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폐수사, 은폐수사2 수사의 재구성 -일본

 ‘곤노 빈55년 생으로 지금까지 120여 권의 작품을 발표한 중견 작가입니다. 라이트노벨부터 SF, 미스터리까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작가로 무술과 격투기의 묘사에 능하고 사회의 뒷면이나 조직 세계의 심리를 그리는 것을 선호합니다. 남성적인 내용이 많지만 긍정적인 작풍에 여성 독자들에게도 인기가 많다고 하네요. 2013년에 일본추리작가협회이사장에 취임했으며 각종 문학 신인상에서 심사위원직을 맡고 있습니다. 특이할 만 한 사항으로는 89년에 정당 원전이 필요 없는 사람들의 후보로 참의원 선거에 나갔지만 낙선한 것과 2013년에 영화 이류소설가 시리얼리스트(二流小説家 シリアリスト)’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는 정도입니다. 인기드라마 ‘ST 경시청 과학 특수반의 원작 작가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지요. 약력이 워낙 길어서 작품들을 소개할 엄두도 나질 않네요. ‘은폐수사은폐수사2’는 각각 작가에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 ‘야마모토 슈고로상그리고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안겨 준 대표작입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총 7편의 시리즈가 출간되었으며 드라마로도 제작된 바가 있습니다. ‘아사히방송사에서 전 2화로 한 번, ‘TBS’ 방송사에서 전 11화로 한 번 제작되었다고 하네요. 국내에는 은폐수사2 이후로 번역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 아쉽네요.

 

 ‘류자키 신야는 경찰청 총무부에서 언론사를 상대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철저하게 아내에게 맡긴 채 출세만을 위해 노력한 원칙주의자로 주변에서는 그를 별종 취급하고 있습니다. 여느 때처럼 업무를 처리하던 중 살인사건의 보고가 누락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아무리 살인이라 하더라도 류자키 정도의 고위 간부라면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좋을 법하지만 문제는 피해자가 미성년자일 때 흉악범죄를 저지르고 잠시 소년원에 갔다 온 적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소년범에 대한 가벼운 처분에 분노한 예전 피해자의 지인이 벌인 복수인가 의구심을 가지지만 피해자가 조직폭력배였고 총기가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조직범죄로 판단하지요. 폭력배끼리의 싸움이겠거니, 하고 넘어가지만 앞서 죽은 피해자가 소년일 때 저질렀던 범죄의 공범도 시체로 발견되자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역시 총에 맞아 죽었기에 연쇄살인의 가능성이 생긴 것이지요. 매스컴에 발표할 내용을 정리하고 사건 현장과 연락을 조율하던 중 류자키는 범인의 정체에 대해 감을 잡습니다. 그 순간부터 그는 경찰조직을 뒤흔들 수 있는 음모가 벌어지고 있음을 눈치 채지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류자키는 아들이 마약을 하는 모습까지 보게 됩니다. 평생을 헌신한 경찰조직은 더러운 음모를 꾸미고 하나 뿐인 아들은 마약을 빨고 있다는 사실에 류자키는 앞길이 막막합니다.

 

 엘리트 코스를 밟다가 전작에서의 사건으로 지역 경찰서 서장으로 좌천된 류자키 신야는 서장실에서 하루 종일 서류에 도장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원칙주의자답게 상사와 빠르게도 트러블을 일으키고 부하들은 그런 그를 보며 조마조마함을 감추지 못합니다. 그러던 와중 농협을 턴 범인들이 류자키의 관할을 지나는 일이 발생하고 범인 셋 중 둘이 검거됩니다. 문제는 남은 하나가 관할 안의 어느 음식점에서 주인 부부를 붙잡고 농성을 벌였다는 것이지요. 류자키는 경찰 특수부대인 SITSAT에 권한을 넘기고 둘 사이를 조율하여 사건 해결을 돕습니다. SIT가 농성 중인 범인과 접촉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화를 걸었지만 범인은 딱 한 번 전화하지 말라고 소리를 지른 뒤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간간히 총성이 이어지고 인질의 목숨을 우려한 류자키는 SAT에게 돌입 명령을 내리지요. 범인은 사살되었고 인질 부부는 무사히 구조됩니다. 허나 사건이 끝난 후 조사에서 범인의 총이 텅 비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과잉진압의 논란이 벌어지고 모두들 책임에서 한 발을 빼다보니 결국 덥터기가 류자키를 향해 날아듭니다. 또 다시 좌천될 위기의 류자키, 잘못한 게 없으니 좌천당하더라도 당당하다고 생각하고 싶은 그지만 아내가 위장염으로 병원에 실려 간 상태입니다. 아내에게 이 이상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은 류자키, 앞길이 막막합니다.

