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숙한 솜씨 -유럽


 

 

 '능숙한 솜씨'는 최근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의 데뷔작입니다. 작가는 1951년생으로 55세의 나이에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Daum'에서 작가 소개를 보니 이 소설의 원제인 'Travail Soigne''세밀한 작업'이라 적어놨네요. '네이버 사전'을 통해 검색해보니 '공들인 솜씨'라는 결과가 나오고요. 능숙한 솜씨나 세밀한 작업이나 공들인 솜씨나 뭐... 그게 그거라고 여겨도 될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작가의 데뷔작인 동시에 작가가 창작한 주인공인 '카미유 베르호벤'이 첫 등장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카미유 베르호벤은 50대의 성인 남성으로 키가 145cm인 탐정소설 사상 최단신인 형사반장입니다. 어머니의 태내에 있을 때 모친의 과도한 흡연으로 인해 기형적으로 신장이 자라지 않게 되었다는 설정이더군요. 그러니까 되도록 담배는 끊는 게 좋습니다. 저는 애초에 배우질 않았지요. 흡연자 분들을 볼 때면 궁금한 게 냄새가 그렇게 불쾌한데 잘도 그걸 피울 생각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흡연자가 되기 전에 담배 냄새를 접하면 거부감을 느끼리라 예상하거든요. 처음부터 담배 냄새가 참 좋았다면 그건 타고난 거니까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긴 합니다만.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흡연에 입문한 분들은 모두 거부감을 이겨내고 하나의 도전을 한 인물들이 되겠군요. 최초로 삭힌 홍어나 수르스트뢰밍을 먹어 본 사람과도 같은 개척 정신을 지녔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물론 그런 도전의 대가가 돈과 건강을 잃는 것이니 전혀 가치있어 보이지 않습니다만.

 

