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거리 추정 - 청춘의 느낌이 물씬 -일본


 ‘고전부 시리즈최신간이자 아직 애니메이션으로는 나오지 않은 이야기인 두 사람의 거리 추정을 읽었습니다. ‘빙과애니메이션이 방영되었을 때부터 고전부 시리즈에 대해 관심을 가졌는데 어느새 전권을 다 읽게 되어 참으로 뿌듯하지 않아! 다 읽었다고 해봐야 달랑 다섯 권밖에 안 되잖아! 게다가 최신간인 두 사람의 거리 추정도 2010년 작품이야!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는 얼른 고전부 시리즈를 집필하라! 일해라, 요네자와 호노부! 기왕이면 소시민 시리즈겨울편도 빨리 써줘! 라곤 하지만 작가가 정말로 노는 건 아닙니다. 매년 한 권 이상의 작품을 출간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열심히 사느라 고전부에 쓸 시간이 없는 거이걸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잡지 야성시대2012년과 2013년에 한 편씩 고전부 시리즈의 이야기를 쓰긴 했으니 - 거울에는 비치지 않아(にはらない, 야성시대 20128월호 게재), 긴 휴일(休日, 야성시대 201311월호 게재) - 2년 더 기다리면 고전부 시리즈 6권을 읽을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작가가 완결까지 쓰겠다고 인터뷰한 적도 있으니 그저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겠지요. 작가보다 일찍 죽지 말아야겠습니다. 작가가 78년생이니 가능성은 충분!

 

 2학년이 된 고전부의 네 사람. 1년 전과는 바뀐 것도 있고 바뀌지 않은 것도 있지만 느긋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하릴없이 여유로운 고전부에도 1학년 신입부원이 들어왔습니다. 신입의 이름은 오히나타 도모코’. 까무잡잡하고 보이시한 느낌의 밝은 소녀로 선배들뿐인 고전부에서 주눅 들지 않고 발랄하게 떠드는 좋은 아이였지요. 그런데 임시 입부 기간이 끝나고 정식으로 입부를 결정해야 할 시기에 오히나타는 불쑥 가입하지 않겠다 말하고 떠나갑니다. 에너지 절약주의자인 오레키 호타로입장에선 가입을 하거나 말거나 크게 신경 쓸 바가 아니겠지만 이상하게 책임감을 느낍니다. 고전부의 누군가가 오히나타의 마음에 상처를 준 걸까? 어쩌면 자신의 무심함이 그녀의 신경을 거스른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하루아침에 오히나타의 심기를 틀어버릴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는 건 의외로 긴 시간동안 천천히 오히나타는 부담을 가지게 된 것 아닐까? 그리고 자신은 그런 그녀의 불편한 마음을 보고서도 무의식적으로 무시한 게 아닐까? 오히나타는 고전부를 나가며 이바라 마야카에게 치탄다 선배는 꼭 보살 같네요.”라는 의문의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건 또 무슨 의미일까요? 학교의 연례행사로 학교 근처 20킬로미터를 달리는 호시가야 배’, 달리 부르자면 마라톤 대회 동안 오레키는 오히나타가 보인 심경의 변화에 대한 것을 알아내자고 다짐합니다.

 

 그냥 치탄다라고 적을게요. ‘지탄다는 너무 지탄받는 기분이라두 사람의 거리 추정 내에서도 지탄이라는 단어가 한 번 쓰였는데 그걸 보고 저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더랬지요.

 소설을 읽으며 참 고등학생들이 할 법한 고민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이 아닌 시기에는 어른이 하지 않을 법한 고민을 해야 하는 게 맞지요. 거기에 대고 어린 애는 공부나 하라는 답변은 참으로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짓입니다. 어른이 아닌 존재에게 어른스러움을 요구하는 건 어른스럽지 못한 짓이니까요. 생각해보면 저도 친구나 선후배 사이의 관계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학교에선 선후배 관계가 거의 없었지만 성당에 다녔기 때문에 고등학생은 물론 중학생들까지도 후배 범주 안에 들어와서 이래저래 복잡했지요. 쪼끄맣게만 보이는 애들이 저도 아직 경험하지 못했거나 생각조차 못했던 고민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놀랍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저도 고민투성이여서 큰 도움이 되지 못했고요. 후배들아 미안해. 게다가 학창시절의 저는 주제에 맞지도 않게 건방져서 선배들의 속을 썩이기도 했습니다. 선배님들께도 미안합니다. , 지금은 다들 기억도 못하겠지만요. 못하겠지? 못했으면 좋겠다.

 후배가 동아리에 가입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더라, 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오레키의 회상을 타고 과거로 향합니다. 마라톤 대회에서 일부러 천천히 달리며 후쿠베나 이바라, 치탄다들과 만나서 대화를 통해 과거에 후배와 있었던 소소한 사건들을 떠올리는 구성은 참으로 단순하면서도 무척 근사합니다. 2달 전, 한 달 전, 며칠 전에 있었던 이야기들에서 힌트를 얻어 후배의 마음에 닿으려 하는 선배, 라는 설정도 풋풋한 게 좋고요. 기억력을 마구 파헤쳐가며 후배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걔는 대체 뭔 생각을 한 건가, 라는 것을 한참 고민하는 것은 역시 학창시절이니까 가능한 일이겠지요. 애석하지만 나이를 먹고 나선 인간관계보단 이해관계에 더 신경이 쓰이니까요. 동아리에 후배를 받고 싶다, 동아리에 들어오기로 했으면서 이 자식이! 같은 게 아니라 후배의 마음이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 중 누군가가 후배에게 상처를 준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 상처를 준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증명해서 말해주고 싶다, 라는 오레키의 바람은 굉장히 순수해서 오히려 놀려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평소 애늙은이인 척 하더니ㅋㅋㅋ하고 말이지요.

