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제로 - 스핏파이어야, 스피릿파이어야? -일본


 살다보면 자신도 몰랐던 욕구와 마주하게 되는 때가 간혹 있지요. 이 욕구는 파괴적일 때도 있고 음란할 때도 있고 부도덕할 때도 있습니다. 사회적 통념이나 개인의 윤리에 걸맞지 않기에 스스로 눈을 돌린 욕구라 볼 수도 있겠지요. 제게도 그런 욕구가 있습니다. 많지요. 개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이 제가 다녔던 중학교에 대한 감정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았을 시절 우연히 만난 중학교 동창과 술도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중학교 때의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었지요. 학생이 아무리 평범하다 하더라도 학교 자체가 워낙 파란만장한 곳이라 말도 안 되는 사건들에 어쩔 수 없이 휘말려 결국 기억에 남는 일화가 새겨지고 말았거든요. 저만 해도 대답을 잘못 했더니 선생이 책상 위로 뛰어올라 달려들더니 이동수업이라 커다란 책상에 여러 명이 앉아 있었지요. - 짧은 몽둥이를 마구 휘두르기에 엄청 얻어맞았던 적도 있고, 미술 시간엔 몽마르뜨를 대답하지 못해 반 아이들이 하나씩 얻어맞다가 심지어 이건 교과 과정에 포함된 내용도 아니고 그냥 선생이 별 생각 없이 프랑스에서 예술가들이 많이 모인 곳으로 유명한 곳이 어딜까? 라는 느낌으로 꺼낸 말이었는데 10명쯤 맞았을 때 간신히 떠올리고 대답했더니 알면 왜 진작 대답하지 않았냐고 혼나기도 했고어디 내놔도 빠질 정도로 평범한 저조차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는 꼴을 겪은 기억이 버글버글하니 조금이라도 개성이 강했던 아이들에겐 지옥이나 마찬가지인 곳이었지요. 그런 이야기를 하며 웃고 욕을 하다가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개 같은 학교, 불을 싸질러버렸어야 했는데.” 저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랐지요. 이미 지난 일인데 친구가 그렇게까지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란 게 아니었습니다. 저 역시 학교에 불을 싸질러버리고 싶었다는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었지요. 제 안의 욕구가 올바른 문장과 만나 존재를 드러낸 셈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말도 안 되는 학교였다, 미친 학교였다, 다시 가라면 차라리 죽겠다, 같이 여기며 그래도 이미 졸업했으니 됐다는 가벼운 느낌이었는데 실제로 제 안의 미움은 저 자신의 인식보다 훨씬 깊고 짙었습니다. 웃으며 넘길 추억이 아니라 증오와 혐오였는데 정작 제가 모르고 있었단 사실을 그 순간 알았지요. 그렇다고 제가 무슨 방화 욕구가 있고 그런 건 아니고불 별로 안 좋아해요. 뜨거워. 지금은 그 중학교도 많이 좋아졌다고 들었습니다. 제게 자식이 있다면 절대 안 보낼 거지만요.

 중학교 시절은 정말 나빴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 한동안 선생님들이 왜 안 때릴까?’ 의문을 가지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어쩌다가 체벌을 받으면 안심이 되기도 했고요. 그래서 고등학교도 돌아갈 수 있다면 어쩌겠냐는 질문에는 고3 때가 힘들어서 좀 고민이 되는데라고 대답하겠지만 중학교로 돌아갈 수 있다면, 에는 싫어! 라고 잘라 말할 겁니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에는 군대도 있지요. 저는 지금은 없는 경비교도대출신이라 남들보다, 특히 최전방 이런 곳에서 군 생활을 한 사람들보다 훨씬 편했지만 다시 하라면 무리입니다. 그냥 죽을래요.

 이런 식으로 떠올려보면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 있지요. 스스로도 어떻게 헤쳐 왔나 의문이 드는 시절들이. 저는 주위의 모두가 같이 힘들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중학생 때는 주위의 다른 애들도 같이 맞고 다녔고 고3 때는 주위 모두가 밤새가며 공부를 했지요. 군대에선 다른 모두가 아침마다 교도소를 몇 바퀴씩 뛰어다녔고 새벽마다 일어나 2시간씩 눈 비벼가며 감시탑에 올랐습니다. 경비교도대가 다른 군부대에 뒤지지 않을 고생이 있다면 잠을 적게 잔다는 거지요. 교도소라서 24시간 감시 체제가 필수거든요. 대원 전원이 무조건 밤에 2시간은 교대시간까지 생각하면 2시간 반 정도 못 잡니다. 괴롭지요. 이 고생들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오직 집단의 힘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집단을 싫어합니다.

