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록의 여름 - 나는 범인을 알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일본


 예전에 길을 걷다 우연히 학교 선배와 만난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좋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기로 유명했던 선배는 자연스럽게 저를 이끌고 근처 식당으로 들어가 맛있는 밥을 사줬지요. 그때 선배는 감격이었어요. 그때 저는 마침 이러저런 철학을 겉핥기식으로 마구 공부하고 있던 중이라 얼마 전 배웠던 철학 이론들을 어려운 단어를 써가며 마구 늘어놨습니다. “‘나는 왜 사는 걸까?’ ‘인생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이 가끔씩 막 이런 생각들을 하잖아요? 사실은 말이지요, 여러 유명한 철학자들도 다 그런 생각을 해서 각자 막 이론을 만들고 그랬어요! 예를 들어 누구누구는요하면서요. 지금 생각해보면 미쳤지. 얻어먹는 주제에 재미없는 말만 해댔으니. 제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선배는 웃으며 내가 막연히 생각만 했던 것들이 전부 연구가 되고 이론으로 정립되어 있다니 참 재밌다.”라고 말했더랍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 이런 게 바로 철학의 즐거움이구나. 내가 살아가며 막연히 느낀 인생에 대한 의문들이 다른 사람들의 깊은 성찰에 의해 차곡차곡 정리된 걸 봤을 때 느끼는 동질감이나 감탄 같은 감정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거야.’ 같은 생각을 했었는데그것도 다 옛날이야기고 지금은 사는 데 바빠 하루하루가 그저 정신없이 흘러갈 뿐이네요. , 배운 걸 써먹질 못해.

