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기하라 사야카 고교 시절 -일본


'아카가와 지로'의 장편 시리즈 중 하나인 '스기하라 사야카 시리즈' 중 고교 시절 3년간을 다룬 세 편을 읽었습니다. 이 시리즈는

특이하게도 1년에 한 편씩 출시되며 주인공인 스기하라 사야카가 한 살씩 성장합니다. 나름대로 리얼타임 소설인 셈이지요. 사흘

동안 세 권을 읽었는데 중3으로 시작한 주인공이 순식간에 고교 3학년까지 마구 성장하는 걸 보는 기분이 참 묘하네요. 시리즈의 

시작을 함께 한 독자라면 딸이 자라는 기분을 느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경우에는 스기하라 사야카가 하루에 한 살씩

먹는 걸 보다보니 좀 징그러운 감도 없지 않았습니다만... 위의 이미지 순서대로 '군청색 캔버스'가 사야카 16세 고교 1학년 때의

이야기이고 '갈색 재킷'이 17세 고교 2학년, '보라색 위크엔드'가 18세 고교 3학년의 이야기입니다. 음, 내가 고등학생 때는 어땠더라...

고1 때는 야자한 기억 밖에 없고 고2 때도 야자했고 고3 때도 야자... 야이, 이게 뭐야...


군청색 캔버스에서의 스기하라 사야카는 고교 1학년입니다. 전작에서 만났던 담임 '안자이 기누코' 선생님과는 가끔 연락하는 사이이고

전작부터 친구였던 '교코'와 '아키오'와는 여전히 친구에 같은 고교 브라스밴드 부입니다. 이야기의 시작에서 사야카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깜짝 놀란 기누코 선생과 교코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는데 정말로 안 죽었습니다. 합숙소의 계곡에서 발이

미끄러져 물에 빠진 것이었지요. 그래도 걱정이 된 기누코 선생은 교코를 데리고 합숙소로 향합니다. 합숙소가 있는 마을에서는

강도로 복역하다가 막 출소한 '히사오'가 마을 주민들의 배척을 받고 동생 '도모코'는 친구가 없어 합숙소의 아이들과 친해집니다.

은퇴한 화가 '사쿠라'에 브라스밴드 부 선배인 '미쓰오'를 찾아온 의문의 아주머니 노리코까지 나타나 등장인물을 채운 뒤 이상한

사건이 이어집니다. 목숨의 위협을 받는 사야카, 칼에 찔려 죽은 사쿠라, 사쿠라를 찌른 칼을 들고 장롱 속에 숨어 있던 도모코, 

누군가에 의해 교살당할 뻔한 노리코, 알리바이가 있음에도 자기가 범인이라 주장하는 히사오까지 합숙하러 왔는데 개판이 난

사건에 휘말린 사야카입니다.


갈색 재킷은 스기하라 사야카 고교 2학년 때의 이야기입니다. 미술관에 간 기누코와 가와무라 형사는 호수에 빠진 여성을 구합니다.

남성용 갈색 재킷을 쥐고 있던 물에 빠진 여성, 미유키는 기억을 잃은 상태. 그리고 기누코와 가와무라 형사에게 의문의 남자가 

나타나 미유키의 행방을 알아내려 합니다. 미유키를 둘러싸고 사야카, 기누코, 가와무라 형사 모두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목숨의

위협을 받습니다. 이래저래 사건이 복잡해지는 가운데 범인은 교코를 납치한 뒤 사야카에게 미유키가 있는 장소를 알아내지 않으면

그녀를 죽이겠다고 협박합니다. 생판 남인 미유키와 친구 교코의 목숨을 저울질해야하는 순간에 처하게 된 사야카입니다.


보라색 위크엔드는 고3이 된 사야카의 이야기입니다.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던 교코는 평판이 영 좋지 않은 남자 '다다노'와 교제를

합니다. 이에 사야카는 친구가 걱정이 되어 다다노에게 접근합니다. 한편 다다노의 아버지가 경영하는 회사에 다니던 '사카이'는

아내가 사채업자에게 큰 돈을 빚졌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집니다. 충격에 빠져 어찌저찌하다보니 대출업체 직원과 바람을 피게

된 사카이. 그도 모자라 상사인 '오가키' 상무는 그에게 폭력단에 찔러줄 돈을 운반하라고 시키기까지 합니다. 인생이 코너에 몰렸단

걸 알게 된 사카이는 그 돈을 빼돌려 바람핀 여자와 새 인생을 시작하려 합니다. 다다노의 팬트하우스에서 파티가 열리는 날,

사야카와 사카이 모두 그 장소로 향하고 사건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알찬 고교 시절을 보낸 스기하라 사야카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어... 평일에는 9시까지 야자하고 11시까지 학교 도서관에 있다가

12시에 집에 와서 씻고 먹고 1시에 잤다가 6시 반에 일어나서 다시 학교로 갔네요. 토요일에는 성당 갔고 일요일에는 종일 잠을 잤고...

