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호의 악몽 -미국

 작가 댄 시먼스히페리온히페리온의 몰락으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히페리온과 앤디미온그리고 일리움등으로 국내에는 SF작가라는 인상이 강하지만 호러나 역사 소설 등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드러낸 바가 있습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동시에 작품 내에서도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려 SF와 공포, 판타지를 한데 묶어 하나의 소설 속에 혼합하기도 하지요. 작가의 유명세에 비해 의외로 국내에 번역된 작품이 별로 없다는 점이 눈에 띄네요. 개인적으로 칼리의 노래(Song of Kali)’다윈의 칼(Darwin’s Blade)’을 특히 읽고 싶은데 어째 좀 번역이 안 되려나오픈하우스출판사에 기대를 걸어 봐도 될까요?

 

 ‘테러호의 악몽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1845년 북극의 북서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떠났던 프랭클린 탐험대의 실종 사건을 소설로 그려낸 것이지요. ‘존 프랭클린함장이 이끄는 두 대의 최신 함선 이리버스호와 테러호는 그간 이루어졌던 북극 탐험들 가운데 가장 많은 준비를 갖추고 북극으로 향합니다. 100명이 넘는 숙련된 선원들과 3년은 족히 먹을 수 있는 풍부한 비축 식량, 최신 기술을 모두 접목하여 건조한 훌륭한 함선을 두 대나 갖춘 탐험대에게 실패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허나 북극의 가혹한 추위 앞에 탐험대의 자신감은 아주 간단히 겸손으로 바뀌었습니다. 북극의 얼음을 가르던 함선 둘 모두 빙해에 갇혀 꼼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고 선원들은 배에 머물며 얼음이 그나마 줄어들 짧은 여름을 기다립니다. 영하 45도까지 내려가는 강렬한 추위, 살을 에는 강렬한 돌풍, 식량을 얻을 수 없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석탄은 서서히 바닥나고 라임주스만으로 막을 수 없는 괴혈병과 단가를 줄이려고 대충 만들어 썩어가는 통조림이 선원들을 위협합니다. 허나 이러한 요소들은 어쩌면 북극 모험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것일지 모릅니다. 지혜롭고 경험이 많은 선장 크로지어와 휘하의 강건한 해군들이라면 이겨낼 수 있는 시련일 수도 있었습니다. 시련을 비극으로 바꾼 존재의 등장만 아니었다면 말이지요. 차갑고 어두운 설원에는 인간이 미처 상상하지 못한 포식자가 숨어 있었습니다. 매서운 자연은 가공할 괴물을 기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 테러호의 악몽은 실제 사실을 각색한 소설입니다. 프랭클린 탐험대는 실제로 북서항로를 찾아 탐험에 나섰고 실종되었습니다. 탐험대를 찾기 위해 구조대가 꾸준히 파견되었지만 몇 구의 시체와 유물 조금 그리고 이누이트들에게 들은 탐험대의 이야기 정도만이 수확이었지요. 2014년에 이르러서야 캐나다 구조팀이 이리버스호를 찾아냈을 정도입니다. 구조의 와중에 하나의 소문이 돌았다고 합니다. 탐험대의 선장 크로지어가 이누이트의 마을에서 살고 있더라는 목격담이 나온 것이지요. 정말 크로지어가 살아남은 것인가? 그렇다면 왜 영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북극에 남아 있는 것인가? 작가는 이 이야기에 주목했습니다. 테러호와 크로지어의 운명은 과연 어떠했을 것인가. 댄 시먼스는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테러호를 되살립니다.

 테러호의 악몽은 굉장히 잔인합니다. 혹한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지 선명하게 보여주지요. 동상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을 잘라내는 것은 예사에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옷을 껴입어도 추위를 막을 수 없고 비타민C를 보충할 수 없어 온 몸에서 피를 흘리는 끔찍한 괴혈병에 죽어나가는 등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이란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작가가 그려낸 북극의 자연은 너무나 가혹하여 경외심이 듭니다. 생이 허락되지 않은 대지가 가진 찬란한 위압감에 눈이 멀 지경이지요. 허나 이런 식의 자연에 대한 묘사는 북극 관련 소설들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기에 참신하지는 않습니다. 거장의 실력으로 뛰어나게 묘사했지만 여전한 북극에서 더 나아가진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기존의 다른 북극 소설들과 다를 게 없을까요? 다른 게 있습니다. 바로 괴물의 존재지요.