 

 은폐수사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주인공 류자키 신야입니다. 이야기 초반의 류자키는 그야말로 꼰대의 전형입니다. 아내에게 집안일과 자식들을 전부 미루고 딸 말은 듣지도 않고 딸에게 다른 경찰 고위 간부의 아들과 혼담을 이야기하고 명문 사립대학에 합격한 아들에게 도쿄대에 가야한다며 강제로 재수하게 만드는 등 답이 없는 행보를 보이지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그의 원칙주의가 빛을 발하며 매력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왜 다들 그를 꼰대가 아니라 별종이라고 부르는지 알게 되지요. 픽션에서의 원칙주의자들은 대개 인간적인 면모가 부족하기 마련이지요. 악당일 때가 많습니다. 주인공 역할의 인물이 인간미 넘치는 주장을 펼치면 원칙주의자 역할의 인물은 융통성 없고 상황에 맞지 않는 원칙을 내세워 주장을 거부하고 비극의 발단을 만들고는 하지요. 게다가 이야기의 말미에 가서는 슬쩍 원칙주의자가 원칙을 고수하는 인간미 있는 이유를 끼워 넣어 면죄부를 주고는 합니다. 당장 기억에 나는 어처구니없는 원칙주의자 캐릭터로 만화 블리치의 그, 여주인공의 오빠인 그 사신, 이름이 뭐더라, 뱌쿠야였나? 검색해보면 금방 알겠지만 어쩐지 귀찮네요. 암튼 걔가 원칙을 지킨답시고 여동생을 교수대로 보내는데 나중에는 죽은 부인과의 약속 때문에 원칙을 지켰느니 뭐니 어이가 삼도천을 건너는 이상하기 짝이 없는 면죄부가 주어지는 걸 보고 블리치를 그만 읽기로 마음먹었지요. 아무튼 개인적으로 원칙주의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초반에는 갈등의 불씨가 되고 후반에는 면죄부가 주어지는 식의 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지겨워져요. 허나 류자키는 이러한 지루함과 거리가 멉니다. 원칙을 진심으로 믿고 지키면서도 속으로는 인간적인 고민과 고뇌가 용암처럼 끓어오르거든요. 경찰조직 상부가 자신들의 치부를 숨기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그 과정에서 류자키의 동의를 강요하는 동시에 집에서는 아들이 마약을 바른 담배를 피우는 광경마저 목격합니다. 평생을 출세를 위해 바쳤는데 아들이 마약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모든 게 끝이지요. 친구에게 사실을 털어놓으니 아들의 범죄를 덮으라고 말합니다. 마약을 담배에 발라 피우는 꼴을 보니 딱 초심자 수준이니 어르고 달래면 끊게 하는 것도 어렵지 않아 보이고 마약 투약으로 전과가 남으면 아들의 장래가 걱정되기도 합니다. 원칙주의자답게 덮어버린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도 못했지만 그 말을 들으니 덮는 게 가장 좋은 선택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친구는 덮는 김에 경찰이 꾸미는 음모도 같이 못 본 체하자고 꼬시고 류자키는 선택의 기로에 서지요. 여타의 원칙주의자들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는 자체를 멋지지 않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원칙을 따르면 선택의 기로 자체가 없다는 태도를 멋지다고 여기는 경우가 왕왕 있지요. 그래놓고는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서 사실 나도 고민했음, 너는 몰랐겠지만. 같이 굴어서 짜증나지요. 류자키는 고민의 과정에 독자들을 동참하게 하고 고민의 결과를 통해 쾌감을 전달합니다. 류자키가 나우시카를 보고 감동을 받을 때는 저도 괜히 감격이더라고요. 꼰대인데 멋있는 캐릭터라는 점이 대단하지요.

 은폐수사는 류자키라는 인물을 멋지게 드러냈고 경찰조직에 대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긴 했습니다만 드라마가 강하고 미스터리는 약합니다. 의심스러운 동기가 엿보이는 연쇄살인을 서두에 내세웠으면서도 사건 현장을 누비는 형사가 아닌 조직의 한 복판에서 정치를 하는 경찰이 주인공인 경찰 드라마라는 점이 참신하고 매력적입니다만 추리를 할 여지는 거의 없다는 점이 아쉽지요. 은폐수사2는 전작과 반대로 일선 경찰서의 서장이라는 위치에서 정치를 하는 경찰 드라마인 것처럼 굴지만 미스터리의 요소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전작과 같은 재미에 추리하는 맛까지 더한 것이지요.

 은폐수사 시리즈는 40대 중반의 멋진 꼰대 경찰이 나온다는 점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합니다. 3편에서는 류자키가 연애하는 내용이 담겼다는데 번역되지 않아서 정말 아쉬워요. 이럴 때는 갑갑해서 일본어를 제대로 공부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데 단 몇 시간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열정이 식어버리지요. 제 원칙은 게으름인가봅니다. 하하하.



덧글

  • Esperos 2016/02/29 01:00 # 답글

    어라, 이게 3권도 있었군요. 저도 1-2권 나온 것을 매우 재미나게 읽었고, 말씀하신 것처럼 주인공이 '멋진 꼰대'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 정윤성 2016/02/29 07:14 #

    1, 2, 3권에 4, 4.5, 5, 5.5까지 총 7권이 나와 있다고 하더군요. 국내에는 2010년에 나온 2권 이후로 소식이 없습니다만... 주인공의 활약을 더 보고 싶은데 아쉽기 그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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