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하는 돌 -미국

 ‘살인하는 돌은 작가 루이즈 페니의 대표작인 아르망 가마슈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입니다. 이미 국내에 시리즈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인 냉혹한 이야기네 시체를 묻어라가 출간이 된 상태인지라 시리즈를 꾸준히 읽은 분이시라면 시간대에 약간의 혼란을 느낄 법 합니다. 국내에 출간된 아르망 가마슈 시리즈의 순서는 스틸 라이프 치명적인 은총 가장 잔인한 달 살인하는 돌 냉혹한 이야기 네 시체를 묻어라 의 순서이니 염두에 두고 읽으시면 좋을 듯 합니다.

 

 아르망 가마슈 경감과 아내 렌 마리는 서른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고급 오베르주 마누아르 벨샤스로 향합니다. 마누아르 벨샤스에는 이미 피니 일가가 손님으로 자리 잡고 있어 가마슈 부부는 그들과 안면을 트게 됩니다. 소외 받는 가장 버트 피니와 가족들의 우두머리인 어머니 아이린 피니, 활기차지만 고약한 면이 있는 장남 토머스와 매사에 불평불만이 가득한 아내 샌드라, 남편이 보험사기를 저질러 수감된 뒤 홀로 남은 아름답고 다정한 둘째 줄리아, 기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막내 마리아나와 마리아나의 어딘가 이상한 아이 빈. 피니 일가는 고상한 척하면서도 서로를 은근히 멸시하고 비난하며 막장 가족의 모습을 뽐내 가마슈의 시선을 잡아 끕니다. 밤중에 산책을 하던 가마슈는 희고 네모난 대리석 큐브를 발견하는데 이는 아이린 피니의 전 남편이자 아이들의 진짜 아버지인 고 찰스 모로를 기념하는 조각상의 받침대였습니다. 가마슈는 자기네 집 정원도 아니고 왜 산장 여관의 구석탱이에 가장의 조각상을 세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애초에 이해가 안 되는 가족들이었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합니다. 피니 일가의 일원 중에서도 가장 한심한 놈 취급을 받는 스폿이 뒤늦게 합류합니다. 스폿의 정체는 스리파인즈에 사는 가마슈의 친구인 피터 모로였지요. 피터와 클라라까지 모여 완전체가 된 피니 가족은 서로를 더욱 집요하게 물어뜯고 이 모습을 본 클라라는 학을 뗍니다. 클라라는 얼른 스리파인즈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지만 하늘은 정반대의 결과를 선사합니다. 피니 가족 중 한 사람이 찰스 모로의 조각상에 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지요. 수사가 끝날 때까지 클라라는 집에 못 갑니다.

 

 여전히 아름다운 표지가 인상적입니다. 구판 스틸 라이프는 그냥 평범한 표지였습니다만 이후의 시리즈는 전부 미술작품 같은 표지를 달고 나왔지요. 캐나다 판과 비교해도 우리나라 표지가 훨씬 아름다워요. 어쩐지 뿌듯

 아르망 가마슈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하면 작품마다 깊이 새겨진 인간에 대한 탐구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정적인 경감 가마슈와 스리파인즈의 사연 있는 구성원들은 단조로운 겉모습과 질풍노도의 내면을 함께 갖추고 있어 깊이가 있지요. 어느 누구라도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 정도의 깊이라서 스리파인즈는 언제나 사건으로 가득합니다. 매번 사람이 죽어나가는 아름다운 마을이번에는 무대가 스리파인즈의 인근에 있는 산장 여관으로 바뀌긴 했습니다만 여전히 비틀린 채 오랜 시간을 살아온 인물들로 가득하여 좁아진 배경이 더욱 긴장감을 고조하지요.

