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인디언 인형 -유럽


세계 3대 추리소설의 하나이자 추리소설계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의 대표작인 '열 개의 인디언 인형'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3대 추리소설은 '엘러리 퀸'이 쓴 'Y의 비극', '윌리엄 아이리시''환상의 여인', 그리고 이 열 개의 인디언 인형입니다. 예전에 몇 번이고 읽었었지만 유명 작가이자 저명한 번역가이기도 하셨던 '이윤기' 선생님께서 번역을 한 책이라서 또 한 번 읽었다는 것이지요. 이 책을 읽고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인데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은 사실 원제가 '열 개의 흑인 인형'이더군요. 이 제목이 미국으로 와서 미국의 동요와 합쳐져 흑인 대신 열 개의 인디언 인형, 혹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영국에 비해 미국 쪽에 비율이 큰 흑인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개명이라는 설도 있다고 하고요. 아무튼 딱히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소설이라 할 말이 없네요...

 

10명의 신사 숙녀들이 각자 다른 이유로 인디언 섬에 초대됩니다. 섬에 도착하고 보니 정작 자신들을 초대했던 섬의 주인 오웬은 있지도 않은 상태, 하지만 일단 왔으니 모두 편히 쉬면서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며 느긋하게 지내려고 합니다. 막 식사를 마치고 한창 마음이 누그러진 상태에서 갑자기 어디선가 의문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것은 초대받은 손님들과 하인인 '로저스' 부부가 숨겨왔던 각자의 죄상을 고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다들 질이 나쁜 장난이라고 투덜거리고 있는데 그 순간 손님 중 한 사람인 '머스턴'이 술을 마시다가 질식사로 사망합니다. 젊고 원기 넘치는 사내가 갑자기 죽어 당황하는 손님들. 일단 시체는 잘 보존한 뒤 내일 보트가 오면 경찰을 부르기로 하지만 보트는 오지 않고 오히려 로저스 부인마저 사망하는 결과가 발생합니다. 두 사람이 사망한 뒤 벽난로 위에 있던 10개의 인디언 인형 중 두 개가 사라진데다 그들의 죽음이 방마다 전시되어 있던 동요의 내용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이 연속된 죽음이 결코 우연이나 사고가 아니라는 걸 직감하게 됩니다. 황급히 섬 내에 있을 살인자를 찾아 돌아다녀보지만 섬에는 분명 자신들 이외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일행들 중 살인마가 한 명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찾아오고 일행들 사이에서는 불신감이 팽배해집니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게 되지만 이를 비웃듯 살인은 계속 이어지고 마치 끔찍한 장난처럼, 경박한 저주처럼 살해 방법은 동요를 따라 이루어집니다. 열 개의 인디언 인형, 열 명에게 해당된 동요의 문구들, 그리고 인디언 섬의 열 사람. 과연 죽음은 이들 모두에게 예외 없이 찾아올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는 이 죽음을 피해낼 수 있을 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소설이 너무 유명하고 또 훌륭하여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 국내에 몇 가지 버전을 통해 많이 소개가 되었으며 추리소설을 즐긴다는 독자 중 읽지 않은 사람이 더 적을 유명한 작품이라 가타부타 말을 하는 게 더 이상할 노릇이기도 하고요. 저 자신 또한 몇 번이나 읽어도 매번 재미있어서 그저 놀랍다는 감상을 남기는 정도 수준의 능력 밖에 없고요. 다만 이 소설의 다양한 버전 중 이윤기님의 번역이 꽤 특이한 면이 있어서 그 점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고전다운 고풍스러움이 잘 살아있는 번역은 읽기 쉽고 깔끔하여 마음에 들었는데요 물론 그 뿐이라면 딱히 큰 장점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해문출판사'에서 냈던 것도 읽기 괜찮았으니까요.

 

괜히 한 번 올려보는 네이버 책 추리소설 TOP 100 부문에 있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해문이나 동서 같이 추리소설을 좀 냈다 하는 출판사라면 한 번은 출판을 고려해보는 소설이 바로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이지요. 아무튼 잘 했다는 것 외에 이윤기님만의 특별한 점이 뭔고 하니, 바로 영어 고유의 표현을 직역한 뒤 괄호를 치고 해석을 곁들였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보자면,

 

바람을 거슬러 배를 몬 적이 있다(위태롭게 처세한 적이 있다).

 

코를 맷돌에다 대고 있지 않으면(계속해서 자신을 부리지 않으면)

 

그의 모자 속에 벌이 한 마리 들어 있어(그는 제 정신이 아니야).

