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춤, 지옥의 문 -미국


'팬더개스트 시리즈'의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작품인 '죽음의 춤'과 '지옥의 문'을 읽었습니다. 팬더개스트 시리즈에 대해서는 이전에

나름 이야기를 많이 한 느낌이니 넘어가고 뭔가 유치찬란한 느낌인 표지에 대해서도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표지가 참...


누설이 있습니다.

이어지는 시리즈다보니 줄거리를 적을 때 누설이 되네요.

뭐, 그러려니 하시고...


앞서 '브림스톤'에서 팬더개스트는 자신의 동생 '디오게네스 팬더개스트'를 만나게 됩니다. 동생은 그에게 특정한 날짜가 적힌

쪽지를 건네고 팬더개스트는 이 날짜에 동생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낍니다. 팬더개스트는 전작에서

뉴욕의 형사로 복귀하고 '로라 헤이워드'와도 알콩달콩 즐겁게 잘 살고 있는 '다고스타'를 막무가내로 불러 자기 동생이 범죄를

저지를 건데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엄청나게 잔인하고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니 도와달라고 부탁합니다. 팬더개스트랑 엮이면

되는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를 돕기로 한 다고스타. 팬더개스트와 다고스타, 그리고 팬더개스트의 피후견인 '콘스턴스'는

디오게네스가 벌일 범죄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걸 어떻게하면 막을 수 있을 지 고민합니다. 한편 디오게네스는 팬더개스트가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죽이기 시작합니다. 지인들은 죽어나가고 지정된 날짜는 다가오고... 그 와중에 박물관에서 일을 하던

'마고 그린' 마저 디오게네스의 표적이 되는데...


죽음의 춤에서 디오게네스의 범죄를 어찌저찌 막은 것도 아니고 못 막은 것도 아닌 미묘한 상태로 팬더개스트 형제의 대결은 일단락이

나고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뉴욕 박물관에 반짝이는 정체불명의 가루가 배달됩니다. 탄저균인가 싶어 한바탕 난리가 난 뒤 분석을

통해 드러난 가루의 정체는 바로 다이아몬드.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가 디오게네스에 의해 도난당했던 귀중한 다이아몬드들이

전부 박살이 난 채 되돌아온 것이었습니다. 다고스타들은 디오게네스의 진정한 악행은 아직 실행되지 않았음을 깨닫고 감옥에 갇힌

팬더개스트를 꺼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한편 디오게네스는 팬더개스트의 미궁과도 같은 집에 잠입하여 콘스턴스를 유혹합니다.

나이는 많지만 철은 없는 콘스턴스는 디오게네스의 끈질긴 유혹에 서서히 마음이 기울고 다고스타들은 교도소를 뚫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가운데 뉴욕 박물관은 그간의 불명예를 극복하기 위해 '세네프의 묘지'를 주역으로 한 대규모의 전시회를 계획합니다. 또다시

박물관이 중심이 되어 디오게네스의 잔인한 범죄가 그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그걸 유일하게 막을 인물인 팬더개스트는 감옥의 창살

너머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브림스톤을 포함하여 죽음의 춤, 지옥의 문 세 작품을 작가는 일명 디오게네스 삼부작이라 부르더군요. 이 세 권은 팬더개스트의 

동생 디오게네스가 시리즈에서 주요 악역을 담당하고 있는 작품 군입니다. 이러한 장르 소설에 있어서 강력하고 사악한 악역의

존재는 어찌보면 필수불가결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홈스'에게는 '모리어티'가 있고 '포와로'에게는... 어라? 없네? 필수불가결까진