 가마슈 시리즈에서 살인은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입니다. 살인의 계기는 먼 과거에 존재하고 살의는 오래도록 살인범의 내면에 자리 잡아 그 사람을 구성하는 하나의 기둥이 됩니다. 루이즈 페니의 소설에서 살인은 그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 있기 위한 필수적인 행위이고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던 황폐함을 바라보게 하는 일종의 자아성찰의 과정이 됩니다. 때문에 가마슈 경감은 살인범을 냉혈한이 아닌 인간적인 사람으로 바라보고 그토록 인간적인 사람이 생의 갈림길에서 번번이 선택했을 황무지와 황무지의 끝에 존재하는 살인이라는 경계선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여 범인을 찾아냅니다. 이것이 가마슈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지요. 자기 부하한테 뒤통수 맞는 걸 보고 있으면 살인범만 잘 이해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조금 들긴 합니다만

 살인의 수사가 사람에 대한 이해의 여정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에 가마슈 시리즈는 아주 우아하고 서정적입니다. 겉으로만 보면 크리스티 여사가 보여준 미스 마플 식의 인간 탐구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만 미스 마플이 압도적인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넘치는 주관성 속에서 추리의 객관성을 잡아내는 절묘한 줄타기를 보였다면 가마슈는 상대를 향해 자신을 쏟아 부어 범인을 찾는 과몰입형 추리를 한다는 점에서 보다 감정적인 격렬함이 느껴지더군요. 가마슈가 좀 더 늙으면 마플 양처럼 되는 걸까잘 생긴 경감이 틈만 나면 프랑스어를 줄줄 늘어놓는 점도 물론 작품의 우아함을 더 하는 부분입니다. 퀘벡이라는 배경이 그런 점에서 아주 절묘해요. 프랑스어를 쉴 새 없이 떠들어도 아무 문제가 없으니 말이지요. 봉주르, 데졸레, 실 부 프레~ 이번 작품의 배경인 오베르주 마누아르 벨샤스는 프랑스어를 써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까지 있어서 읽다보면 파리지앵이 되는 기분이에요. 압솔뤼망!

 시리즈의 특징에 대해서 이야기를 조금 했는데 이번 작품 살인하는 돌에서는 이러한 특징들이 좀 과도하게 터져 나왔습니다. 아르망 가마슈 시리즈라는 관점으로 보면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마음이 들지만 이번 작품만 따로 떼어 바라보면 완성도가 상당히 애매합니다. 여전히 아주 우아하고 재미있고 캐릭터들도 매력이 넘치지만 단일한 작품으로의 살인하는 돌은 너무 많은 것을 담아내려고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이도저도 아닌 부분이 너무 많다는 결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피니 일가는 각자 너무 뒤틀려 있어서 다시 나올 인물들이 아님에도 완결성을 갖추지 못합니다. 좀 이상하고 말면 그냥 쑥 퇴장시켜도 되겠지만 다들 마냥 이상하다보니 쑥 퇴장시키는 것이 영 찝찝합니다. 이러한 찝찝함을 작가도 느낀 것인지 각자에게 적당한 변명거리를 몇 가지 툭툭 던져주긴 합니다만 그로인해 무언가 해결되었다기보다는 독자 너희들이 알아서 마무리 하세요, 정도의 수준이라 개운하지 않습니다. 살인의 동기가 이야기에서 너무 밀려난 부분도 아쉽습니다. 피니 일가라는 존재들이 이야기의 한 가운데를 지배한 탓에 살인조차 이야기를 통제력을 지니지 못했습니다. 살인 사건이 변방으로 밀려남에 따라 사건의 진상 또한 무게감을 잃었지요. 살해 방식 또한 단서가 충분해서 능히 짐작 가능하다보니 사건의 존재감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인물들에게 사건이 밀려버렸는데 이 인물들을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하다보니 작품 전체가 어정쩡하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피니 일가와 엮여 가마슈의 가족사도 등장하다보니 놀라움보다는 과도함이 우선 느껴졌습니다. 가마슈의 과거는 피니 일가의 뒤틀림과 대비가 되도록 장치되었으나 피니 쪽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데다 제대로 마무리가 지어지지도 않아서 밸런스가 잘 맞지 않습니다. 가마슈의 가족사는 피니와 온전한 대비가 되지 못하고 그저 경감의 일화 정도로 그치고 말았지요. 겹겹이 층위를 이뤄야 할 이야기의 구조가 피니와 기타 등등이라는 부속물로 전락하다보니 이야기의 구조적인 부분에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작품을 읽다보면 프랑스어의 매력이 느껴집니다. 당장 소설의 배경이 되는 오베르주부터 우리나라말로 치환할 수 없는 단어지요. 우리나라에서 일정한 돈을 받고 손님들을 머물게 하는 장소를 가리키는 말은 여관이나 여인숙 정도에 불과한데 소설 내에서 오베르주니 호텔이니 인(inn)이니 B&B니 하는 단어가 이것저것 나오는 게 무척 흥미롭습니다. 숙박시설이나 음식점을 가리키는 단어가 대단히 세분화되었다는 점에서 문화의 차이가 느껴져요. 타인의 꾸밈새나 선물의 센스 등을 이야기 할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함이라는 의미를 지닌 주 느 세 쿠아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 점도 무척 특이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있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지만 말로 꺼낼 수는 없는 특별함을 가리키는 표현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역시 프랑스, 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섬세하다, 센스가 좋다, 정도가 아니라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데 참 좋아! 라는 게 말로 존재한다는 아이러니가 아주 근사해요. 이런 점을 잘 느낄 수 있게 작품 내의 프랑스어를 음차로 표기한 번역의 센스도 좋네요. 배경이 퀘벡이다보니 영어와 프랑스어가 혼용되어 필요에 의해 선택한 방식이겠지만 아무튼 결과물이 아주 마음에 들어요. 프랑스어를 좀 배워볼까그런데 공부하다보면 싫어질 것 같아일본어부터 어떻게 좀 체계적으로 배워야 하는데.