 안 되는 일도 집단이 덤비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 되도 되게 하면 정말 될 때가 있습니다. 그게 싫습니다. 안 되는 일이라면 되지 않아야 합니다. 한계에 대한 도전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 되어야 합니다. 개인과 개인이 한계 돌파를 위해 모인 뒤 한계를 돌파한 뒤 헤어지는 것 정도는 좋습니다. 하지만 일단 모은 뒤 우린 모였으니 한계를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돌파하자! 라는 마음가짐은 정말로 징그럽습니다. ? 난 한계를 돌파하고 싶어서 모인 게 아닌데? 모이라고 해서 모인 건데? 왜 내 한계를 들이민 뒤 돌파해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거지? 그게 옳은 것처럼, 좋은 것처럼, 당연한 것처럼 구는 거지? 한계란 못 넘는 게 당연한 거고 넘으면 대단한 겁니다. 못 넘겼다고 비난받고 패배자 취급을 받아선 안 되는 겁니다. 어떤 한계라도 마찬가지지요. 하루에 8시간씩 일을 하면 이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라는 한계가 있다면 이 정도의 성과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수익을 검토하는 것이 마땅히 따라올 단계인데 당연하다는 듯 한계를 뛰어넘는 성과를 바랍니다. 9시간을 일해서 한계를 뛰어넘으면 할 수 있는데 왜 안 하려고 했냐는 말이 따라오지요. 한계라는 단어가 가진 부정적인 의미를 이용하는 것뿐입니다. 안 되는 일을 안 된다고 인정하는 것 또한 현명함이 아닐까요.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커다란 돌을 옮기라 시켰더니 아이가 각종 방법을 다 시도해봅니다. 밀어도 보고 당겨도 보고 지렛대라고 나무막대를 끼워도 보고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합니다. 다 한 뒤에도 꿈쩍하지 않는 돌을 보더니 말하지요. 못하겠어요. 그러자 어른이 말합니다. 너는 아직 한 가지 방법을 쓰지 않았다고요. 그게 무어냐 묻자 대답이 돌아오지요. 나한테 부탁하는 방법 말이다. 돌을 움직일 수 없다는 한계를 알아야 부탁한다, 라는 새로운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집단이니까 소속된 개인들 모두에게 한계를 넘길 강요한 뒤 그 성과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이라도 할 수 없는 일이 있으니 다른 집단과 함께 협력해 더 큰 집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집단이 된 원인은 한계 돌파가 아니라 협력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군대는 그런 걸 모르더라, 라는 게 영원의 제로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사법시험에서 줄줄이 낙방하고 뒹굴뒹굴 놀고 있던 겐다로에게 프리랜서 기자인 누나 게이코가 일을 하나 맡깁니다. 할아버지에 대한 것을 조사하라는 일이었지요. 할아버지 미야베 규조2차 세계대전 당시 사망한 파일럿이었습니다. 특공, 그러니까 가미카제의 한 사람이었지요. 할머니는 미야베 규조와 4년간 결혼생활을 했지만 실제 기간은 그보다 훨씬 짧습니다. 미야베가 해외에 있던 시절이 워낙 길었으니까요. 할머니는 이후 재혼을 했고 이 새할아버지는 변호사 일을 하다 얼마 전 은퇴를 했습니다. 할머니는 몇 년 전 돌아가셨고요. 새할아버지를 좋아하는 겐다로는 일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어머니나 누나가 바라기에 받아들입니다. 겐다로는 할아버지의 예전 전우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그들이 말하는 할아버지에 대해 듣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나, 그리고 전쟁이 할아버지를 어떻게 좀 먹었나에 대해 알아갑니다.

 

 영원의 제로는 재작년 영화로도 제작되었고 올해 3부작 드라마로도 선보인다고 합니다. 날짜를 보니 어제 드라마 1편이 방영되었네요. 노리고 읽은 건 아닌데 웃기게도 타이밍이 맞네요. 우익 논란이 상당히 있는 소설이지요. 제가 읽어본 바에 따르면 아주 우익우익하지는 않지만 그 그림자를 벗어낼 정도도 아니다, 우익소설이 맞나아니냐 묻는다면 맞다, 고 대답하겠습니다. 우익우익하기도 악평이 높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기에 도서관 책장에서 이 책을 보고 놀랐습니다. 어라? 도서관에 있는 걸 보니 듣던 것보다 우익우익하지 않나보네? 라는 생각에 자신의 성급함을 반성하고 읽어보기로 결심한 것이었는데.