 테러호의 악몽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만 너무나 픽션스럽습니다. 추운 북극에서 조난당한 선원들의 모습이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려집니다만 그럼에도 조금도 논픽션의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이야기에 괴물이 등장하기 때문이지요. 말 그대로 괴물입니다. 북극곰보다 훨씬 크고 거대한 발톱이 달린 양 손을 자유자재로 이용하며 얼음 구멍을 통해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며 인간들을 우롱할 정도로 지능이 높은 괴물이 이야기 속에 등장합니다. 이 괴물은 소설의 핵심입니다. 괴물은 선원들을 죽이고 잡아먹는 실질적인 존재입니다. 그와 동시에 잡아간 선원 두 사람을 먹어치우는 대신 각각을 반토막낸 뒤 서로 이어 붙여서 하나의 육체로 만들어 배에 돌려줄 정도로 이해의 영역을 벗어난 존재입니다. 현실에 있을 리 없는 괴물이 등장해 현실적인 난동을 피웠으면서 선원들이 뒤늦게나마 괴물이 실재함을(유독 커다란 북극곰 같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붙잡으려고 하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선원들을 우롱하거나 안개처럼 사라져버리기도 합니다. 괴물은 현실과 환상 사이의 경계를 마음대로 넘나들고 이에 호응하듯 벙어리 이누이트 여자와 크로지어 선장마저 환상의 세계로 자신들의 인식을 넓힙니다. 테러호의 악몽은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하여 가혹한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현실적인 모험에 이른 뒤 점차 신화의 영역에 발을 들입니다. 프랭클린 탐험대의 실종에 기대고 있던 이야기는 어느새 이누이트 신화에 몸을 기댄 채 독자들을 환상의 세계로 이끌고 갑니다. 이 두 가지 세계의 크나큰 간극에 작가는 북극이라는 자연 환경과 괴물이라는 존재로 다리를 놓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야기는 위태로움 대신 묘한 우아함을 갖춰 깊은 인상을 줍니다. 가혹한 자연 환경, 역경을 이겨내려는 선원들의 노력, 노력을 무효로 만드는 괴물의 존재, 괴물과 맞닿은 이누이트의 신화라는 흐름은 예측이 힘들면서도 설득력이 있고 구조가 탄탄하여 매력적입니다.

 소설은 서양의 과학 문명과 환경에 적응한 이누이트의 지혜를 대비하여 보여줍니다. 북극이라는 환경에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현대 문명의 정수에서 이야기는 결국 자연과의 조화라는 목적지에서 안착하는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굴절된 산물인 괴물과 선원들이 모두 떠난 뒤의 테러호를 등장시켜 자연과 인간 간의 관계에 대해 기존의 안이하고 오만한 인식, 즉 자연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기독교적인 인식이 착각이며 인간은 결국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경고를 꾸준히 전달하긴 합니다만 소설이 그간 펼쳐보였던 환상적인 모험의 과정에 비한다면 결론이 너무 일반적인 수준에서 멈춘 게 아닌가 싶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물론 기상천외한 결론이 무조건 좋을 리는 없겠습니다만 놀라운 모험을 거친 모험가의 종착역이 따뜻한 자기 집 안방이라는 건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느껴지네요.

 테러호의 악몽은 역사적 사실, 현실적인 모험, 무시무시한 공포를 거쳐 몽환적인 신화의 영역까지 나아가는 놀라운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북극으로 나아가는 함선처럼 위험한 도전을 하며 먼 길을 나아가지요. 이 모험에 독자라는 입장으로 동행하는 것은 무척 즐거운 경험이리라 확신합니다.



덧글

  • nenga 2015/11/07 11:40 # 답글

    히페리온에서도 그런 괴물 같은 존재가 나오죠
  • 정윤성 2015/11/07 17:45 #

    히페리온도 정말 대단했죠. SF에 대한 제 선입견을 깬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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