 

 소설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이 무한하다는 말은 아주 쉽게 들을 수 있고 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만 왜 이리도 무한해야 하는 걸까, 라는 의문은 가지기 쉽지 않지요. 어쩌면 자식들이 아무리 크고 많은 사랑조차도 부족하게 여기는 존재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자식들이 하염없이 원하고 또 원하다보니 부모의 사랑이 무한정 커질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요? 살인하는 돌은 아버지의 조각상에 깔려 죽은 자식이라는 놀라운 사건을 통해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에 대한 고찰을 합니다.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 아주 깔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흥미롭고 또한 기존의 아르망 가마슈 시리즈의 미덕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어서 시리즈의 팬이라면 분명 읽을 가치가 있는 소설입니다. 팬이 아니라면 입문작으로 추천하기에는 좀 망설여지네요.



덧글

  • nenga 2016/08/07 22:46 # 답글

    그 예술가 부부는 나오지 않나요?
  • 정윤성 2016/08/08 04:42 #

    네, 피터랑 클라라가 나옵니다. 피니 일가의 차남 스폿이 피터더군요. 피터는 시리즈 내내 이것저것 찌질한 모습을 자주 드러냈는데 이번엔 아주 대폭발해서 찌질함의 근원이 가족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 watermoon 2016/08/09 01:19 # 답글

    이번 휴가때 읽었는데 전작에 비해 아쉽기는 했어요
    그래도 시리즈물은 등장인물의 과거를 알으가는 재미가 있어서
    좋아요 이번에는 가나슈경감의 가족사가 밝혀져서 다음 작품레는 쓰리 파인즈의 가브리의 과거가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ㅎ ㅎ
    아가사크리스티 작품 읽다보면 미스 마플이랑 포와로의 과거가 밝혀지잖아요 그게 참 재밌더라구요
  • 정윤성 2016/08/09 12:59 #

    이번 작품도 나쁘진 않은데 전작들이 워낙 좋았지요. 가마슈의 과거는 뭐랄까, 참 가마슈스러웠어요. 결혼을 해보니 부모님 두 분이 함께 돌아가신 게 얼마나 다행인지 알 것 같다니... 어으, 경감님도 참.
    냉혹한 이야기에선 올리비에와 가브리의 비중이 크지요. 스리파인즈는 정말 까도 까도 숨겨진 과거가 나오는 양파같은 마을이에요. 과거가 있는 캐릭터가 확실히 매력적이긴 한데 스리파인즈처럼 과거로 가득찬 마을이 나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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