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림스톤 -미국


시리즈 첫 권인 '살인자의 진열장'이 국내에 소개된 지 한참이 지나 두 번째 작인 '악마의 놀이'가 나오고 또 한참이 지나 시리즈 

세 번째 작 '브림스톤'이 나온 '팬더개스트 시리즈'입니다. 원래는 1년 정도의 텀을 두고 출시가 되었었지만 브림스톤이 나온 이후로

후속작인 '죽음의 춤'과 '지옥의 문'이 몇 개월도 안 되서 슝슝 출간이 되더라고요. 팬더개스트 시리즈는 '더글라스 프레스턴'과

'링컨 차일드' 두 사람이 함께 쓰고 있습니다. 시리즈의 주인공인 팬더개스트는 본래 이 두 사람의 작품인 '렐릭'에 나온 조연인데

독자들에게 큰 인상을 주었는지 어느새 하나의 시리즈의 주역 자리를 꿰찼습니다. 팬더개스트 시리즈는 FBI요원인 '알로이시어스

팬더개스트'가 뉴욕 경찰인 '다고스타'와 함께 각종 이상한 사건들을 이상한 방식으로 해결한다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불사 실험이나

괴물 소년 같은 현실적이지 않은 소재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작가가 되겠다고 경찰을 때려치우고 캐나다로 갔던 다고스타는 소설 두 편을 말아먹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옵니다. 뉴욕에서 부경감의

직위에 있던 다고스타는 이제 해변가의 말단 순경이 되었지요. 그런 그가 근무하던 곳에서 의문의 죽음이 발생했습니다. 사람이

불에 타 죽은 게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시체 외에는 달리 불에 탄 곳이 없다는 점. 마치 예전부터 괴담처럼 알려진 인체

발화 사건과 비슷한 모양새인 것이지요. 게다가 피해자가 목에 걸고 있던 십자가는 녹아서 몸 안으로 파고들어 눌어붙어 있었지요.

기이한 죽음이 발생하자마자 당연하다는 듯 팬더개스트가 나타납니다. 팬더개스트와 다고스타는 다시 한 번 힘을 모아 이 이상한

죽음을 조사하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인체 자연 발화와 같은 죽음이 다시 한 번 이어집니다. 몇 가지로 갈라진 단서들. 중국에게

미국의 미사일 방어막 기술을 팔아넘기려는 사악한 사업가, 뚱뚱하고 쾌활한 백작, 연이은 기이한 죽음을 말세의 증거로 보고

시골에서 올라온 종교인까지 나타나 사건은 점점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됩니다.


팬더개스트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은 FBI요원이라면서 이상하기 짝이 없는 주인공 팬더개스트와 사건의 비현실성입니다. 주인공도

이상하고 사건도 이상해서 전개가 난잡한 개판으로 빠지다가도 후반으로 가면 은근슬쩍 제 궤도로 돌아가 화기애애하게 끝난다는

게 이 시리즈만의 특징이지요. 브림스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체 발화에 더해 이것이 마치 악마의 저주처럼 보이게 하는 소품들도

깔아놓지요. 벽에 남은 말발굽 모양의 흔적이나 타들어간 십자가나 유황 냄새 등등... 이야기는 뒤로 가면 아예 악마의 강령술에다

말세론까지 나와서 난장판 개판이 되지요. 그러다가 여느 때처럼 슬쩍 멀쩡한 전개로 돌아가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처음부터 논리적이거나 현실적이었다면, 혹은 아예 비현실을 용인하며 가능성을 전부 열어놓았다면 위치가

확실했을 건데 그렇지가 않고 그 사이를 왔다갔다하기 때문이지요. 어느 쪽이건 확실히 하는 게 좋은 독자라면 그닥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번 편만의 특징이라면 후속편을 위해 투자되는 지분이 상당히 많다는 점입니다. 앞서의 두 편은 각기 독립되어 있다고 봐도 좋은데

브림스톤은 뒤에 이어지는 죽음의 춤과 연관성을 강하게 지닙니다. 다음 편을 위해 자신의 분량을 좀 사용하는데 이 부분 또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생각합니다. 시리즈의 유지를 위해 작품의 독립성에 타격을 입는 셈이니까요.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

볼 수도 있겠고요. 아무튼 시리즈 간의 연결 고리가 강해지면 그에 따른 위험도 커지는 법입니다.