아니네요. 장르가 좀 다르긴 하지만... 뭐, 그래도 있으면 나쁠 것은 없겠습니다. 물리칠 가치가 있는 끝판 대장이 있어야 성취감과

보람이 느껴질 터이니까요. 다만, 이 강력하고 사악한 악역의 끝판 대장이라는 존재에게는 나름대로 딜레마가 있습니다. 어디까지

강력하고 사악해야 하는냐, 가 그것이지요. 판타지라면 말도 못하게 강해도 크게 문제가 되진 않을 겁니다. 대체 저걸 어떻게 때려

죽여... 라는 마음이 절로 들더라도 함께 싸우는 동료들의 용기와 신뢰, 그리고 그간 여행에서 만난 많은 이들의 바람과 믿음을

어떻게든 설득력이 있는 설명을 통해 힘으로 바꿔서 한방 제대로 먹이면 어찌저찌 죽일 수 있는 게 판타지의 로망이니까요. 그런데

악의 대마왕도, 전설의 몬스터도, 인조인간도, 봉인된 고대의 신도 아닌 그냥 인간이 강력하고 사악한 악당의 자리를 꿰차려면 좀

힘듭니다. 총알에 맞으면 맥없이 죽어버리는 게 인간인지라 육체적 강함이 아니라 다른 방면으로 끝판 대장의 위엄을 보이긴 해야

하는데 마지막에 죽고 소설을 끝내야 할 때쯤 되어도 마냥 쉽게 죽어버리면 맥이 쑥 빠진다는 거지요. 그렇다고 총알 맞았는데도

살아남으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고... 디오게네스도 비슷한 문제에 봉착합니다. 팬더개스트가 쩔쩔 매는 대악당이긴 한데 대악당의

위엄을 갖춘 채 죽는 건 영 쉽지 않은 문제거든요. 그러면 디오게네스는 이러한 곤란을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못했습니다.

팬더개스트 시리즈의 앞서 두 권은 비현실적인 소재를 끌어와 현실적인 수사를 하는 척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갔습니다. 영생의

비밀을 푼 사람도 나오고 괴물도 나오고... 그런 사건들도 잘 해결한 팬더개스트가 자기 동생을 가리켜 엄청나게 위험하고 사악하고

영리하고 아무튼 나쁜 놈, 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대단한 나쁜 놈이 한 짓이라고는 단역 중의 단역을 몇 명 죽인 것과

매번 막히는 범죄 행각이 전부입니다. 사람을 죽였으니 잔인한 살인마가 맞긴 한데 이 시리즈가 워낙 사람을 잘 죽여서 그닥...

당장 주인공인 팬더개스트부터 사람을 잘 죽이니... 얼마나 잘 죽였으면 교도소에 수감된 팬더개스트를 괴롭히려고 그가 잡아넣은

범죄자를 찾아 팬더개스트와 같은 운동장을 쓰게 하여 보복당하게 하려고 찾아보니 그가 담당한 사건의 범인들이 법정이나 감옥까지 

가지도 못하고 다 시체가 되어버려서 찾을 수가 없었을 정도지요. 죽음의 춤에서 보이는 디오게네스의 범죄는 냉정하게 보면 그냥

도둑질이라 썩 와닿지 않고 지옥의 문에서 벌이는 범죄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표출하는 것이지 뭔가 대단히 사악한 마음으로

행하는 게 아니라서 역시나 썩 와닿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런 디오게네스의 최후는 참으로 뭐랄까... 전근대적이라고 해야 할까,

낡았다고 해야 할까, 유치하다고 해야 할까... 지옥의 문 최후반부의 전개를 보면서 태어나지도 않았던 6~70년대로 회귀한 기분마저

들었으니 정말 말 다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마지막 콘스턴스의 대사는 독자로 하여금 절로 코웃음이 쳐지게 만드는

낡아빠진 전개라서 역으로 깜짝 놀랄 지경이었지요. 야심차게 나왔던 악역 디오게네스씨의 행보는 참으로 초라했습니다.

팬더개스트 시리즈 자체에는 큰 애정이 없는데 어쩌다보니 나오는 족족 다 읽고 있습니다. 있습니다만 이번 디오게네스 삼부작의

경우 세 번 연속의 실망이라는 결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야기의 축이 되는 악역 디오게네스의 실망스러움은 물론이고 인물들의

경우에도 참신함이 퇴색되어 매력이 덜하고 사건의 경우도 완성도가 뛰어나지 않으며 긴장감의 조성도 그리 대단치 않습니다.

지나치게 극적인 무대를 설정했지만 내용물은 그게 못미쳤다는 느낌이라 디오게네스 삼부작은 모두 추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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