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애플 -일본

 ‘마리 유키코는 소위 이야미스라고 불리는, 읽기 거북하고 읽고 난 뒤 기분이 찝찝한 미스터리의 대가입니다. 싫다는 뜻의 이야다()와 미스터리를 합쳐 만든 신조어로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일본의 추리소설 평론가 시모츠키 아오이라고 하네요. 국내에서는 다크미스터리라고 옮겨 쓰던데 뜻이 정확히 합치한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네요. 이야미스로 유명한 작가로는 미나토 가나에’, ‘누마타 마호카루’, 마리 유키코, ‘우타노 쇼고등이 있다고 합니다. 미나토 가나에는 참작가 이름만 봐도 읽기 전부터 겁이 나지요. 또 어떤 무시무시한 찝찝함을 선사할지 두려울 정도입니다. 누마타 마호카루는 요즘 순문학 쪽으로 빠져서 좀 아쉽고 우타노 쇼고 아저씨는 미스터리라는 장르 안에서 워낙 다양한 시도를 하는 양반이라 그저 이야미스의 대가라고 보기는 힘들지 않나 싶네요. 이야미스와 비슷하게 읽기 거북한 작품을 쓰는 외국의 작가로는 개인적으로 조이스 캐롤 오츠를 꼽고 싶네요. 예전에 대디 러브를 읽었는데 어우어우, 싫어라.

 마리 유키코는 1964년 생으로 05년에 고층충으로 제 32메피스토 상을 수상하며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08년에 발표한 살인귀 후지코의 충동50만부 이상 팔리는 큰 인기를 얻으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15년에는 인생 상담으로 제 28야마모토 슈고로 상의 후보에 오르기도 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국내에 번역된 작가의 작품으로는 살인귀 후지코의 충동, ‘여자 친구’, ‘골든 애플이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12년에 인터뷰 인 셀 살인귀 후지코의 진실(インタビュー・イン・セル 殺人鬼フジコの真実)’이라는 제목으로 살인귀 후지코의 충동 후속작이 나왔다고 하네요. 저는 살인귀 후지코의 충동을 몇 페이지 읽다가 어우, 어우야하는 마음이 마구 몰아쳐서 그만 다 읽지 못하고 놓아버렸습니다. 난 아직 멀었어

 

 골든애플은 여덟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연작단편집입니다. 단편들은 다른 정신 이상자의 영향을 받아 같은 정신 이상을 보이는 질병인 감응정신병을 소재로 삼아 정신 나간 이야기를 펼치고 있어 읽고 있자면 정신이 아찔해집니다. 허나 생각만큼 거북하지는 않으니 난이도가 그리 높지는 않은 느낌이더군요.

 에로토마니아 색정광, 혹은 연애망상이라는 의미입니다. 인기 작가 하루나 미사키가 스토커의 칼에 찔립니다. 스토커의 이름은 가와카미 고이치’. 그는 하루나 미사키가 쓴 연애 소설 주인공과 동성동명이지요. 가와카미는 우연히 읽은 하루나 미사키의 소설에서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고 그 후 소설 전체가 자신을 향한 하루나 미사키의 고백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스토킹 행각은 점점 심해지다가 결국 비극으로 이어졌지요. 그런 그의 재판을 방청석에서 바라보던 마이코는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됩니다.

 클레이머 말 그대로 클레임 거는 사람을 말합니다. ‘와타나베 다쿠야가 점장으로 일하는 수제반찬 가게 옆의 크로켓 가게의 크로켓에서 손가락이 나오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에 와타나베의 가게까지 매상이 급감하고 회사는 매장을 정리하는 김에 와타나베를 본사에서 일하게 하려고 합니다. 바라던 본사 근무를 앞두고 신이 난 와타나베지만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칼리굴라 금지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심리를 칼리굴라 효과라고 한다는군요. 하루나 미사키의 편집자 다나카 겐타로는 어느 날부터 이상한 전화를 받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찾아오기도 하고 보일러가 난데없이 고장 나기도 하지요.

 골든애플 발매된 적도 없는 골든애플이라는 음료수를 마셔봤다는 증언이 끊이지 않아서 생긴 도시전설이라는군요. 인력파견회사에서 일하는 마스다 나나코는 파견직원 중 사내 인간관계 때문에 관두겠다는 사람을 말리느라 곤혹을 치릅니다. 이에 더해 불과 몇 년 전에 일어났던 손가락 멘치카쓰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당황하고 큰맘을 먹고 간 미용실에서는 실망만 하는 등 악재가 겹치지요. 쌓인 울분을 인터넷에서 발산하던 마스다는 손가락 멘치카쓰 사건으로 열띤 키보드 배틀을 펼칩니다.