사건에 있어 비현실적인 현상의 사용에 서슴이 없긴 한데 소설 내에서 가장 비현실적이고 이상한 인물은 바로 주인공 팬더개스트입니다.

팬더개스트는 비썩 마른 몸에 유령처럼 새하얀 피부를 지녔고 조금도 구겨지지 않은 고급 양복을 당연하다는듯 입고 다니며 엄청

커다란 자동차인 롤스로이스 팬텀을 타고 다닙니다. 돈이 말도 못하게 많고 그 돈을 쓰는 것에 전혀 망설임이 없지요. 또한 FBI라고

하면서도 특정 지부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움직입니다. 미국 전역에 걸쳐 이상한 방식의 죽음이 발견되면 만사를

제쳐두고 그리로 달려가지요. 수사 방식 또한 이상합니다. 전혀 절차를 따르지 않고 불법을 거리낌없이 저지릅니다. 시리즈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한 명인 '로라 헤이워드'는 팬더개스트를 가리켜 도통 법정에 서지 않는 법집행관이라 말하며 이렇게 덧붙입니다.

"왜인줄 아세요? 범인이 법정에 서기 전에 모두 죽었기 때문이에요." 범인 잘 죽이는 요원이란 말이지요. 그러면서도 꿀처럼 달콤한

목소리로 혀를 놀려 문제의 대부분을 무마시키는 재주까지 있습니다. 생긴 것이나 하는 짓이나 전부 다 이상한 인물이라 독자들의

흥미를 자아내지 않나 생각합니다.

생각합니다만, 시리즈를 이끌어가는 힘이 강하다는 느낌까지는 아닙니다. 기행이라는 것은 자주 보면 일상이 되기 마련인데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어지간히 이상하지 않으면 살아가기도 힘들지요. 팬더개스트가 어지간히 이상하긴 한데 그 모습을 세 권, 네 권씩

보고 있으면 잰 원래 저러니까... 라는 생각만 남게 됩니다. 또 다른 매력을 뿜어내야 하는데 처음에 원체 벌여놓은 게 많아서 그리

쉽지 않습니다. 이번 작에서는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보이는 강수를 내세웠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리 와닿지 않았습니다.

브림스톤 자체만 보자면 난잡하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처음에는 직선적이던 이야기가 중반부에 들어 벌어지는데 이게 다중적이고

풍부하다기보다는 그냥 몇 갈래로 갈라져서 따로 뻗어간다는 인상입니다. 뒤로 가서 하나로 묶이지 않고 각자의 다발이 강한 힘을

지닌 것도 아니라서 서로 간의 시너지를 일으키지 못했다고 보여집니다. 각 다발 간의 연결이 더욱 강해야하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주요 악역의 비중이 중반부에 한 번 완전히 소멸했다가 후반부에 다시 나온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이야기의 다발이 갈라질 때 한 번

버려졌다가 다시 주워지는 셈이라 참 하찮아보입니다. 동기나 행위 자체는 흥미를 가질 법한 부분이 충분한데 방치된 텀이 하도

길어서 안타까울 지경입니다. 조금만 더 아껴줬다면 어땠을런지요...

전개가 파편화되는데다 편의적으로 움직이는 부분이 있어 읽기가 그리 편하지 않습니다. 다발난 이야기는 주요 인물들을 부각하기

위한 장치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성공이라 보긴 힘들고요. 시리즈가 아닌 개별 작품으로는 앞서의 두 편에 비해 흡입력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게다가 브림스톤을 시작으로 시리즈가 긴밀하게 엮이는데 시점이 되는 부분에서 재미가 떨어지는 건

꽤나 위험하지 않나 느껴지고요. 브림스톤 이후로도 세 편의 시리즈가 이어지는 것으로 봐서 상업적으로 실패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만

행보를 거듭할수록 점점 독창성을 잃어가고 전형적인 부분만 늘어가는 것 같아 조금 안타깝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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