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다시 벚꽃 -일본

 ‘벚꽃, 다시 벚꽃은 작가 미야베 미유키2013년 작품입니다. 작가는 현대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나 지금은 역사소설에 SF, 판타지까지 폭넓은 장르를 넘나들며 넘치는 재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벚꽃, 다시 벚꽃은 그중 역사소설에 속합니다. 작가는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리즈물을 꾸준히 쓰고 있는데 국내에도 출판사 북스피어를 통해 미야베 월드 제 2이라는 카테고리로 번역되고 있지요. 벚꽃, 다시 벚꽃은 에도 시대물은 맞지만 시리즈물에 속하지 않는 독립적인 작품입니다. 출판사도 북스피어가 아니라 비채를 통해 출판되었지요. 이 때문에 그간 작가의 에도 시대물을 지속적으로 출간해왔던 북스피어가 비채와 싸우기도 했다는데 흠이 문제에 대해서는 저도 아는 바가 없으니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원서의 표지입니다. 핑크핑크한 게 귀엽네요. 이 소설의 원제는 ほうさら(사쿠라호사라)’로 야마나시 현의 일부 지역에서 온갖 일이 벌어져 난리 났다는 의미로 쓰이는 방언인 ささらほうさら(사사라호사라)’에서 사사라사쿠라(벚꽃)”로 바꾼 조어입니다. 번역에서는 사사라호사라를 뒤죽박죽으로 옮겼는데 어감이나 운율은 잘 어울리지만 의미 자체는 딱 들어맞는다는 느낌은 아니네요. 엎친데 덮쳤다, 쪽이 의미로는 약간이나마 더 맞지 않을까 합니다만 이쪽은 운율 면에서 아쉬운 감이 있어서조어인 사쿠라호사라의 경우에는 벚꽃박죽으로 옮겼더군요. 이 또한 약간 미묘한 감이 있지만 나름대로 최선의 번역이 아니었나, 여겨지기도 합니다. 번역이란 참 어렵네요. 원제의 번역에 대한 이러한 사항은 등장인물 소개 뒤의 일러두기 부분에 잘 적혀 있습니다. 잘 적혀 있는데저는 못 봤어요. 미처 못 보고 원제와 본문의 뒤죽박죽, 벚꽃박죽이라는 표현을 본 뒤 , 이거 제목에 번역으로는 옮기기 힘든 말장난을 쳐놨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위키를 막 뒤져 이것저것 알아내고선 블로그에 쓸 거리를 찾았다고 막 좋아했었는데일러두기에 다 쓰여 있었어요. 슬프다

 

 젊은 사무라이 후루하시 쇼노스케는 마치 요즘의 고시원처럼 기다란 집을 칸칸이 나눠 각 방마다 빈민들이 셋집살이를 하는 나가야의 한 방에 살고 있습니다. 자그마한 시골인 고향 도가네 번을 떠나 에도의 단칸방에서 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으니, 바로 아버지인 소자에몬에게 누명을 씌운 대서인(공문서를 대신 써주는 사람)을 찾기 위함입니다. 소자에몬은 뇌물을 받았다는 누명을 썼는데 그 증거로 소자에몬의 필체와 완벽히 똑같은 뇌물 수수 문서였습니다. 복사기가 있던 시절도 아닌데 너무나 완벽히 똑같은 필체의 문서가 나오자 소자에몬조차 자신의 결백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결국 그는 할복을 하고 후루하시 가는 공중분해 되지요. 이에 어머니 사토에는 쇼노스케를 에도에 있는 고위관리 사카자키 시게히데에게 보냅니다. 사카자키는 쇼노스케에게 남의 글씨를 완벽히 베끼는 대서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쇼노스케는 그 인물을 찾아 아버지의 복수를 하겠다고 결심합니다. 결심을 하긴 했는데 원체 흐리멍덩하고 착한 심성의 소유자라 주위에서 벌어지는 사건마다 빠지지 않고 고개를 들이밉니다. 게다가 우연히 바라본 벚나무 아래에서 벚꽃의 정령처럼 보일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에게 마음마저 빼앗기며 위조범 찾기는 점점 뒤로 밀려납니다.

 

 벚꽃, 다시 벚꽃은 시대물 추리소설입니다.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소설은 주인공이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고 그 뒤에 숨겨진 더 큰 음모를 파헤친다는 큰 틀 속에서 몇 가지 자잘한 의문의 사건들이 이어져 읽기 좋은 호흡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주인공 후루하시 쇼노스케가 워낙 다정한 인물이라 그리 티가 나진 않지만 소설은 의외로 굉장히 날카롭고 무거운 주제로 엮여있습니다. 가족 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이나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관계가 아닌, 남보다 더 멀고 냉정한 사이도 있음을 그리기 때문이지요. 당장 주인공의 가족부터 그렇습니다. 쇼노스케의 아버지 소자에몬은 느긋한 성미를 지녔고 어머니 사토에는 대단한 야심가에 몇 번의 이혼 탓에 격이 떨어지는 남자에게 시집왔다는 인식을 가진 상태라 둘의 관계가 굉장히 좋지 않은데 형인 가쓰노스케는 어머니의 편을 들고 쇼노스케는 아버지에게 공감하고 있어 가족이 둘로 쪼개져 섞일 수 없는 지경입니다. 주인공의 가족뿐 아니라 작중 나오는 가족들 중 상당수가 이래저래 꼬인 부분이 있어 책을 읽다보면 그래, 문제없는 가족이란 없지같은 소리가 절로 나올 지경입니다. 저희 가족도 나름 문제가 있는데 그게 뭐냐면저 자신이군요. 큰일이야.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는 다 알아서 열심히 살고 있는데 나만 문제야흑흑, 불효자는 웁니다.