 얼핏 보면 전쟁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것처럼 서술하고 있습니다. 전쟁 나쁘다, 젊은이들 막 죽었다, 아이 슬퍼, 같이 말이지요. 그런데 사실 전쟁이 나쁘다는 말은 없습니다. 이 소설에서 나쁜 것은 딱 하나 대본영입니다. 대본영이란 전시 육군 및 해군의 최고 통수 기관이지요. 대본영의 관료들이 워낙 바보들이라 이길 수 있는 전투에서 전쟁 자체는 어차피 물량 딸려서 질 수밖에 없었다는 뉘앙스를 보입니다. - 지고 가미카제라는 말도 안 되는 전법이 생겼다, 관료들이 전적으로 나쁘다, 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책임의 소재를 분명하게 한다는 관점에서는 좋지만 대본영 외의 모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군인들과 일반 국민에게 있는 죄는 대본영의 폭주를 막지 못했다, 정도에서 머뭅니다. 침략을 당한 나라의 입장에서는 좋게 볼 수 없는 부분이지요. 어리석은 전쟁이었고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는 안 되었다, 정도의 입장을 취하기만 했어도 책을 읽는 제 기분이 좀 더 나았겠지만 그런 부분은 없네요.

 특공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부정적인 입장을 보입니다. 누나 게이코가 할아버지는 해군이 죽였다고 말할 정도로 가미카제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기자 캐릭터 하나를 등장시켜 가미카제를 9.11의 테러처럼 다루는 시각이 있다고 제시한 뒤 전혀 그렇지 않고 특공대원들은 다 희생자였으며 군대라는 특정 집단을 이끄는 자들이 미쳤기에 그런 정신 나간 작전이 생긴 것이라 외치지요. 당시 군부는 나라를 위해 죽어야 한다는 사상을 마구 주입했고 자기 목숨을 아끼는 게 부끄러운 일이라 가르쳤습니다. 그 와중에 미야베 규조는 늘 살고 싶다고 말해 동료들에게 지탄을 받는 인물이었지요. 그런 인물조차 특공에 가도록 강요했으니 정말 나쁘다, 가 이 소설의 주된 요지입니다. 특공에 대해 비판을 하며 미군의 비행기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요. 미군 비행기는 장갑이 워낙 단단해 암만 쏴도 잘 안 떨어진다, 그런데 제로센은 성능은 좋지만 방어가 워낙 취약해 한 방 맞으면 끝이다, 미국은 병사가 돌아오는 것을 바라고 비행기를 만들었고 우리는 이기기만을 바라는 무기를 만들었다 운운하며 군인들을 소모품으로 서술하지요. 동정심이 들법한 부분이긴 합니다. 사악한 대본영과 희생당한 불쌍한 군인이라는 구도도 성립하지요. 그렇지만 침략전쟁이라는 부분은 여전히 없습니다. 이렇게 소모품 취급당한 군인들이 돌아와 일본을 발전시켰다, 그들에게는 도덕과 신념이 있었다, 같은 말을 하는 부분에서는 역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한국, 중국, 동남아에 쳐들어가 군인과 민간인들을 죽인 자들이기도 하니까요. 패전이라는 결과로 침략이라는 원인을 덮으려는 시도는 암만 생각해도 눈꼴사납지요.