 핫 리딩 사전조사로 상대의 정보를 수집한 뒤 신통력으로 알아낸 척 하는 수법. 사전조사 없이 상대를 분석하는 수법은 콜드 리딩이라고 합니다. 방송국 피디 마스다 미노루아마테라스 히미코라는 사이비 영능력자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사전조사로 정보를 얻어놓고는 영능력으로 알아낸 것처럼 사기를 치는 아마테라스 히미코지만 인기는 있지요. 이번 의뢰인은 뇌사상태인 아내의 연명치료를 중단하려고 고민 중인 남편입니다. 아마테라스 히미코는 아내의 영혼을 불러내어 당사자가 아니면 모를 정보를 말하기 시작합니다.

 데자뷔 기시감. 인터넷 설치 회사에서 일하는 에미는 사정없이 클레임을 거는 손님 베토벤에게 진력이 난 상태입니다. 베토벤의 집으로 오라는 상사의 전화를 들은 에미는 급히 회사를 나서지만 이후 알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고 맙니다.

 갱 스토킹 집단 스토킹, 대개 피해자의 망상일 경우가 많다는군요. 손가락 멘치카쓰 사건으로 유치장에 갇힌 마스다 나나코는 그곳에서 갱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는 여인, 하루나 미사키를 만납니다. 한편, ‘야마오카 미쓰코는 누군가 자신을 감시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폴리 아 드 감응정신병, 혹은 이인정신증. 이 이야기에서 하루나 미사키와 마이코 간의 기나긴 이야기가 일단락됩니다.

 

 …요약하지 말 걸. 여덟 편이나 되는데다 제목의 의미를 적느라 분량이 길어져 좀 지저분하네요. 하긴 언제부터 깔끔했다고.

 사실 이 작품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단편마다 어떤 식으로 이어져 있는가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앞서 등장한 인물의 남편이 다음 이야기에 등장하거나 앞서 일어났던 사건이 뒷이야기에서 다시 언급되는 등 이야기들이 복잡하게, 혹은 얼기설기 엮여 있는데 그러한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재미가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연결고리 속에 작가가 숨긴 비밀들이 존재해서 발견할수록 전체 이야기가 점점 명료해진다는 점도 근사합니다. 날실과 씨실 모두 허투루 사용하는 구석이 없어 끊임없이 혼란을 유도하는 반전이 이어지는데도 캐릭터 간의 관계와 플롯이 치밀해서 빈틈이 없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정신병에 기반을 둔 기괴한 이야기의 소재가 현실적이라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키보드 배틀을 벌이는 중년여성이나 클레임, 블랙 컨슈머에 대한 대응 등의 실존할 법한 문제를 정신병과 엮어 혼란 가득한 이야기로 만드는 솜씨가 근사하네요. 정신병에 기반을 두고 불길한 반전이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 덕분에 책을 읽는 제 정신이 나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아주 즐거웠습니다. 다만, 앞서 치밀하게 직조된 이야기라고 했지만 하루나 미사키와 마이코, 가와카미 고이치 사이의 일이 주가 되고 나머지 인물들의 사건은 부가적인 감이 있어 정신이 나갈 것 같은 거대한 혼란이 알고 보면 꽤나 단순하다는 점은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하긴, 이 이상 복잡해봐야 크게 의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골든애플은 단편을 읽을 때마다 앞서 알게 된 인물과 사건에 대해 계속 확신을 잃게 되는 혼란 가득한 이야기입니다. 안 그래도 복잡한 현실을 살고 있는 현대 독자들에게 추천하기는 힘들지만 가끔씩은 현실만큼이나 정신 나간 소설을 읽는 것도 나쁠 건 없다는 생각도 드네요



덧글

  • watermoon 2016/03/15 16:02 # 삭제 답글

    엊그제 여자친구보고 어찌나 찝잘하던지....
    윤성님 독후감을 봤다면 건너뛰었을것 같아요
  • 정윤성 2016/03/15 18:13 #

    헛 역시나... 저는 안 읽어야겠어요. 뒷맛이 찝찝한 거 견디기가 너무 힘들어요.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