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틀넥 -일본

 '요네자와 호노부'에 대해서는 이전 포스트에서 이미 정보를 많이 적었으니 넘어가려고 했는데 전혀 적어놓지 않았더라고요. 현재 국내에 번역이 된 작가의 책 11권을 전부 다 읽었는데 의외로 감상을 적은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음, 이상하네. 왜 안 썼을까. 그냥 게을러서겠지만... 저의 게으름은 저조차 잘 이해가 안 될 정도입니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1978년생으로 중학생 때부터 이미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부지런해... 대학교 2학년 때는 자신이 만든 홈페이지에 소설을 연재하기도 했고 졸업 후엔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가가 될 준비를 했다고 하네요. 대학 졸업 후 부모님께 소설가의 꿈에 도전하고 싶으니 2년만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존경스러워... 데뷔작인 '빙과'가 '카도카와 학원소설 대상'에서 '영 미스터리&호러 부문'의 장려상을 수상하고 카도카와의 신 레이블인 '스니커즈 미스터리 클럽'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레이블 자체가 잘 되지는 않았지만요. 이후 '사요나라 요정 - さよなら妖精 -'으로 작가로써의 인지도를 높였고 지금은 일본 추리소설 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일상계 청춘 미스터리를 주로 다뤘지만 '개는 어디에'에서부터 성인 지향의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지요. '고전부 시리즈'나 '소시민 시리즈' 등의 청춘 미스터리도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후속작이 나오는데 수 년씩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 좀 안타깝습니다.