 말도 안 되게 잔인한 살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나름대로 경험이 뛰어난 카미유 베르호벤 반장과 그의 강력반 팀원들 모두 여성을 갈갈이 해체하여 그 파편을 여기저기 흐트려놓은 사건 현장을 보고 할 말을 잃고 맙니다. 피해자의 몸을 마구 토막내고 내장을 막 흩어놓은 것도 모자라 손가락 마저 잘라내어 그것을 붓처럼 사용해 벽에 '내가 돌아왔다.'란 글을 써놓은 범인의 행각은 미친 놈이란 말이 딱 어울렸습니다. 아수라장이나 마찬가지인 현장에 이질적인 증거 하나가 발견됩니다. 도장으로 찍은 가짜 손가락 지문이 그것인데 문제는 이 가짜 손가락 지문이 다른 사건에서도 발견된 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살인범은 사실 연쇄살인범인 것이지요. 범인이 이전에 저지른 사건에 대해서도 조사하게 된 베르호벤 반장은 그 사건의 피해자가 몸이 반토막나 살해되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러던 중 반장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닫습니다. 바로 피해자가 반토막나 죽은 사건이 이미 이전에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제임스 엘로이'가 쓴 '블랙 달리아'라는 책에서 벌어졌던 사건이었지요. 얼른 책을 뒤져 확인한 결과 가짜 손가락 지문이 찍혀 있던 사건과 블랙 달리아에서 묘사된 사건이 아주 세세한 곳까지 동일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 이 연쇄살인범은 소설에 나온 범죄를 배껴 저지르는 미친 연쇄살인범이었던 것이지요. 이럴 즈음 어느 서점 주인에게 연락이 옵니다. 피해자의 몸을 마구 난자한 사건이 '브랫 이스턴 엘리스'가 쓴 '아메리칸 싸이코'의 내용과 비슷한 것 같다는 제보였지요. 이제 카미유 베르호벤 반장은 자신이 잡아야 하는 범인이 추리소설에 나오는 범죄를 따라하는 프렌치 싸이코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 소설에서 범인이 저지른 범죄 횟수는 총 여섯 번이며 다섯 개의 실존하는 소설에서 따왔습니다. 제임스 엘로이의 대표작인 블랙 달리아, 추리소설의 효시라고도 불리는 '에밀 가보리오''오르시발의 범죄', 국내에는 영화로 먼저 선보인 브랫 이스턴 엘리스의 아메리칸 싸이코, '윌리엄 매킬바니''레들로', 부부 작가인 '셰발''발뢰''로제안나'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중 블랙 달리아 만이 국내에 소개가 되었습니다. 블랙 달리아 재미있었지요. 에밀 가보리오의 작품 중에는 '르콕 탐정'이 번역되어 있기도 합니다. 아메리칸 싸이코는 지나치게 잔인해서인지 몰라도 영화를 통해 인지도를 - 조금 -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번역 소식이 없네요. '살로, 소돔의 120'도 정식으로 들어온 판인데 이참에 한번... - 이미 국내에 번역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얼른 읽어봐야겠네요. - 실제 소설에서의 살인을 그대로 베껴 실제로 저지른다는 설정은 흥미롭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위대한 명작을 따라서 범죄를 저지른다는 건 조금은 식상한 맛이 느껴지지요. '단테''신곡'을 따라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내용의 소설만 해도 이미 몇 권은 있으니까요. 물론 유명한 추리소설의 사건을 재현했다는 건 단테의 신곡을 따라하며 말세라고 시시덕거리는 것과는 조금 다르긴 합니다만 그래도 엄청나게 참신한 발상이라는 마음은 들지 않습니다. 게다가 작품 중 대부분이 국내에서는 읽을 수 없는 것들이라 거부감도 좀 있고요. 이건 작가의 잘못이 아니지만요... 발상 자체의 참신함에 대해선 그리 대단하단 느낌을 받을 수 없지만 전개는 제법 재미있습니다. 후반부에 마련된 색다른 반전은 작가의 충분한 고심이 엿볼 수 있습니다. 반전에 대해선 작품의 제목과도 같은 능숙한 솜씨였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1부와 2부로 나눴나 했더니 그걸 위한 것이었더군요. 하지만 이 반전으로 인해서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근데 그걸 말하면 소설의 재미있는 부분을 아주 다 까발리는 게 되서 말하기가 좀 꺼려지네요... 이 소설은 "작가는 따옴표 없는 여러 인용구들을 효율적으로 짜 맞추는 사람이다." 라는 '롤랑 바르트'의 말로 시작하는데 사실 여기서부터 반전을 위한 준비가 되고 있었다 생각하니 정말 재미있습니다. 재미있는데 그걸 여기 써놓으면 다른 분들은 재미없겠지요...

적당히 색다른 발상과 제법 재미있는 반전이 있는 소설으로 전개의 부분은 어떠냐면 좀 산만합니다. 많은 부분을 버리기 싫어서 그냥 끌어안고 간다는 인상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과연 데뷔작 답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쳐낼 건 좀 쳐내야 되는데 전개에 도움이 되거나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면 그 양이 얼마나 조금이건 가리지 않고 무조건 끌어안다보니 분량도 늘어나고 산만하기도 하지요. 사건 자체에 관련된 갈등이 있고 인물들의 성격을 드러내기 위한 갈등도 있고 실감나는 배경을 위한 갈등도 있는데 이것들이 호응을 하지 않고 각자 따로 놀아서 더욱 정신이 없습니다. 인물들을 드러내는 방법 역시 능숙하지는 못합니다. 그렇다기보단 좀 과하게 고풍스럽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인물들의 이름과 행적, 성격, 그리고 성격 등에 관련된 에피소드 등을 일단 주르륵 나열하는 것으로 인물 소개를 시작하다보니 길고 지루한 감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무엇이고 키와 외모는 이러저러하다, 무슨 무슨 과정을 거쳐서 현재 형사가 되었고 성격은 어떠어떠하다, 이러한 성격은 그가 이전에 했던 이 사건 저 사건 등에서 잘 알 수 있다, 등등... 옛날 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지요.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인물의 정보를 흘리는 최근의 방식보다는 지루하긴 합니다. 전개도 속도감이 느껴지는 건 아닙니다. 굵직굵직한 사건이 발생하고 이에 이어진 세세한 수사나 형사 각자의 생활 등이 보여진 뒤 몇 가지 단서를 찾아내게 되고 다시 사건이 또 발생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빠르고 신나진 않지만 치밀한 맛이 있지요. 어느 것 하나 뒤에 두고 가지 않아 디테일하다는 점도 장점... 일까... 그건 확신할 수 없네요.