 철학이니 성찰이니 하는 이야기를 한 이유는 작가이자 철학자, 사상가인 가사이 기요시의 소설 묵시록의 여름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1981년 작인 이 소설은 현상학 탐정 야부키 가케루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자 79년에 나왔던 바이바이, 엔젤의 후속편이기도 하지요. 81년 작이라니 약 36년 전 소설이네요. 어우소설이 나보다 나이가 더 많아. 현상학 탐정이라는 이상하기 짝이 없는 타이틀만 봐도 알 수 있듯 이 시리즈는 범죄를 추리하는 과정에서 각종 철학과 사상이 마구 날뛰며 독자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듭니다. 주인공 야부키 가케루는 난 현상학자야. 모든 건 본질직관으로 알아낼 수 있지. 알아낼 수 있지만 어차피 이 세상은 하나의 신기루에 불과해. 그러니 내가 알아낸 걸 말 안 하겠어. .”이라고 말하고 다녀 독자들에게 발암을 유발하는 탐정이며 범죄자들 또한 , 나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더 큰 사상에 귀의했어. 죽음은 나에게 있어 새로운 한 걸음에 지나지 않아.”라고 말해 독자들에게 가소로움을 유발합니다. 지금 이 소설을 읽는 한국의 독자 입장에선 아우, 얘네들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야란 감상이 우선 떠오를 수도 있겠습니다만 81년은 일본에 버블경제가 버블버블 피어오르던 경제적 전성기이자 전공투나 적군파 같은 사상대립이 아직까지 현역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아사마 산장 사건에서 10년쯤 지난 뒤라 대충 끝물이었을 거란 생각은 들지만요. 아무튼 철학이니 사상이니 하는 소재들이 지금보다는 훨씬 전면에 있던 시절이니까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소설을 읽으면 더욱 재밌겠습니다. 지금은 너무 뒤편으로 밀린 감이 있지요. 사상이라고 해봐야 빨갱이냐 아니냐 정도의 신앙증명 같은 극단적인 양분화 정도밖에 없고요. 솔직히 재미없어요. , 사는 것도 재미없으니까 밸런스가 맞다 봐야 할지도. 작가 소개는 이전에 쓴 바이바이, 엔젤의 감상문에 조금 적어뒀으니 그걸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전작 바이바이, 엔젤에서 나디아 모가르의 친구들을 대부분 저 세상으로 보냈던 야부키 가케루는 여전히 조금 먹고 조금 자며 잘 살고 있습니다. 나디아는 그런 가케루를 매도하면서도 철썩 달라붙어 잘 지내고 있고요. 두 사람은 나디아의 친구 지젤의 약혼자 줄리앙의 누나 시몬과 만나고 시몬은 가케루에게 위험이 따라다니니 조심하라는 경고를 합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습격을 받은 가케루. 괴한이 쏜 총알에 맞았지만 다행히 목숨은 구합니다. 이게 뭔 일이야, 싶은 나디아지만 정작 총에 맞은 가케루는 태연합니다. 그런 이유도 있고 카톨릭의 이단 신앙인 카타리파에 대한 연구 건도 있고 지젤의 부탁도 있고 해서 시몬이 머물고 있는 지젤의 산장으로 향하는 두 사람. 산장에는 지젤과 줄리앙, 시몬은 물론 지젤의 아버지인 오귀스트’, 새엄마인 니콜’, 지젤의 교수인 실뱅’, 마을의 신부님인 소네에 더해 골동품상인 발터 페스트까지 복작복작하게 모여 있었습니다. 페스트는 진귀한 물건을 팔러 왔다고 말하며 카타리파의 문헌이 잔뜩 있는 자료실에 틀어박힙니다. 밥 먹자고 불러도 대답이 없는 페스트. 지젤은 걱정이 되어 문을 쿵쿵 두드리지만 인기척이 없습니다. 줄리앙과 가케루가 산장을 빙 둘러 자료실 창문으로 향했을 때 눈에 보인 것은 가슴에 화살을 맞은 페스트의 시체였습니다. 곧장 경찰들이 달려왔고 감식 결과 페스트는 시체 옆에 있던 커다란 돌에 맞아 죽은 걸로 판명되었습니다. 동그란 돌에는 요한묵시록의 요한이 새겨져 있었고 죽은 뒤 다시 화살에 맞은 것이었지요. 그리고 지젤의 흰말 또한 비슷한 시각 총에 맞아 죽었다는 사실도 밝혀집니다. “그러고보니 흰말 한 필이 있고 그 위에 탄 사람은 활을 들고 있었습니다.”라며 묵시록의 한 구절을 읊는 가케루. 시체는 묵시록의 구절을 따라 살해된 것이었습니다. 살인, 묵시록, 카타리파의 숨겨진 보물 등 지금 보면 영 시대착오적인 느낌의 소재들이 복잡하게 얽힌 가운데 가케루의 현상학 이야기가 시몬의 사상과 어울려 소설은 마구잡이로 혼미해져갑니다.

 

