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서커스 -일본

 최근 웹툰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지요. 성우 김자연씨의 메갈리아 티셔츠에서 촉발한 계기가 일부 웹툰 작가들과 독자들 간의 대립을 이끌어 사건의 중심에 있던 레진코믹스라는 웹툰 업체가 휘말린 폭발이 한 번 일어났고 더 나아가 지금은 디시인사이드 웹툰 갤러리의 주도 하에 동인업계의 불법적인 상행위 근절을 위한 무차별 신고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저도 한 사람의 오덕후라서 이번 사건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데 참 극적이더군요. 이번 사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JTBC의 뉴스룸이 보인 보도의 태도였습니다.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기존에 익숙한 강자와 약자, 선악의 구도로 단순하고 바르지 않게 축약하여 멋대로 방영한 뒤 이후 정정보도를 하는 대신 다른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의 측면으로 이해해달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변명을 늘어놓았지요. 언론이 사실을 취사선택하여 자신만이 진실인양 보도하는 점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그 과정에서 피해자 역시 언론이 자의로 취사선택한다는 당연한 사실에 대해서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언론이 입맛에 맞는 사실을 선택한 순간 피해자와 가해자도 따라서 선택된다는 것은 정해진 수순인데 순진했던 것인지 멍청했던 것인지 거기까지는 인식하지 못했던 거지요. 순진하진 않고 그냥 멍청한 것일 뿐일지도. 그런 생각을 가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요네자와 호노부의 왕과 서커스를 읽으니 생각이 참 많아지더군요. , 왕과 서커스는 빙과나 인사이트 밀 등으로 국내에도 유명한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가 쓴 기자와 언론에 대한 소설입니다.

 여튼 제 안에서 JTBC 뉴스룸의 신뢰는 바닥을 쳤습니다. 해당 보도가 나가기 며칠 전 뉴스룸의 앵커 손석희씨는 앵커브리핑이라는 코너에서 루쉰이 그렇게 말했어.”라는 제목으로 신뢰받는 권위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훗날, ‘JTBC 뉴스가 그렇게 말했으니까’”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는데 우습게도 제게는 정반대의 효과를 낳게 되었군요. 이제는 ‘JTBC 뉴스가 그렇게 말했다면 의심부터 드니까요. 아이러니합니다.

 

 안녕, 요정에서 고교생이던 다치아라이 마치는 2001년 스물여덟 살이 되어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와 있습니다. 6년 간 일했던 언론사를 그만 두고 프리랜서 기자의 길에 들어선 마치에게 여행 기사를 써보지 않겠냐는 의뢰가 들어왔기 때문이지요. 도쿄 로지라는 작은 숙소에 머물던 마치는 그곳에서 로지의 주인 차메리와 일본인 승려 야쓰다, 젊은 미국인 여행자 로버트 폭스웰, 인도 상인 수쿠마르 등과 안면을 틉니다. 어리지만 씩씩한 소년 사가르와도 친해지지요. 자신이 왜 기자의 길을 걷고 있는 건지, 기자로서 무엇을 쓸 것인지 고민을 하던 마치는 네팔에 도착하고서도 계속 망설입니다. 그러던 와중 네팔 왕실에서 참극이 벌어집니다. 황태자 디펜드라가 국왕 비렌드라와 일가족 대부분을 사살한 뒤 자살 기도를 한 것이지요. 비렌드라는 민주화를 받아들인 인기 많은 국왕이었고 이에 네팔 국민들의 슬픔과 분노는 대단히 컸습니다. 마치는 이 사태를 취재하기로 마음먹고 차메리와 친분이 있던 군인에게 인터뷰를 요청합니다. 인터뷰 장소에 나온 군인 라제스와르 준위는 왕가와 관련한 일체의 문답을 거절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마치에게 왜 취재를 하는지 되묻습니다. 왜 진실을 추구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추구한 진실을 왜 알리고자 하는지 아직 답을 찾지 못한 마치는 준위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합니다. 준위와 헤어지고 난 뒤 며칠 동안 국왕의 장례식 등을 취재하던 마치는 경찰의 강경 진압에 휘말려 외딴 공터로 달아나다가 그곳에 놓인 시체를 발견합니다. 시체의 등에는 칼로 새긴 INFORMER라는 글자가 있었지요. 시체는 라제스와르 준위였습니다. 그리고 INFORMER는 밀고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요. 기자와 만난 뒤 밀고자라는 글자가 새겨진 채 살해당한 군인, 마치는 자신에게도 위험이 찾아왔음을 느낍니다.