 성장소설이라는 측면에선 풋풋함과 순수함이 일일 허용량을 넘길 정도로 충분히 함유되어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이 책 한 권이면 한 달 분량의 순수함을 충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추리라는 측면에서는 어떨까, 하면 약간 미묘합니다. 워낙 일상 미스터리라서 소소한 의문만 가득하거든요. 동아리의 테이블 크기나 카페의 이름 같은 걸로 추리를 하고 있으니 참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잘도 떠드는구나, 라는 마음이 들 법도 합니다. 물론 그런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독자 분들은 1권에서 이미 하차하셨을 터이니 큰 문제는 아니긴 하지요.

 소설의 끝에 오레키가 알고 싶었던 진상은 밝혀집니다. 허나 모든 게 다 깔끔히 드러나고 해결되는 건 아니지요. 후배의 마음, 다른 친구들의 마음이라는 게 문제였기에 안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바뀐 것은 없습니다. 고등학생이라는 좁은 한계 속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도 앞으로 한 걸음 정도 나아가는 게 전부라는 사실이 어딘지 찝찝한 결말에서 잘 드러납니다. 허나 그 한 걸음이 정말 중요한 것이라는 점도 훌륭히 표현되지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도 좋을 법한 이야기라는 생각도 드네요. 극장판처럼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로 꾸미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내리쬐는 햇살, 느긋한 논과 밭을 배경으로 수백 명의 고등학생들이 달려 나가고 그 사이에서 보이는 고전부원들의 모습. 이어서 곧장 오히나타와의 첫 만남 장면으로 넘어가면, 재밌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무척 청춘청춘한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과장되지 않은 담백함도 있고 약간 손발이 오그라드는 부끄러움도 있어서 읽는 내내 흐뭇하더군요. 고전부 시리즈 팬들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켰으리라 예상합니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하니 빙과 애니메이션을 보신 분들도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덧글

  • guest 2015/05/03 20:59 # 삭제 답글

    정식번역판이 발간된줄 몰랐었는데 이글을 통해 알았네요.
    고맙습니다.
    애초에 고전부 자체가 활동목적 불명일 정도의 마이너 부이니 신입부원을 맞이 하기가 쉽지 않을거라 싶었는데, 이래저래 한명의 신입부원이 등장하는 군요.
    의지가 변화하는 계기 혹은 선호에 의한 끌림 같은게 개요에서 연상되네요.
    취향에 맞는 책을 만난다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 정윤성 2015/05/04 07:54 #

    저도 발간된 줄 모르고 있다가 인터넷을 보고 알았어요. 인터넷이 참 좋긴 좋아요.
    소설을 읽다보면 고전부원들도 신입에 대한 기대가 그리 크지 않더라고요. 하긴, 단행본 4권 내내 명확히
    뭘 했는지 읽어봐도 알 수가 없으니... 이것저것 많이 한 건 같은데.
    말씀대로 책은 물론이고 취향에 맞는 무언가를 접하는 건 늘 기쁜 일이겠지요. 언제나 즐겁고 싶네요.
  • watermoon 2015/05/04 10:57 # 답글

    소시민시리즈 빨리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예전에 나온 보 여름 시리즈는 표지가 형편없었다는 ㅎㅎㅎㅎ
    혹시 호노부 작품중에 인사이트 밀 읽으셨나요? 저는 인사인트밀 하고
    덧없는 양들의 축연으로 호노부 입분했는데 강추할게요
  • 정윤성 2015/05/04 17:12 #

    봄이랑 여름 시리즈의 국내 표지는 정말 형편없지요ㅎㅎ 여느 독자라도 읽는 걸 망설일 표지입니다.
    대체 왜 그렇게 만들었어... ㅠㅠ
    아마 저도 제일 처음으로 읽었던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이 인사이트 밀이었을 거예요. 전 작가의 작품
    중에 덧없는 양들의 축연이랑 추상오단장이 무척 마음에 들더라고요. 분위기가 묘한 게 참 좋아요.
  • 아침 2015/05/04 12:22 # 답글

    본인은 알라딘 알림 신청으로 좋아하는 작가와 출판사를 넣어두니 편하더군요 이것도 그걸로 알고선 드디어!!하며 환호했더랍니다.
    그나저나 1학년 막권이 히나인형 부록 박스 참 예쁜데 말이죠... 볼때마다 2학년 박스는 언제쯤 생길까하며 마음 한구석이 슬퍼지지 말입니다. 이걸 샀으니 1/4는 모은걸까요ㅠㅜ
  • 정윤성 2015/05/04 17:17 #

    저도 알림 신청을 해놔야겠네요. 체크한다고 하는데도 신간을 놓치는 경우가 잦아요. ㅜㅜ
    고전부 애들은 2학년에 갓 진급했는데 현실은 5년이 지났... 걔네들 10년 가까이 걸려서 학년 하나를
    올라갔다는 걸 떠올리면 그저 막막하네요. 걔들 졸업하는 건 보고 죽어야 되는데!
  • ㅇㅇ 2015/05/24 22:58 # 삭제 답글

    나오자마자 샀는데 예쁜 엽서도 같이줘서 좋았어요ㅋㅋ
  • 정윤성 2015/05/25 17:53 #

    부럽네요! 예쁜 엽서는 보고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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