 재미있긴 한데밸런스가 영 위태로운 소설입니다. 발터 페스트를 시작으로 한 연쇄살인과 지젤의 어머니인 주느비에브가 몰입했던 이단 신앙 카타리파와 카타리파가 숨긴 보물의 이야기 그리고 가케루와 시몬 사이에서 벌어지는 철학과 사상의 대결 구도가 한데 엉켜있습니다. 살인은 소설 내내 계속 되고 카타리파의 이야기는 2차 대전의 나치와 이어져 마구 깊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가케루는 추리에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내내 죽을상만 쓰고 다니고 시몬은 뜬구름 잡는 예언을 마구 늘어놔 미친 사람인가, 라는 느낌만 줍니다. 기둥이 세 개인 소설인데 살인에는 주인공 가케루가 전혀 개입하지 않은 채 화자인 나디아만 붙어 있고 카타리파의 이야기에서는 가케루와 나디아 두 사람이 철썩 붙어 있으며 가케루와 시몬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는 둘 다 변죽만 울립니다. 한정된 인물들이 여기저기 겹쳐 움직이는 동시에 이야기 자체에 전혀 개입하지 않은 채 과거의 일화에서만 등장하는 인물도 있어 영 경제적이지 않습니다. 세 개의 기둥 역시 살인과 카타리파가 제일 크고 두꺼운 듯 보이지만 하나는 주인공이 손도 안 대고 다른 하나는 과거사와 이론의 나열 정도에 불과하여 서사에 있어 영향력이 와 닿지 않습니다. 실질적으로 이야기를 지탱하는 기둥인 가케루 대 시몬의 사상 대결은 둘 다 모두 고답적이라 초반에는 서사에 호응하지 않은 채 이질적으로 움직이고 후반에는 기껏 해놨던 그간의 서사를 이질적인 것으로 밀어낸 뒤 자기가 메인의 자리를 차지하여 이야기의 흐름을 끊습니다. 이는 마치 식용유와 흰자, 노른자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식용유는 살인이고 흰자는 카타리파, 노른자는 가케루와 시몬의 사상 대결이지요. 후라이팬에 먼저 식용유를 뿌리고 계란을 탁 깠더니 흰자와 노른자가 툭 흘러나왔는데 익어가는 과정에서 흰자가 식용유를 깔고 앉아 존재감을 가립니다. 후라이팬에 들러붙지 않았다는 정도로 식용유의 존재를 짐작하는 정도지요. 흰자는 노른자도 뒤덮어서 마치 흰자만 부치는 것처럼 보이지요. 허나 계란이 다 익어갈 즈음 갑자기 노른자가 펑, 하고 분화하여 새하얗던 흰자의 위를 덕지덕지 뒤덮습니다. 결국 흰 계란후라이를 먹을 줄 알았는데 노란 후라이를 먹게 되었더라, 라는 결과를 얻는 것입니다. 허나 계란후라이는 계란후라이, 좋아하는 사람에겐 색이 어떻든 맛은 있습니다.

 밸런스는 위태롭고 잘 맞춰졌다는 느낌이 들진 않지만 현학적이고 고답적인 사상이 넘쳐나는 추리소설, 추리소설인 척하고 있지만 사실은 사상서적이라는 소설의 정체를 파악하고 나면 재미의 포인트를 찾는 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가사이 기요시라는 사상가의 이론을 읽는 기분으로 보면 재미있습니다. 사건을 해결하는 척하며 현상학 이론을 늘어놓고 다른 사상을 깔아뭉개는 사상가 탐정 야부기 가케루는 나름대로 읽는 맛이 있는 인물입니다. 시몬 뤼미에르라는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을 내세워 전혀 윤리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는 가케루는 81년에도 그랬겠지만 지금도 다분히 개성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니 전작을 재밌게 읽으신 분들께선 전작 이상으로 만족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예상되네요.

 추리소설의 관점에서 보자면 좀 공허합니다. 처음의 트릭은 재미있지만 분 단위로 움직이는 인물의 행동을 보고 있자면 현실성도 떨어지고 이후의 살인에는 트릭이나 지적 자극 자체의 양이 확 줄어들어 굳이 살인이 계속 일어나야 했나 싶은 마음까지 듭니다. 살인의 당위성이나 목적이 범죄자에게 있다보단 사상 대결을 위한 장치로 쓰이기에 사람이 죽었음에도 비중이 굉장히 적습니다. 퍼즐 같은 지적 유희를 위해 등장인물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경우는 추리소설에 있어 전혀 드문 일이 아니지만 퍼즐적인 느낌이 아니라 사상적인 자극이라 추리독자의 입장에선 기대했던 맛이 아닌 전혀 딴판인 맛이 펼쳐집니다. 초콜릿 아이스크림인 줄 알았더니 슈팅스타였더라, 같은 느낌일까요.

 나름대로 재밌게 읽긴 했지만 뭐라 말해야 할지 잘 모를 소설입니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그저 바이바이, 엔젤부터 읽고 난 뒤 이 소설 묵시록의 여름을 읽을지 결정해보시라는 정도뿐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미 범인을 알지만 말 안 할 거야.” 같은 발암 탐정 종류가 질색이시라면 야부키 가케루는 그쪽으론 끝판 왕이니 부디 조심하라 말씀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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