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시블 -일본

 리커시블은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의 2013년 작품입니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고전부 시리즈, 인사이트 밀 등으로 국내에도 유명한 작가지요. 저도 아주 좋아하는 작가라서 작품을 하나라도 더 많이 읽고 싶은데 국내 번역이 워낙 활발하게 이루어져 이제 읽을 게 몇 남지 않은 상황이라 너무 슬픕니다현재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작품(단행본 기준)으로는 '왕과 서커스', '진실의 10미터 앞' 그리고 '가을 한정 쿠리킨톤(밤으로 만든 전통과자) 사건' 정도뿐이군요. 앞의 두 작품은 '안녕 요정'에 나왔던 다치아라이 마치가 등장하는 소설로 왕과 서커스는 장편, 진실의 10미터 앞은 단편집입니다. 가을 한정 쿠리킨톤 사건은 소시민 시리즈의 최신간(이지만 2009년 작)으로 이미 국내에 소시민 시리즈 1, 2권인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과 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이 출판사 노블마인에서 (괴이한 표지와 함께)번역된 바가 있지만 중단되었지요. 고전부 시리즈를 펴낸 엘릭시르 출판사에서 다시 소시민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으니 가을 한정 쿠리킨톤 사건도 곧 읽을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엘릭시르 출판사가 너무 고마워요내 취향 작품들이 팡팡 나와서 너무 좋아

 

 하루카는 어머니의 고향인 사카마키 시로 이사를 합니다. 아버지가 횡령을 하다가 들켜 홀로 도주하는 바람에 회사 사택에서 쫓겨나 갈 곳이 없어진 것이었지요. 문제는 어머니가 친엄마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동생 사토루도 친동생이 아니지요. 자식이 있는 두 사람이 재혼을 한 것이었는데 아버지 쪽이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를 했으니 하루카의 입장이 여간 난처한 게 아닙니다. 어머니는 다행이 하루카에게 여전히 다정하지만 죄책감 때문인지 어머니를 편히 대할 수 없는 하루카입니다. 1인 하루카에게 전학 온 학교란 한치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 전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전학생이라고 괜히 눈에 띄면 3년이 피곤하고 자칫 따돌림이라도 당하면 3년이 괴로워지는 거지요. 중학교 입학식에 맞춰 전학을 온 덕에 타지에서 온 전학생임을 들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하기도 잠깐으로 하루만에 들켰습니다. 외지인, 타지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찰나 린카라는 같은 반 소녀가 친근하게 대해줘서 위기를 벗어났지요. 하루카의 학교 생활은 한 고비를 넘겼습니다. 허나 사토루에게 문제가 터졌지요. 따돌림을 당한 건 아니었습니다. 뜬금없이 미래를 예지하는 듯한 말을 늘어놓기 시작한 것이었지요. 게다가 이 예지는 묘하게 들어맞았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과거의 일까지 맞춘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다 미래까지 보는 동생이 불안하기만 한 하루카. 어느 날 하루카는 미래를 보는 소녀 다마나 아가씨 전승이 마을에 전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고속도로 유치 운동을 둘러싸고 암투를 벌이는 마을 사람들, 어째 19금스럽고 흉흉한 다마나 아가씨 전승, 미래 예지를 하는 동생, 여전히 긴장을 풀 수 없는 학교 생활, 서먹서먹한 어머니, 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아버지까지 하루카의 삶은 무겁기 그지없습니다.

 

 리커시블은 재귀적인, 자기자신에게 돌아오는, 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전혀 몰랐네요. 어휴, 영어 녀석. 어렵기도 하지. 단어를 외워도 외워도 모르는 게 나와. 하하하하. 젠장. 아냐, 나는 재귀대명사가 뭔지 알아. 틀림없이 리플렉시브 프로너운이었을 건리커시블? 리플렉시브? , 어라? , 몰라. 그냥 모르고 말래.

