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새가 말하다 -미국


'밤의 새가 말하다'는 '스완송', '소년시대'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미국의 유명한 호러 작가 '로버트 매캐먼'의 작품입니다.

로버트 매캐먼은 1978년에 호러 소설 '바알'로 데뷔한 뒤 여러 장르에 걸쳐 꾸준히 좋은 작품들을 써낸 작가입니다만 1993년

가족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이유로 절필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2002년 이 소설 밤의 새가 말하다를 가지고 10년만에

복귀했지요. 긴 공백기가 무색할 정도로 뛰어난 완성도를 보이는 이 소설을 통해 로버트 매캐먼은 아직 자신의 실력이 죽지

않았음을 잘 드러냈습니다.


1699년 한창 끓어오르는 미국의 개척 열풍을 '비드웰'이라는 거부도 올라탔습니다. 그는 '파운트로열'이라는 개척 마을을 짓고

미국 최대의 항구 도시로 키워낼 야망을 품었지요. 처음 몇 년은 나름대로 순조로웠습니다만 병이 돌고 작물이 죽어 나가는 등

나쁜 일이 계속 됩니다. 이러한 악재에 앞다투듯 비극이 찾아듭니다. 마을의 주재 신부님과 '대니얼 호워스'라는 남자가 살해된

것이었지요. 그들은 목이 깊게 잘려나가고 마치 짐승의 앞발에 당한 것 마냥 난자당해 죽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범인으로

대니얼의 아내 '레이첼 호워스'를 지목합니다.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 아이가 끔찍한 악마들과 성교를 나누는 레이첼을

목격했다고 주장했고 레이첼의 집 아래에서는 저주 인형이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레이첼은 마녀이며 마녀가 마을에 저주를 내려

악재가 계속된다고 여긴 사람들은 그녀를 화형시키자고 주장했고 비드웰 역시 얼른 자신의 마을을 안정시키고자 레이첼을 빨리

죽여버리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마녀라고 무작정 불에 태우는 건 문명인이 할 짓은 아니었지요. 문명인답게 그들은 순회 치안판사를

요청하여 마녀를 재판 받게 한 뒤 화형을 시키고자 합니다. 그리고 요청을 받은 판사 '우드워드'와 그의 서기 '매튜 코빗'이 조그만

마을 파운트로열에 도착하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매튜는 타고난 호기심과 관찰력, 그리고 레이첼의 당당한 아름다움에 반하여

그녀가 정말로 마녀인지 의심하게 됩니다. 우드워드는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사지만 주위의 외압과 몸과 마음을 좀먹는

질병, 그리고 거의 완벽한 증거 때문에 레이첼을 마녀라고 여기게 됩니다. 매튜는 무고한 레이첼을 지킬 수 있는 건 자신 뿐임을

깨닫고 홀로 고군분투를 벌입니다.


밤의 새가 말하다는 호러와 모험이 결함된 훌륭한 추리소설입니다. 기본적인 내용은 주인공 매튜가 레이첼이 뒤집어 쓴 마녀 의혹을

벗기고 진범을 찾아 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으로 추리의 방향이 제법 참신합니다. 단순히 일어난 사건의 범인 찾는다는 것이

아니라 마녀라는 혐의를 벗긴다는 점이 재미있지요. 마녀를 소재로 삼은 이야기나 누명을 벗기는 식의 이야기는 대단히 흔하지만

마녀의 혐의를 벗기는 추리소설이 되니 기대 이상의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무엇보다 근사한 점은 바로 치밀한 배경의 묘사입니다. 미국의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삼아 개척 마을의 광경을 매우

세밀하고 실감나게 표현한 작가의 실력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개척촌을 배경으로 삼은 영화나 게임을 많이 접했지만

이 소설만큼 마을의 구조를 체계적으로 알 수 있었던 적은 없던 것 같네요. 개척 마을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건 역시나 '금광을

찾아서'가... 진짜 재밌었는데. 그 게임은 초반에 술집의 도박사를 탈탈 털어서 자본을 모아놓는 게 중요했지요. 초등학교 가기 

전부터 도박사랑 포커를 친 셈이네요... 흠흠.