 번역에 대해서 할 말이 있습니다. 번역이 뭐랄까, 번역가의 언어가 너무 사용되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정한 단어의 조금은 과도한 반복 사용이나 현재 쓰이는 단어가 아니라 국내 소설에서 쓰일 법한 단어의 선택, 문장이나 어조에서 느껴지는 통일감의 부족 등은 특정한 작가의 작품을 한국어로 옮기는 것을 넘어 번역하는 사람이 쌓아 올린 자기 언어도 함께 사용했다는 느낌입니다. 이게 좋은 건지 아닌 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번역은 반역이다' 같은 소리에는 큰 거부감이 들긴 합니다만 내용을 충실히 옮기면서도 외국 소설의 번역이 아니라 국내 작가의 소설인 것처럼 쓰는 것은 나쁘다고 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번역가가 가장 먼저 살려야 하는 건 작가 자신의 개성적인 문체가 아닐까, 외국 작가의 문장이란 결국 이국적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국적인 느낌을 번역 과정에서 흐리게 만든다면 그것도 문제가 아닐까 싶고요. 이러한 생각을 하다보니 예전에 읽었던 '에쿠니 가오리''츠지 히토나리'가 함께 - 그리고 각자 - 썼던 '냉정과 열정 사이'가 떠올랐습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남자 주인공 직업이 미술품 복원 전문가였지요. 그 소설에서 남자 주인공은 일본은 최대한 원본과 똑같이 복원하여 복원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드러나지 않는 것에 중점을 두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복원을 했다는 흔적이 남기고 복원가의 개성 또한 드러나게 하더라는 말을 합니다. 소설을 읽을 때에는 그렇구나, 복원가가 단순한 기술자를 넘어 자기 스스로 예술가라는 생각으로 복원을 하는 거구나, 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지만 능숙한 솜씨에서 드러나는 번역가의 문장을 읽고 있자니 그냥 그렇게 넘길만한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미술품은 경우 완벽한 복원이란 있을 수 없겠지요. 거장의 붓이 지나간 자리에 복원가의 붓이 암만 똑같이 따른다 해도 다른 사람이 다른 붓으로 그림에 닿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그러니 복원이 어차피 완벽하게 복원이 안 된다면 복원했다는 사실 그 자체 또한 하나의 예술이 되도록 하는 노력이란 가치있는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거장의 작품 그 자체를 구현한다는 복원 본래의 목적과 방향을 같지 않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번역 또한 외국 작가의 외국어를 완벽히 한국어로 소화해낼 수 없음은 분명하니 미술품 복원이라는 분야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제 개인적으로는 번역가의 모습이 문장과 단어에서 확고히 드러나는 게 그리 달갑지 않았습니다. 거부감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미술품 복원에 비교해 생각해보니 번역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되긴 했는데 소설을 읽다보니 느껴지는 거부감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소설이란 온전히 작가의 것이라는 제 인식 때문일까요?

 재미있는 반전이 준비된 완성도 있는 소설입니다. 그러나 미숙한 부분도 많고 반전으로 인하여 소설 자체에 약점이라 부를 부분이 생기기도 합니다. 데뷔작임을 좀 감안하고 읽는다면 더욱 재미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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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달팽탕 2014/02/16 08:55 # 삭제 답글

    아메리칸 싸이코는 황금가지서 밀클 로 나오지 않았나요? 제가 잘못 알고 있는건지?
  • 정윤성 2014/02/16 19:48 #

    앗, 나왔었군요. 작가 이름으로 검색했을 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서 아직인 줄 알았는데 밀리언셀러 클럽으로 이미 나왔었네요.
    좀 더 알아보고 썼어야 했는데 부끄럽습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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