 리커시블은 요네자와 호노부의 다른 청춘소설들처럼 암울하고 도통 희망이 없어서 매력적입니다. 청소년인 주인공이 불행의 와중에 각종 사건을 겪은 뒤 성장하여 행복해진다는 청춘소설은 읽고 있으면 토할 것 같아서 굉장히 싫어합니다. 돈만 없을 뿐 무던한 학창시절을 보낸 저조차 이렇게 느끼고 있으니 실제로 암담한 청춘을 보낸 분들께 희망이 넘치는 청춘소설은 정말 짜증나는 물건이 아닐까 생각하는데그저 제가 멋진 청춘을 보내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소설에 시기질투를 해대는 무시무시하게 속이 좁을 놈일 뿐일 수도 있습니다만. 아니, 그쪽이 정답이지만요. 하하하.

 하루카는 박복한 요네자와 호노부의 청춘소설 속 주인공들 중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만큼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새엄마와 사는 삶은 안 그래도 버거울 것인데 아버지가 도망간 상태에서 새엄마와 사는 삶은 대체 얼마나 부담스러울까요. 어우, 현실적이라 더욱 상상이 되는 부담감이네요. 빙과의 호타로는 중2병에 여자친구를 잘못 만나 고생하는 것이고 소시민의 코바토는 추리실력을 뽐내다가 망한 경우고 안녕 요정의 모리야는 본인이 가진 문제는 거의 없고 보틀넥의 료는 성격이 답이 없는 경우고어라? 너희들 알고보니 그다지 박복하지 않잖아? 하루카한테 비빌 수 있는 녀석들은 거의 없네요.

 소설 내에서 하루카가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의 타지에서의 중학교 생활입니다. 공부를 그리 싫어하지 않음에도 무척 싫어하는 척하고 사회 선생님을 그리 싫어하지 않음에도 질색하는 척을 하는 등 일단 영합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데 어른들이라면 이런 하루카에게 좀 더 자신의 개성을 살리라는 둥 자기 의견을 내세우라는 둥의 잔소리를 할 법도 합니다만 그건 정말 개소리에 불과하지요. 정글과도 같은 학교 내에서 고고한 한 마리 늑대를 자처했다간 물려 죽기 십상입니다. 정글도 아니지요. 학교란 억압된 짐승들이 서로를 물어뜯을 기회만 노리는 더러운 우리에 불과하다구요. 그런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저조차 하루카의 고생을 보고 있으면 안쓰럽더군요. 이건 제가 남자라서 그런 것이겠지요. 사내 놈들의 단순함은 집단생활이라고 예외가 아니거든요. 섬세한 조율따위 없어도 대충 굴러가는 게 남학교입니다만 하루카가 보여주는 여학교에서의 생존전략은 참으로 아슬아슬하더이다. 말 한 마디와 행동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를 읽어내고어우, 공부보다 훨씬 어려울 것 같아. 물론 여학교라고 해도 생각없이 굴러가는 집단이 있기야 하겠지만 중학생이라는 감수성 터지는 시기가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와중이니 일말의 소외감이라 하더라고 자괴감으로 다이렉트 연결이 되지 않겠습니까. 심지어 하루카는 아버지의 범죄로 한 번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고 홈그라운드마저 떠난 상황이니까요. 하루카의 눈으로 본 중학생 생활은 너무 무서워서 제가 다 진이 빠질 정도였습니다.