 '사가노 료'는 골치아픈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각자 바람을 피다가 이혼한 부모에 형은 오토바이 사고로 수 년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사망했으며 연인이라 부를 수 있었던 소녀 또한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소녀의 이름은 '스와 노조미'. 계곡에 설치한 난간에 걸터앉았다가 갑작스러운 돌풍에 휘말려 그만 추락사하고 말았지요. 형이 결국 목숨을 잃은 날, 료는 노조미가 죽은 계곡에 있었습니다. 형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제 그만 돌아가려는 찰나 돌풍이 료를 덮쳐 계곡 아래로 내몹니다. 노조미도 이렇게 죽었겠구나 생각하며 떨어진 료. 하지만 그는 죽지 않고 자신이 살던 집 근처에서 정신을 차립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집으로 간 료. 집에는 자신의 누나가 있었습니다. 분명 료에게는 누나가 한 명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누나가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었다는 사실이었지요. 누나의 이름은 '사가노 사키'. 사키는 자신에게 동생이 없다고 말합니다. 두 사람은 한참 대화를 나눈 끝에 료가 다른 세상으로 오게 되었다는 가설을 대충 받아들입니다. 누나가 죽지 않고 살아났기에 료가 태어나지 않은 세상 말이지요. 그 세상에는 부모님이 이혼을 하지 않았고 형도 죽지 않았으며 가장 중요한 노조미 또한 살아 있었습니다. 물론 다들 료가 누군지는 모르는 상태지만요. 료와 사키는 료의 세상과 사키의 세상이 어떻게 다른지 하나하나 짚어 나갑니다. 그 과정에서 료는 자기 세상에서 발생한 노조미의 죽음이 단순히 사고가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읽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이 소설을 읽은 뒤 제가 아직도 한참 모자라고 순진무구한 독자에 불구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지요. 모자라다는 걸 주제넘게도 깜빡 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는 잊지 말아야지. 불가사의한 현상에 의해 다른 세계로 간다는 설정은 흔합니다. 이세계로 가서 마구 깽판을 부리는 내용은 발에 채일 정도지요. 모종의 이유를 통해 자신이 살던 세계와 다른 방향으로 분기된 세계로 가게 되는 이야기 또한 제법 많습니다. 미국 드라마 '프린지' 같은 경우가 이와 비슷하겠네요. 주인공 '월터 비숍'이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다른 분기를 탄 세상으로 간 탓에 난리법석이 나는 드라마지요. 뒤로 가면 내용이 뭔가 좀 이상해지지만... 이 소설에서도 설정 자체는 그리 특이하지 않습니다. 주인공 료가 다른 세상에 갔는데 그 세상은 누나가 죽지 않고 잘 태어났으며 대신 자신이 태어나지 않은 곳이었지요. 만날 리 없는 두 사람이 만나고 그 과정에서 숨겨진 진실이 드러난다는 내용으로 여기까지만 보면 특이할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소설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멈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제가 깜짝 놀라고 만 것이고요. 주인공이 다른 세계로 가게 된 이유를 다루는 소설도 있고 아닌 소설도 있습니다. 우연히 이세계로 갔고 거기서 잘 살았더라, 정도로 끝나는 소설이 있는 반면에 분명한 목적이 있어서 주인공이 이세계로 가게 되었고 거기서 잘 살았거나 아니면 되돌아와서 잘 살았다는 내용의 소설도 있습니다. 제가 읽었던 책들에서는 대개 잘 살았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네요. 대개의 경우 주인공들은 초반에는 상황에 마구 휘말리지만 중후반에 가서 주도권을 쥐고 움직이며 그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래, 나는 이러한 일을 하기 위해 이곳에 오게 된 거야! 두둥!" 하고 말이지요. 근사하다면 근사하고 유치하다면 유치한 전개입니다만 거의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 소설 '보틀넥'에서는 이 부분을 붙잡습니다. 이걸로 괜찮은 거냐면서 말이지요.
 사람이 괴로운 이유는 모두가 괴롭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타인의 빛은 자신의 어둠을 드러냅니다. 그는 왜 저렇게 밝을까, 나는 왜 이렇게 어두울까. 유치한 발상이지만 벗어나기 결코 쉽지 않은 생각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지요. 웹툰 작가가 여행도 다니고 재밌게 사는 게 꼴보기 싫어서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를 유포한 사람의 예도 있고요. 불과 얼마 전에 일어난 일이었지요. 사람의 삶은 다를 수밖에 없는 건데 그럼에도 모두가 나와 같기를 바라는 것 또한 사람의 마음일 것입니다. 내가 슬플 때 모두가 슬프고 내가 기쁠 때 모두가 기쁘다면... 적어도 내 마음이 편하긴 할 텐데. 어리석고 슬픈 것이 사람이지요. 저도 지금 한창 열등감 일직선이라 뼈저리게 공감하는 마음입니다. 생애 최고조의 마이너스 감정 기간이라 당황스러울 정도네요. 만약 포스팅이 쭉 끊긴다면 그냥 죽었겠거니 여기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직은 죽는 게 겁이 나서 살아 있습니다만. 흠, 이딴 소릴 지우지도 않고 쓴다는 점에서 이미 좀 글러먹은 기분도 들고...
 타인과 자신을 비교한다는 것은 슬픈 본능입니다. 자신에게 속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하나씩 들고 다른 사람의 것과 일일이 대어보는 과정은 그러한 행위 자체를 떠올리기만 해도 속되고 천박하나 어느샌가 또 하게 되는 행위입니다. 이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인격의 수양이 필수적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요즘 인격의 수양을 가르치는 곳이 있나요? 학교는 입시전문 학원이나 마찬가지로 보이고 가정도 딱히 멀쩡해보이진 않는데... 얼마 전에 사촌 누나에게서 2살부터 어린이집에 보낸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 게 엊그제 같은데... 전 그 시기에 어머니 품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도 이렇게 글러먹은 인간으로 자랐는데. 뭐, 제가 유독 저질이라는 점도 빼놓을 순 없지만요. 훌륭한 인격이란 끊임없는 내재적 반복 수련입니다. 좋은 걸 좋게 보고 나쁜 걸 나쁘게 보고 자신 안의 기준을 쉼없이 점검하고 수정하고 보안하고 발전시켜가는 일련의 과정이 빈틈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힘든 일이지요. 그리고 남에게 결코 뒤지지 않은 자신만의 소중한 장점을 볼 수 있어야 하고요. 자신의 장점을 보는 눈으로 타인도 바라봐야 하지요. 훌륭하고 힘든 일입니다.
 보틀넥은 읽고 있으면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삶은 이빨을 가지고 있고 이미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이빨을 찔러넣은 상태입니다. 이빨은 차근차근 파고 들며 언젠가는 반드시 목숨을 끊어버립니다. 삶이란 죽어가는 과정이며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란 사는 것밖에 없습니다. 죽음의 시기를 고를 수 있는 인간은 극히 적으니까요. 그 이빨을 느끼기에 치열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 이빨이 파고드는 것을 느끼지 못하지만 치열하게 사는 사람이 있으며 이빨을 느끼기에 그냥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이빨이 파고드는 것을 느끼지 못하기에 그냥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삶이란 개인의 삶밖에 없습니다. 삶은 개개인에게 속해있고 개인과 함께 시작하여 개인과 함께 끝납니다. 그 고유함은 고유하기에 비교해선 안 될 것 같고 고유하기에 비교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삶은 하나이자 수십 억 가지입니다. 탐나는 삶이 있고 눈을 감고 외면하고 싶은 삶이 있습니다.


덧글

  • 2014/09/07 00:3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9/09 11:3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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