 과거는 확실히 미화하고 있습니다. 전쟁 자체는 아니지만 전후 시절에 대해 치열했다거나 노력했다거나 등등의 말로 지금의 성공을 만들어놨더니 우리들의 정신을 잊어버린 니들이 다 망치고 있다는 식의 논조가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 우리나라에서도 국제시장으로 비슷한 논의가 촉발되기도 했으니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책임이 소설 내 중요한 화두입니다. 가미카제의 책임을 지는 놈이 없더라, 를 시작으로 진주만에서 기습은 대사관 직원 놈들의 잘못이었는데 책임을 안 져서 일본이 기습이나 하는 비겁한 인종이 되었다, 터무니없는 작전을 세운 대본영 놈들이 책임을 지지 않는 것도 모자라 전후에도 높은 자리에 올랐다, 현재 정치권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등등, 책임지지 않는 고위층에 대한 분노가 전면에 드러납니다만 역시나 침략전쟁을 시작한 책임을 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없네요. 이는 아무래도 일부러 그런 것 같습니다. 국내 독자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침략 부분은 배제한 것이겠지요. 작가가 침략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을 리는 없겠지요. 못했으면 그냥 저능한 거고논란이 될 부분에 발을 뻗지 않아 안전한 길만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소설이 전반적으로 안전만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럼 소설 자체는 재미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도 뚜렷하고 드라마틱한데 소설이라기에는 자기주장이 너무 강합니다. 미야베 규조라는 사람에 대해 알기 위해 옛 군인들을 찾아가 인터뷰한다는 것이 소설의 구조인데 이 인터뷰의 범위가 너무 넓습니다. 한 사람이 알 수 없는 정보량이 한 사람의 인터뷰를 통해 나옵니다. 이에 대한 변명으로 종종 나 한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주변 모두의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거다, 라는 식의 설명이 이어지는데 그렇게 봐도 전투 전체를 조망하는 경우가 너무 잦습니다. 암만 여러 사람과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고 해도 항공모함 안에 탄 사람 전부와 안면을 튼 것도 아닐 것인데 시야가 너무 넓고 관점이 너무 보편적입니다. 또한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인물군상과 - 사업가나 정치인, 야쿠자까지 - 마주한 것 같지만 그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모두 같습니다. 미야베가 싫었다, 좋았다의 구분은 있지만 싫고 좋은 이유가 같고 전쟁에 대해서도 보이는 관점이 말만 다르지 다 같습니다. ‘시민 케인처럼 여러 명의 관점을 통해 한 사람에 대해 알아보는 것처럼 진행되지만 미야베의 경우 완성된 상태라 궁금한 구석이 없습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궁금증은 그런 미야베가 왜 특공을 했나, 하나에 불과하고 이 점 또한 어쩔 수 없는 사건이 있었겠지.” 같은 답이 이미 나와 있어서 흥미가 덜합니다. 소설이 가질 수 있는 복합적인 관점의 조명이 없고 그저 인물들의 입을 빌은 작가의 주장만이 존재합니다.

 반전이라는 주장은 있지만 전쟁을 벌인 당사자라는 입장이 없습니다. 책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모든 책임을 하나의 존재에 몰 수 있다는 편리함도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것처럼 굴지만 주장은 무난하고 다양한 시선을 포용하는 것 같지만 봐야하는 사실은 하나뿐이라고 외칩니다. 어중간하고 자기위안이 강하며 과거를 미화하고 면죄부를 발부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이라는 자신을 의식하고 보자면 나쁜 소설에 가깝고 굳이 그런 스탠스를 취하지 않더라도 애매모호한 것이 좋은 소설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여담인데 소설 내내 스핏파이어스피릿파이어라고 쓰고 있습니다. 제가 전투기에 대해서는 게임 ‘1945’를 해본 정도의 지식밖에 없어 스피릿파이어라는 전투기가 따로 있나 생각했었는데 소설 내에 스피릿파이어(Spitfire)라고 적혀 있어 대체 뭔가 싶었네요. 스핏파이어를 스피릿파이어라고 부르기도 하는 건지 아니면 일본에서만 그러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번역이 잘못 된 건지 모르겠네요.



덧글

  • 3인칭관찰자 2015/02/12 14:01 # 답글

    일본에서도 스핏파이어(스피토퐈이아)로 읽는 걸로 압니다. 아마 오역일 확률이 높지 않을까 싶네요.
    항공참모 겐다 미노루를 하라다 미노루로 번역하는 등 인명번역도 약간 오류가 있더군요.
  • 정윤성 2015/02/12 16:34 #

    아, 역시 오역인 거 같네요. 처음에 스피릿파이어라고 나왔을 때 오타인가, 생각했는데 그 뒤로도 계속 스피릿파이어로 나와서 오역이나 아예 다른 전투기를 말하는 건가보다 생각했지요. 그런데 한참 뒤에 스피릿파이어(spitfire)라고 떡하니 나와서 무척 혼란스러웠습니다. 번역가가 양억관인데 이 분은 꽤 경력이 기시거든요. 그래서 더욱 대체 이게 뭔가 싶었지요.
  • 2016/01/12 03:0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1/12 16:1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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