원래 좀 구질구질한 면이 있어야 인기를 끄는 것 같더라고요. 가끔 집에 가면 어머니와 함께 드라마를

보곤 하는데 어쩜 달랑 한 화 보는데도 그렇게나 양다리를 걸치고 불륜을 하고 쌈박질도 하고 그러는지... 바빠서 좋겠습디다.

소설이 발표된 지 1년 뒤인 1960년도에 드라마화가 처음 되었고 그 뒤 1962년도에도 한 번, 1983년도에도 또 한 번, 그리고 2006년도에도

드라마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상기의 이미지는 2006년도에 제작된 '마쓰모토 세이초 스페셜 푸른 묘점'. 이 드라마에 대한 평가를

일본 웹에서 약간 살펴보니 딱히 좋지는 않더군요. 하긴 2시간 짜리 드라마 스페셜 중에 재밌는 게 거의 없긴 해요. 재밌게 본 드라마

스페셜이 뭐가 있더라... 뭐가 있나... 뭐가... 있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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