 

 안녕, 요정에 등장했던 겉보기엔 냉철하지만 속내는 다정한 여고생 다치아라이 마치가 28세 프리랜서 기자로 돌아왔습니다. 2001년에 28살이니까 지금 마치의 나이는 43! 누나! 01년이 배경이다보니 기자들은 디지털 카메라를 카메라 취급하지 않는다는 둥 건전지가 들어가는 디지털 카메라를 살지 배터리가 장착된 충전식 카메라를 살지 고민하는 둥 묘한 시대감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그래요, 그즈음엔 저도 AA건전지 두 개씩 먹는 디카가 있었지요. 디카도 좀 맛이 가고 충전지도 좀 맛이 가서 한 장 찍고 꺼지고 한 장 찍고 꺼지는 웃긴 녀석이었습니다. 그 상태로 수십 장씩 찍을 수 있어서 한심한 건지 대단한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애였어요

 안녕, 요정에서의 마치는 매사에 확실한 태도를 견지하여 무척 어른스러웠는데 정작 어른이 된 마치는 자신의 직업이나 의지에 확신이 없어 고민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미 28살은 진작 지나간 몸입니다만 매일 고민을 하고 있어서 공감이 가요. 고민은 사람을 성장하게 하지요. 저는 예외인가 봐요. 고민만 하고 성장을 안 하네. 아무튼 이성적인 고교생 마치도 고뇌하는 기자 마치도 둘 다 무척 매력적이었습니다.