이야, 최악이다. 뭐, 야자 시간이나 성당에서 나름대로 잘 놀았으니 됐다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렇다하게 기억에 남을 이벤트가

없다는 건 아쉽네요. 그때 사귄 친구들과 지금도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낸다는 건 큰 수확이지만요. ...솔직히 말해 연애를 못해봤다는

게 제일 아쉽습니다. 슬퍼요. 고교생의 연애 같은 거 이제 다시는 못할 텐데! ...아, 지금도 못하고 있구나. 바뀐 게 없네.

시리즈물로의 장점이 투철한 소설입니다. 시리즈 1편에서 나는 절대 아기를 가지지 않겠다고 말한 사야카의 새언니 노리코는 다음

작에서 떡하니 임신을 하고 있고 그 다음 권에서는 1살짜리 아기가 꼬물랑꼬물랑 기어다니고 있으며 그 다음다음 권에서는 제법

무거워져 뒤뚱뒤뚱 걷고 손도 바이바이 흔들기까지 합니다. 아기의 성장이란 참 놀라워요. 1년간의 텀을 둔다는 설정 덕분에 인물의

연속성이 대단히 뛰어나 감정 이입이 용이합니다. 물론 이는 1년 간 등장인물들이 현상유지를 하는 부분이 많은 덕이기도 합니다.

하마다 교코 같은 경우 불행한 연애를 거듭하는데 남자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하다는 게 이어져서 안쓰러운 감정이 그대로

이어집니다. 그 와중에 한 걸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지요. 기누코와 가와무라 역시 별 진전이

없는 연애 과정을 보이지만 그래도 역시 진도를 나가긴 했다는 게 보여 흥미를 유발하고요. 사야카의 경우 성장하는 모습이나 주위의

상황에 맞춰 변화하는 모습이 가장 자세히 드러나고 있어 함께 성장한다는 감정을 여실히 느끼게 합니다. 사람을 매일 보면 변화를

느낄 수가 없지만 1년에 한 번씩 보면 변한 게 눈에 확 띄는 느낌이랄까요. 제 친구들도 가끔씩 보는데 볼 때마다 늙어서 깜짝깜짝

놀랍니다. 걔네들 눈에 내가 그렇게 보이겠지...

인물의 매력에 기댄다는 점은 시리즈물의 기본이지만 인물의 성장이라는 매력을 이렇게 잘 활용하는 예는 보기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미스터리의 부분에 있어서는 그리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제가 1권부터 4권까지 밖에 읽지 않았지만 우연에 기대는 전개가

당연하다는 듯 매번 이어집니다. 우연이 목숨을 구하고 우연이 사건을 해결하는 걸 보고 있으면 기분이 영 싱숭생숭하지요. 저도

로또가 당첨되는 우연 같은 게 일어나지 않으려나요? 저 로또 1등하면 돈 진짜 잘 쓸 자신 있는데... 집도 사고 차도 살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본격 추리입니다만 갈색 재킷의 경우 서스펜스 소설에 가깝습니다. 다만 완성도는 좀 낮지요. 트릭이나 단서 발견의

과정, 추리의 진행 모두 우연의 힘에 기대고 서스펜스 쪽 역시 인물들의 동선이 매우 좁고 위험한 순간마다 우연이 작용하여 좋게

봐도 훌륭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재미는 있지만 편의적인 진행이 과도하다는 인상을 버릴 수가 없네요.

우연의 요소를 배제하고 생각하더라도 사건 자체가 진부한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소설의 출판 시기를 감안해보면 진부하지 않은

게 이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습니다. 

전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사건의 성적인 경향, 그러니까 미성년자와 성적으로 어쩌구저쩌구 구질구질 난장판이

되는 모습은 여전합니다. 여고생 - 2~4권 한정 - 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로 보기 힘들 지경입니다. 아니, 여고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되레 가능한 것일까요? 아무튼 제 취향에는 맞지 않습니다. 다만 1권보다는 조금 덜 구질구질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요.

완성도 높은 본격 추리소설을 기대한다면 부족한 감이 많을 거라 생각됩니다. 다양한 시도를 하는 실험적인 미스터리라는 관점에서

봐도 부족합니다. 등장인물의 매력과 시리즈물이 가지는 재미라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며 이외의 장점은 찾기 힘듭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읽을 가치는 된다고 여겨지네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며 그럼에도 의외로 인물들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단

점이 큰 매력이라 여겨집니다. 추천하기에는 미묘하지만 나쁘지는 않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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