 사토루의 예언과 다마나 아가씨라는 오컬트적인 부분은 은근하게 다뤄져서 더 재미있더군요. 동생이 갑자기 미래를 예언해대기 시작하면 개인적으로는 일단 로또 번호부터 묻고 볼 것 같은데 그런 구질구질함은 없었습니다. 다마나 아가씨 전승이 가진 성적인 내용도 중학생 화자에 맞게 은근히 드러나는데 그래서 더 놀랍더군요. 예언자인 다마나 아가씨는 마을의 위기때마다 나타나 마을을 구하고 목숨을 버리는데 실상은 권력자에게 몸을 바치는 것의 반복이었지요. 유력자에게 소녀의 성을 팔아서 살아난 마을이라는 추잡함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오컬트적인 요소가 고속도로 유치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맞물리는 과정은 대단합니다. 고속도로라는 헛된 희망이 광신을 부르고 광신이 미즈노 보고서라는 현대적인 성배를 낳아 음모와 암투가 벌어진다는 내용이 감탄을 자아냅니다. 폐쇄적이고 몰락하는 시골 마을의 도덕적 해이와 집단 광기는 오싹할 정도인데 마침 우리나라의 시골에서 추한 성범죄가 벌어진 마당이라 더욱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컬트와 시골 마을의 감춰진 더러움 그리고 고속도로 유치라는 이름의 광신을 섞여 마지막까지 은근한 두려움을 이어간 작가의 솜씨가 대단합니다.

 허나 이 소설에서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어른들에 의한 아이의 희생이 전면에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하루카, 린카, 사토루를 통해 보여지는 강요된 희생의 수준은 어른들의 시각으로 볼 때 이 정도는 괜찮을 거야, 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매우 악질입니다. 새엄마가 있으니까 나는 도망쳐도 되겠지, 라고 여긴 하루카의 아버지를 시작으로 대의나 현실이라는 변명 속에서 나는 나름대로 노력했으니까, 라는 단서를 달아 무관계한 사람들, 특히 아이들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어른들의 태도가 상당히 사실적이고 적나라하여 무서울 정도입니다.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지만 사용도 할 수 있다는 시각은 과연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어른들에 한정된 것일지 아니면 어른의 인식 어딘가에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건인지 이야기는 묻고 있습니다.

 리커시블은 어찌보면 한 명의 여중생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과정을 담고 있는 소설입니다. 세상은 처음에는 학교라는 닫힌 공간이었지만 어느새 어른들의 세상이라는 곳으로 내던져집니다. 학교는 세상의 전부일 것 같지만 어른의 사정이라는 한 마디에 쉽게 무너지는 곳입니다. 그리고 어른의 사정은 아이들의 희생을 의외로 간단하게 요구합니다. 사회의 더러움은 가정에 간단히 영향을 끼치고 개인의 더러움은 가족에 간단히 영향을 미칩니다. 온실은 허상이고 예외는 없습니다. 작가는 또 다시 암울하기 짝이 없는 청춘의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하루카는 성장을 했다는 점에서 리커시블은 의외로 요네자와 호노부 표 청춘소설 중 가장 희망찬 작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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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아침 2016/06/09 23:11 # 답글

    솔직히 보면서 아 답이없어 이 도망의 행렬에 희망따윈 보이지 않아. 게다가 작가가 요네자와니 주인공도 좌절엔딩밖에 보이지 않아 하며 읽고있었는데 의외로 맞서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당혹스러웠달까요. 작가가 뭔가 생각이 바뀐건가, 약먹었나(?) 하는 생각만 들더군요. 이런 희망을 보여주는 선량한 인간이 아니었던것 같은데..
  • 정윤성 2016/06/10 07:59 #

    보틀넥 이후로 청소년기의 전능감에 대한 변화를 그리는 것은 일단 그만두겠다는 인터뷰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그래서 좀 희망찬(?) 마무리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뭐 하루카의 앞날에 쌓인 고난은 여전히 산처럼 높지만요.
  • watermoon 2016/06/10 00:46 # 답글

    보틀넥이 너무 칙칙해서 이 책은 볼까잘까했는데 안조야겠군요.
    저는 호노부는 청춘물말고 인씨이트 밀같은 정통 트릭물 좀 내줬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저는 이상하게 요네지외 후노부랑 우타노 쇼고가 헷갈려요.
    그러니까 도서관에서 우타노 쇼고 책을 고르면서도 내용은 요네자와 호노부를 기대하다가 읽으면서
    뭔가 이상하네 이러고 있어요
  • 정윤성 2016/06/10 08:03 #