 주제는 묵직하지만 밝고 다정한 등장인물들이 많아 읽기 부담스럽지는 않습니다. 특히 주인공이 사는 도미칸 나가야의 주민들은 선량하고 유쾌한 인물들이라 좋더군요. 비중이 적긴 합니다만. 여주인공인 와카는 시대극의 히로인답지 않게 드세고 활달한 여인입니다. 외모에 의한 트라우마 때문에 초반에는 낯을 가리는 조신한 여인처럼 나옵니다만 나중에는 과격한 면모도 보여서 다채롭고 매력적입니다. 주인공 이상으로 지적이고 추리에 강한 모습도 보기 좋더군요.

 소설은 몇 가지 에피소드들이 이어지는 전개라 연작단편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사무라이지만 하는 일이 필사인이라 서적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 신선합니다. 단순히 책을 베끼는 것만이 아니라 부록인 입체그림을 조립하고 새로이 만드는 것이나 책에 있는 삽화도 베껴 그리는 등 금속활자가 널리 쓰이기 이전의 책의 제작이나 유통 등이 다뤄지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찾아야 하는 적수가 검의 달인 같은 게 아니라 인간복사기라는 점도 독특하지요. 그 덕에 글씨에 담긴 쓰는 사람의 마음 같은 에피소드가 풍부하여 옛날에 서예를 배우던 때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2주 정도 배웠었나가만히 앉아 있는 게 힘들어서 곧바로 때려치웠던 거 같은데. 어쩐지 딱히 떠올릴 게 없더라니. 다만 한 권 분량에서 이야기가 끝나기에 초반에 비해 후반의 전개가 좀 급하게 진행됩니다. 아버지 소자에몬의 죽음 뒤에 감춰진 거대한 음모! 가 밝혀지는 부분은 스토리가 아니라 대부분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정보로 전달되기 때문에 맥이 빠지는 감이 있지요. 암만 흐리멍덩한 쇼노스케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수동적인 배역이었어야 했나, 하는 아쉬움도 있고요.

 벚꽃, 다시 벚꽃은 젊은 사무라이가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 시대극, 이라는 평범한 타이틀 뒤에 신선함이 가득 숨겨져 있는 소설입니다. 젊은 사무라이라는 녀석은 검술에 미숙한 지지리도 순한 인물이고 벚꽃의 정령처럼 화사하고 가녀릴 것 같던 여주인공은 과격한 언동을 늘어놓는 왈가닥이며 아버지의 원수는 검이 아니라 붓으로 사람을 잡는 악당이라 악당을 잡기 위해서 주인공도 칼을 놓고 붓을 들어 대본소에서 책을 베끼며 살아가고 빈민촌에서 부대끼다보니 그 붓마저 놓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러 뛰어다니기 일쑤입니다. 그렇다고 사람 좋은 주인공이 펼치는 다정한 이야기냐, 하면 그건 또 아니라 가족끼리 서로 흉기를 휙휙 휘둘러대는 살벌한 내용이 의외로 산적하여 언밸런스한데 이 전형적이지 않음이 참 매력적인 소설입니다. 다만 뒤로 갈수록 작가가 쓰고 싶은 것 다 썼으니 끝내야겠다는 식으로 후다닥 급하게 진행된다는 점이 살짝 아쉽습니다.


 

 201411일에 NHK에서 드라마로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구글에서 사쿠라호사라라고 검색만 해도 자막달린 드라마가 바로 나오기에 봤는데 6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한 화 88분 안에 담아내다보니 만듦새는 영 엉망입니다. 소설의 큰 틀만 따온 뒤 내용을 이것저것 많이 고쳤지만 영 엉성하네요. 하지만 주인공이 노다메 칸타빌레에 나온 치아키선배여서 그 사람 보는 맛은 있었습니다. 여주인공 역할의 배우도 나름대로 귀여웠고요. 배우 이름이 칸지야 시호리고 필모그래피 중 제가 아는 건 애도하는 사람이 있네요. 소설로 읽었을 뿐이지만! , ‘스윙걸즈에도 나왔네요. 이 영화 진짜 재밌는데. 스윙걸즈 보세요. 벚꽃, 다시 벚꽃의 감상문을 맺는 말이 스윙걸즈인 건 좀 이상하긴 한데 진짜 재밌어요.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봤는데 그때 하와이안 레이도 받았었어요. 너무 좋아서 학교에 걸고 가기도 했었는데혼났죠.



덧글

  • watermoon 2015/09/23 22:57 # 답글

    저는 이 책을 보면서 와카의 피부병이 루프스일까 아토피일까 고민했지요 ㅎㅎㅎㅎ
    지루성 피부염일수도 있구요. 맏물 이야기 벚꽃 다시 벚꽃 반지와 십자가의 초상까지
    올해 미미 여사님 작품들은 어째 예전만 못해 섭섭합니다,
    아...피리술사는 재밌었어요. 혹시나 흑백 안주 피리술사 이렇게 시리즈 안읽어보셨으면 추천날리고 갈게요
  • 정윤성 2015/09/24 12:05 #

    유전이 되는데다 아이를 낳으면 완화가 된다고 하니 대체 무슨 병일까요...ㅎㅎㅎ
    그러고보니 전 최근 읽은 미미 여사님 책이 솔로몬의 위증인데다 에도 시대물은 거의 하나도 안 읽었네요.
    watermoon님의 추천작품부터 시작해서 에도 시대물에 진입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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