 

작대기를 거꾸로 쥐고 있다(종잡을 수 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같은 것들이지요. 읽고 있자니 제법 재미있더라고요. 특히 모자 속에 벌이 들어 있다는 말은 상상해보면 꽤 웃기지요. 있을 법한 일인데다 정말로 일어난다면 화들짝 놀라 제 정신이 아니게 될 만한 일이기도 하고요. 교실 안에 벌이 한 마리 들어와도 바로 패닉인데 하물며 모자라니... 물론 모자를 얼른 벗으면 되긴 하지만요. , 모자 속에서 뭔가 붕붕 날아다니다가 머리에 툭툭 부딪친 뒤에 벌침에 찔린다는 상상을 하니 정말로 정신을 놓아버릴 것만 같다... 아무튼 이러한 번역을 보고 있자니 원문으로 읽어 한 번 더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마저 들더군요. 어지간해선 영어를 보는 걸 거부하는 나의 마음을 움직이다니, 제법이군! 재미있기는 하지만 모든 번역책에서 쓸 만한 방법은 아니지요. 국내에 동일한 서적이 이미 많이 소개되었기에 가능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에는 이윤기님과의 인터뷰도 수록되어 있어서 이윤기님의 팬이라면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도 '그녀'에 대한 견해를 밝히셨더군요. 그녀라는 말이 우리말이라 생각하지 않아 사용하길 꺼려하는데 여기서는 그냥 썼다고 말이지요. 이 논의에 대해 여러가지를 찾아본 적이 있긴 한데 지금은 관심이 떨어져서... 전 익숙한 것에 안착하려는 성향이 강하니까요. 아니, 사실은 그냥 게으름뱅이라서... 뭐 여기에 대해선 이렇다저렇다 떠들 지식도 남아있지 않고 의욕도 없으니 넘어가고... 이윤기님이 하신 특이한 번역에 대해서도 대충 언급을 했으니 뭔가 흐지부지한 감이 들지만 그냥 글을 마무리 짓기로 하겠습니다. 난 진짜 몇 년이 지나도 마무리 짓는 능력이 발전 안 하는구나...



마지막으로 네이버 책 추리소설 TOP 100에 왜 올라있는지 모를 마르께스 영감님의 백년의 고독... 좋은 책이긴 하지만 거기에 있을 이유는 없을 건데... TOP 100 중 읽은 게 딱 50개더라고요. 나도 아직 한참 멀었어...




덧글

  • 細流 2013/04/18 19:51 # 답글

    전 아주 오래 전에 읽었는데 이젠 아주 기본적인 설정 말고는 내용을 다 잊어버려서.. 정윤성님 포스트를 읽으니 왠지 기분이 새롭네요. 그리고 스릴러의 탈을 썼지만 사실은 개그;인 영화 '5인의 탐정가'가 설정을 여기서 많이 따 왔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초대받아 가 봤더니 주인은 없고 사람은 죽어 나가고.. 물론 이쪽에선 손님들이 죽는 건 아니었지만요^^;
    이윤기 님이 번역하신 판본도 있었군요. 찾아서 읽어 봐야겠습니다.^^
  • 정윤성 2013/04/18 20:52 #

    저도 그 영화 기억나요! 그거 엄청 웃겼는데. 주말의 명화에서 틀어줄 때마다 봤던 기억이 나네요.
  • 아침 2013/04/25 15:44 # 답글

    언제나 최고의 추리소설하면 팍 떠오르는 작품이죠. 다시 읽을때마다 새로운 기분이랍니다. 특히 작가의 오묘한 이중적인 묘사들은 언제봐도 감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건 두번 읽지 않으면 생각해내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재탕의 즐거움까지 따로 준다는게 더 대단하죠.ㅇㅅㅇ
  • 정윤성 2013/04/25 18:06 #

    네, 몇 번이고 읽었는데도 여전히 재미있어서 감탄하게 되는 소설이지요. 명작이란 다시 읽어도 재미있는 작품을 말하는 거 같아요.
  • chaogirl 2016/01/03 18:31 # 삭제 답글

    정말로 최고의 추리소설이죠.. 처음 읽은게 아주 어릴때 였는데 그 긴장감과 공포감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지난주에 BBC에서 "And Then There Were None "이란 제목으로 3편짜리 미니시리즈가 방영되었습니다. 역시 BBC라 아가사 여사의 작품을 잘 살렸던데요.. 음악이랑 영상미랑 좋더라구요.. 참고하세요..
  • 정윤성 2016/01/03 22:14 #

    네, 정말 최고죠. BBC가 드라마를 참 잘 만들던데 걔네들이 만든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라니 엄청 재미있을 것 같네요! chaogirl님 덕분에 오랜만에 재밌는 드라마를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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