    왕과 서커스는 사회인이 된 다치아라이 마치가 주인공이고 네팔의 궁전 안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라고 하니 기대해볼 만 합니다. 아주 정통적인 미스터리는 아닐 것 같지만 적어도 등장인물 대부분은 성인일 건 분명해요!
    저도 생판 관련이 없는데 이상하게 헷갈리는 사람들이 좀 있어요. 영화를 볼 때도 어라, 이 배우가 여기 왜 나오고 있지? 같은 마음이 들 때가 있지요. 참 신기해요.
  • LionHeart 2016/09/18 19:11 # 답글

    리커시블의 엔딩을 '희망찬'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요네자와 호노부의 청춘소설은 빛이 없는 것일까요...'보틀넥'과 '안녕 요정'에서 어둠을 보았습니다만, '빙과'로 입문한 저에게는 도통 익숙하지가 않습니다. 앞으로는 요네자와 호노부라는 이름을 보면 각오를 다지고 읽어야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 읽고 어? 이렇게 끝나? 2권이 있나? 싶은 마무리였습니다. '시귀'나 '흑사의 섬', '어나더'와 같은 지방색 짙은 기이함으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발생한 미스터리라고 여기고 읽었기에 어른들에게 희생당하는 어린이들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인 하루카는 똑똑한 머리와 행동력을 가지고 있기에 사건 해결을 맡은 영웅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학급에서의 고립을 두려워하고, 인간관계를 어려워하며,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버림받아 울부짖는 어린 소녀였는데 말이죠.

    저라면 세상이 무너진 것과 같았을 하루카의 그날 밤이 '보틀넥'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부들부들)

    개인적으로는 해피엔딩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비극적인 스토리는 영 힘에 부치는군요. ;ㅁ;
    그래도 말씀하신 것처럼 극복해낸 듯한 마무리를 가지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정윤성 2016/09/19 21:56 #

    안녕 요정이나 보틀넥보다는 아무래도 희망이 느껴지는 엔딩이니까요. 보틀넥은 진짜 답이 없지요. 요네자와 호노부는 청춘이기에 겪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등장인물에게 직접 들이민다는 점에서 여타의 작가들과 좀 다르지요. "네가 어떤 인물이고 어떤 노력을 하건 안 될 게 안 된 것"이라고 말해버리니... 안 될 게 안 된 거니까 왜 안 되냐고 말할 수도 없고요. 그래도 이제 청춘소설을 잘 안 쓰다보니(...) 이런 식의 어둠을 보는 경험도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지방색이 짙은 기담이 메인일 것 같았는데 어느새 슬쩍 자리를 비키고 하루카의 성장이 이야기를 이끌었지요. 소녀들 사이의 관계 성립과 유지에 드는 노력이 제 눈엔 기이할 정도였습니다. 무섭기도 하고요. 이와이 슌지의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을 보면서도 느꼈던 건데 소녀라는 존재 안에는 어떤 빛과 어둠이 섞여 있는 건지 참 미스터리합니다. 어린 소녀 하루카가 그 척박한 상황에서도 모든 본질을 꿰뚫고 동생을 보살피는 장면은 멋지지요. 하루카라면 자신이 빠진 구덩이 속에서도 빠져나올지 모른다는 기대가 아마 리커시블을 작가의 청춘소설 중에서 눈에 띄게 희망찬 작품으로 느끼도록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희망이랄 게 별로 없긴 하지만...
    요네자와 호노부의 비극에는 마음이 끌려요. 여운도 짙게 남고요. 그래도 역시 해피엔딩이 좋지요! 최근 어쩌다보니 노팅힐을 다시 봤는데 아, 엔딩이 어찌나 흐뭇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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