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리처의 퍼스널 -미국

 ‘퍼스널잭 리처 시리즈19번째 작품이며 국내에 12번째로 번역된 잭 리처이기도 합니다. 잭 리처 시리즈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작품인 추적자탈주자가 번역된 뒤 중간을 휙 건너뛰고 영화화가 된 아홉 번째 작품인 원 샷부터 다시 번역되었습니다. 12번째 작품인 ‘Nothing to Lose’와 시리즈 최신작인 20번째 작품 ‘Make Me’를 제외한 후기 잭 리처 시리즈는 순서대로 주르륵 읽을 수 있는 것이지요. 슬슬 초기 작품들도 번역해주면 좋겠는데 말이지요.

 잭 리처 시리즈는 칫솔 하나만 챙긴 채 미국 전역을 떠도는 전직 헌병이자 현직 최강의 백수 잭 리처의 활약상을 그린 하드보일드 소설입니다. 9.11 사태 이후로는 칫솔과 함께 기한이 지난 여권과 현금카드 한 장을 챙겨 다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무명의 떠돌이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요. 옷이나 속옷 같은 건 지저분해지면 새로 산 뒤 입고 있던 건 그 자리에서 버립니다. 짐이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와 빨래를 군에서 당번병이 늘 대신해주다보니 아예 할 줄 모른다는 이유가 한데 엮인 결과가 한 번 입고 버린다는 의복에 대한 기이한 습관이지요. 잭 리처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190센티미터에 110킬로그램의 거구 잭 리처가 여기저기를 떠도는 도중에 만난 악인들을 갈가리 분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요. 폭력의 달인이지만 지적인 면모도 강해서 상황을 파악하고 현상을 분석하여 대책을 세우는 것에 능합니다. 허나 대부분의 경우 정보가 부족한 나머지 현상 분석이 미진해 어딘가 한 군데는 꼭 틀린 대책을 세우고 위기에 빠지는데 그때마다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지요. 어라? 지적인 거 맞나?

 