흑백 모니터로 했던 이 게임을 하던 기억이 아직도 선합니다. 세상에, 오른쪽 구석의 디스켓 아이콘 좀 봐... 5. 25인치야...

인물들도 제법 매력적입니다. 주인공인 매튜는 고아원 출신의 청년으로 타고난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스스로

호기심에 휘둘린다는 걸 느끼면서도 멈추려 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느껴지더군요. 정의감이나 호기심, 현실에의 안존 등이

매튜의 안에서 복잡하게 얽히지만 스스로 판단하려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 멋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뜬금없이 뒤집어 씌운

마녀라는 누명 아래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면서도 자신의 모든 행동이 오해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힘들어하는 레이첼도

근사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거칠게 행동하면서도 간간히 드러내는 연약한 모습을 볼 때마다 제 마음이 다 흔들렸...

흠흠. 우드워드 판사도 매력적이었고 개척 마을의 사람들 중에도 버리기 아까운 인물들이 많더군요. 캐릭터의 조형이 아주 훌륭했다

여겨집니다.

추리와 호러, 모험이 섞인 이야기의 전개도 속도감과 치밀함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이야기의 중후반까지 계속

되는 레이첼을 구하기 위한 매튜의 추리와 단서 추적은 색다른 배경에서 이루어지는 참신함 덕에 더욱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후반부의 복선 회수 과정이 조금 진부한 감이 강하여 이전까지의 속도감이 약해지더란 감을 받았습니다. 벽에 총을 하나씩 거는

과정까지는 참 좋았는데 정작 총을 벽에서 떼어내어 쏘는 과정이 너무 뻔했다고 해야 할까요.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이 소설의 제목인 밤의 새가 말하다는 한 우화에서 따왔습니다. 소설 중반에 나오는 우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매번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던 농부가 어느 날 별 이유없이 늦은 밤까지 잠을 자지 않다가 어떤 새의 울음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후 그 새 소리를

다시 듣기 위해 농부는 계속 늦게까지 깨어있지만 새의 울음소리를 다시 듣지 못합니다. 결국 농부는 낮에도 밤에도 깨어 있지도 

잠이 들지도 못한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 밤의 새가 우는 소리를 듣게 될 때가 오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과연 무엇이 내게 밤의 새가 될 것인지 궁금해지더군요. 듣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도 말이지요. 아직까지는 듣지 못한 것 

같은데... 평생 못 들으면 어쩌지...?

결론을 말하자면 이 소설은 정말 훌륭한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세밀한 배경 속에 매력적인 인물들이 모여 다양한 장르적 즐거움을

주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이 소설은 천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큰 재미를 제공합니다. 다만, 후반부에 이르러

조금 진부한 전개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긴 합니다. 국내에 소개된 작가 로버트 매캐먼의 전작 스완송이나 소년시대 등을

즐겁게 읽으신 분들이라면 이 소설은 놓치면 안 될 선물일 것입니다. 전작들을 접해보지 못하신 분들이시라면 입문으로도 아주

적합하리라 생각합니다. 말세를 배경으로 한 스완송이나 작가의 자전적인 내용이 담긴 소년시대보다도 더 보편적인 소설이니까요.

덧글

  • Psychedelic Soul 2014/03/29 04:45 # 답글

    책제목글자가 절묘한 위치에 있어요. 이글루 링크에서 보니 입가가 굉장히 괴상하게 보이네요 ㄷㄷㄷ
  • 정윤성 2014/03/29 11:34 #

    엇, 정말로 괴상해보이네요ㄷㄷ 저게 표지라 다른 사진으로 바꾸는 것도 이상한데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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