 우연히 주운 아미타임즈에 자신을 찾는 광고가 올라온 것을 본 잭 리처는 곧장 군에 연락을 합니다. 자신을 부른 슈메이커에게 빚이 있기 때문에 거절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첩보를 담당하는 장군 톰 오데이는 잭 리처에게 프랑스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을 알고 있냐고 묻습니다. 얼마 전 1300미터 밖에서 날아온 총탄이 대통령을 노렸으나 방탄유리에 막혀 실패한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지요. 오데이는 이것이 일종의 오디션이고 G8, G20 같이 각국 정상들이 모였을 때를 노린 거대한 테러의 전초전이라고 말합니다. 잭 리처가 저격수는 군 출신일 것이라고 말하자 오데이는 군 출신의 세계 최고 저격수들 중 네 명이 감시망을 벗어난 상태라고 대답합니다. 그 중 한 명이 16년 전 잭 리처가 잡아넣었던 존 콧트입니다. 1년 전 출소한 콧트는 한동안 얌전히 지내더니 어느 순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버렸지요. 한 번 콧트를 잡았으니 두 번도 가능할 것이라며 오데이는 잭 리처를 프랑스로 보내 암살 미수에 대해 조사하라고 합니다. 콧트를 제외한 나머지 용의자 저격수들의 나라 영국과 러시아에서도 정보부원들이 프랑스에 도착해 잭 리처와 함께 저격 장소로 향합니다. 영국과 러시아 요원들은 각자 자기네 나라 저격수가 범인일 리 없다고 주장하며 저격이 이루어졌던 집을 조사한 뒤 옹기종기 모여 프랑스에서 수집한 정보를 확인합니다. 3초 전에 쏜 총알이 1500미터의 거리를 뚫고 그들을 향해 날아드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말이지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전개가 상당히 어처구니없습니다. 잭 리처 시리즈라는 게 사악한 악당을 잭 리처가 갈아버린다는 심플함 덕분에 어이없는 전개가 왕왕 등장하곤 합니다만 이번 퍼스널의 경우에는 어이를 너무 노골적으로 없애서 의아할 정도입니다. 설명하기 힘든 몇 가지 허점이 별 다른 숨김없이 눈앞에 탁 펼쳐지는 까닭에 읽는 내내 피어오르는 의구심을 지우기가 힘들었습니다. 제가 가장 처음에 느낀 어이없음은 소설의 가장 큰 복선이라서 적기가 곤란해서 좀 아쉽지만 넘어가고 이후로 느낀 어이없음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G8에서 각국 정상들을 최소한 한 명 이상 암살할 것이라는 거대한 음모에 대항하는 태도가 우스울 정도로 소극적이라는 점입니다. 런던에 숨어든 두 명의 저격수가 암살을 할 것이며 지역의 갱단이 그들을 숨겨주고 돕는다는 정보까지 입수한 마당에 영국의 경찰이나 정보부는 갱단의 두목이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많이 먹였다는 이유로 손을 전혀 대지 못합니다. 갱 두목이 수 명, 혹은 수십 명의 정치인들과 결탁했을 수도 있지요. 그런 갱이 감싸는 암살자가 중소기업의 사장 정도를 노린다면 알면서도 유야무야 넘어가는 상황 정도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허나 대상에 자국의 총리가 포함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미국과 러시아의 대통령에 더해 자국 최고 지도자도 죽을 위기인 거지요. 그런데 뇌물을 많이 먹여서 뒷배가 빵빵하니 합법적인 방법 외에는 건드릴 수가 없어요, 라니 말이 되나요? 정치인들이 정말로 미국 대통령이랑 우리 총리가 죽겠지만 뇌물 준 사람이 더 중요해! 라고 할까요? 정말? 물론 이야기가 전개되면 영국 정보부가 소극적인 이유가 등장하긴 합니다. 잭 리처가 생각 없이 암살자가 숨어있는 갱의 소굴로 쳐들어가면 그걸 기회로 갱들을 뿌리 뽑고 암살자를 잡는다는 계획이 있었다는 말이지요. 그게 플랜A라고? 불법적인 행동을 하기 싫으니 미국인 하나를 희생시키는 게 최고로 안전하고 확실한 계획이라고? 말도 안 되지요. 암살이 일어날 것이라는 G8은 지정된 날짜에 이뤄지는 회의입니다. 디데이를 알고 있다는 이야기지요. 그러면 그 동안 합법과 불법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지연작전을 쓰는 게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암살자를 숨겨두는 갱의 주요인물들을 소환해서 조사하고 자금줄을 수사하고 말단들을 잡아들이며 마구 소란을 피우면 움직임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암살자가 숨은 아지트를 특정했다면 G8의 당일까지 봉쇄 수준의 감시를 할 수도 있습니다. 암살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암살자를 돕는 게 어디인지 모르고 암살이 언제 일어날지 모를 경우에는 자원의 소모가 지나쳐서 불가능한 방식이지만 모두 알고 있다면 간단하게 할 수 있지요. 그런데 대신 잭 리처를 적의 소굴에 던져두고 상황을 보겠다니 플랜A는커녕 플랜X로 쓰기에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잭 리처는 언제나의 잭 리처입니다만 여주인공인 케이시 나이스는 너무 수동적이라 매력이 별로 없었습니다. 9.11 이후 국가를 지키겠다는 사명감에 지나치게 무리를 하는 젊은 CIA요원이라는 설정은 매력적이지만 문제는 파트너가 잭 리처라는 점입니다. 잭 리처가 다 알아서 하다 보니 케이시가 무리를 할 여지가 없어요. 잭 리처가 세 명을 죽이는 동안 케이시는 한 명을 죽이는데 그걸 가지고 잭 리처의 칭찬을 받습니다. 어이구, 우리 케이시, 사람도 잘 죽이네! 우리 케이시, 운전도 잘 하네! 우리 케이시, 총도 잘 쏘네! 어화둥둥 잘 한다~ 하면서 잭 리처가 안아 기르다보니 케이시가 뭘 해도 한 것 같아 보이질 않습니다. 뭔가 잘 할 때마다 잭 리처에게 곧장 칭찬을 받으니 인물이 늠름하게 성장한다기보다 젖먹이가 걸음마를 시작하는 것 같이 느껴져 시큰둥합니다. 완성형 인물의 파트너가 성장형 인물이라는 점까지는 좋았는데 암만 성장해도 비교 대상이 잭 리처라서남녀 간의 성적 긴장감조차 없다보니 케이시는 평범한 사이드킥 수준에 머물러서 관심이 가질 않더군요.

 악당 존 콧트는 이야기에서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해 황당했습니다. 저격수라는 게 본디 몸을 숨기고 단 한 발의 총알로 적을 죽이는 수수하면서도 치명적인 역할인데 몸을 꽁꽁 숨겼다는 점에서는 합격점이지만 이야기에 제대로 등장하지도 못한 채 몸만 숨기다가 사라졌다는 점에서는 치명적이지 못해 불합격입니다. 작중 인물들이 저격수 무서워, 저격수 무서워! 하면서 몸을 사렸다면 보이지 않는 위험 정도로 여길 수도 있었겠지만 잭 리처는 저격수좀 긴장되네정도의 태도고 나머지 인물들은 별 생각 없이 잭 리처만 졸졸 따라다녀 저격수의 위험성이 부각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존 콧트의 마지막은 마치 숨바꼭질하던 중 술래가 찾는 걸 잊은 채 집에 가버린 걸 모르고 계속 숨은 아이마냥 이야기 내에서 그대로 잊힌 꼴이라 허무했지요.

 G8의 정상들을 노리는 테러라는 거대한 이야기로 시작했기 때문일까요? 제시된 위기에 비해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은 작고 소극적이었습니다. 게다가 반전을 감당하는 복선은 상식적인 의구심 하나로 쉽게 눈치 챌 수 있고 전개 또한 이해할 수 있는 영역 밖으로 슬쩍슬쩍 넘어가버립니다. 퍼스널은 최고의 잭 리처 중 하나라고 부르기에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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