 소설은 시작부터 마치의 답답한 감성이 잘 전해집니다. 자살한 동료 기자, 동료의 자살이 자신 때문이라는 뜬소문이 돌고 무시하려해도 주위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하자 업무에 지장이 옵니다. 일을 관두면 소문을 인정하는 꼴이지만 그렇다고 계속 일을 할 수도 없는 상황, 결국 마치는 직장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때마침 얻게 된 월간지의 여행 기사 작성 업무. 일간지에서 일을 하다 보니 월간지의 템포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성미 급하게 일단 네팔로 떠나고 봅니다. 조금 시간을 죽이면서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찾으려던 마치. 허나 쓰고 싶은 게 뭔지, 써야 하는 것은 또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암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고 해도 6년 간 일했던 직장을 쉽게 관둔 것은 일에 대한 애정이 없었기 때문인 것인지, 관두고선 결국 비슷한 일을 프리랜서로 하게 된 것은 애정이 있기 때문인지 그것조차도 지금의 마치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네팔이라는 나라에서 답을 찾을 수 있길 바랄 뿐. 발랄한 미국인 청년과 대화를 나누고 순진한 건지 교활한 건지 속을 알 수 없는 현지 꼬마와 묘하게 인연을 맺고 먼 나라에서 만난 일본인 승려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는 등 주변의 변화에 맞춰 움직여보지만 마치 자신의 변화를 이끌어내기엔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 순간 터진 네팔 왕실의 참극. 기자라면 마땅히 취재하고 싶은 엄청난 사건이 코앞에서 터졌습니다. 허나 프리랜서 외국인 기자 한 사람의 힘으로는 궁전 안으로 들어가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기껏 하는 일이라곤 현지인들처럼 BBC의 보도를 듣는 것뿐. 마치는 슬픔으로 가득한 장례 행렬의 사진을 찍으며 네팔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찍고 싶은 것을 찍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자니까 눈앞의 사태를 놓칠 수는 없는 노릇. 자신만이 쓸 수 있는 기사를 위해 마치는 군인과 접촉합니다. 고결한 군인 라제스와르는 일체의 취재를 거부합니다. 외국인이 취재하는 이번 사태는 결국 국가의 슬픔을 외국인들에게 싸구려 비극으로 드러내는 서커스 행위에 불과하다는 군인의 단호한 태도에 마치는 그렇지 않다며 전력으로 부정하지만 정말로 아닌 것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습니다. 민주화를 수용한 인기 있던 국왕이 일가족들과 함께 아들에게 살해당한 사건, 외국인의 눈에는 과연 어떻게 비칠까요? 네팔이라는 국가의 야만성? 황태자 개인의 광기? 혹은 왕실 내 음모와 권력의 암투? 기자가 쓴 기사가 그 방향을 결정합니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쓴다 하더라도 모든 정보를 다 담을 수는 없습니다. 정보는 기자에 의해 취사선택되고 기자가 고른 사실만이 남아 사태의 얼굴을 꾸밉니다. 자신은 네팔 왕실의 참극을 어떤 얼굴로 그리려 하는가, 마치 스스로도 아직 모릅니다. 그 직후 또 다시 커다란 충격이 마치를 덮칩니다. 라제스와르가 살해당한 것이지요. 죽은 군인의 등에는 밀고자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섭정에 의한 계획된 살인이었다는 음모가 도시 전체를 떠도는 상황, 정보를 제한하고 그저 사태를 덮어버리기에 급급한 것으로 보이는 정부의 태도, 그 와중에 일어난 밀고자의 입을 닫으려는 것으로 보이는 살인, 그리고 살해된 군인과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기자, 마치. 제가 기자는 아닙니다만 이러한 상황에서 유추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몇 가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가장 그럴싸한 것은 역시 섭정과 군부에 의한 쿠데타겠지요. 군인이 살해당한 것은 음모를 알기 때문이고 그 말은 즉 음모가 있으며 이에 군이 관련되어 있다는 말이 됩니다. 왕실이 전멸하다시피 했는데 살아남은 것은 섭정 갸넨드라와 그의 아들 뿐, 살인을 저지른 디펜드라도 유명을 달리하기 직전입니다. 정통 계승자 디펜드라가 살아나더라도 국왕이 될 수는 없는 상황, 결국 사태의 유일한 수혜자는 갸넨드라이고 음모가 있다면 갸넨드라가 꾸민 것이라 보는 게 가장 타당한데 라제스와르의 시체가 음모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잘만 쓴다면 퓰리처상도 받을 수 있는 건수지요. 마치의 마음도 움직입니다. 커리어를 평생 보장해줄 기사를 오직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상황. 허나 무언가가 마치의 발목을 잡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 왜 자신은 아직 기자임을 자청하고 있는 건가. 답은 알고 싶다는 욕구였습니다. 알고 싶다, 알아야겠다, 마치는 아직 자신이 라제스와르 살인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내가 요약한 줄거리지만 마치 너무 멋있다근데 하다 보니 줄거리 요약만 두 번 적은 게 되었네요. 아까우니까 지우지 말아야지. 하하하하. 작가는 마치를 통해 기자가 가장 흥분할 상황을 만든 뒤 기자의 의무를 상기시킵니다. 기자의 가장 기본은 우선 아는 것이겠지요. 충분히 안 뒤에 알려야 하는 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알고 싶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구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알리는 것은? 자기가 아는 것을 남에게 알리고 싶다는 것도 좀 근원적인 욕구처럼 보이긴 합니다. 허나 내가 아는 것을 고스란히 알리느냐, 혹은 내게 도움이 되도록 알리느냐, 라는 분기점에서 어느 쪽이 더욱 욕구에 충족하는 방향일까요? 당연히 내가 아는 것을 남에게 알림으로써 내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움직이는 게 대개의 인간이 선택할 방향 아닐까요?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는 걸 말했을 뿐인데요, . 이러한 관점에서 과연 인간은 이데올로기의 전파가 아닌 온전한 정보의 전달이 가능한지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데올로기라는 건 막 특이한 게 아니지요. 공산주의, 파시즘, 이런 것들만 있는 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사상이나 관념이니 개인에 의해 얼마든지 생성과 전파가 가능합니다. 예를 들자면 뽀로로의 친구들 중 수컷이 암컷보다 많으니 남녀평등 사상에 위배된다는 주장 같은 것도 뽀로로를 이데올로기로 해석한 뒤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지요.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생성과 전파에서 과연 정보의 전달이 독립적일 수 있는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란 이데올로기의 산실이며 개인은 이데올로기의 수용자이자 전달자이며 창조자인 동시에 교정자이므로 정보가 개인의 속으로 들어온 순간 이데올로기는 정보 속에 삽입되며 전달을 통해 전파가 되는 것은 불가역적인 일이니 과연 기자란 이러한 프로세스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자유로울 수 없다면 기자의 존재 이유란 이데올로기의 가장 효율적인 전달자 외에 무엇이 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의문에 소설의 등장인물인 야쓰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대답하지요.

 부처가 깨달음을 얻습니다. 놀라운 깨달음을 얻은 부처는 다 깨달았으니 이제 놀러가야지, 하며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러자 범천, 즉 힌두교의 창조신 브라흐마가 만류합니다. 님님, 님이 깨달은 것을 중생들에게 알리셔야죠! 부처는 대답합니다. 걍 나만 알려구요, 가르쳐줘봐야 알아듣지도 못할 건데요. 범천은 에잉, 그래도 몇 사람 정도는 알아 들을 거예요라고 설득하고 결국 부처는 범천의 말에 따라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나눕니다. 부처의 생각대로 가르침은 온전하게 전달되지 않았지요. 못 알아듣는 경우가 태반이고 자기 멋대로 뜯어고쳐 제 안위를 위해 이용하는 인간도 수두룩했습니다. 완성되어 있던 부처의 깨달음은 그럼 손상된 것일까요? 아니지요. 몇몇 위대한 승려들에 의해 가르침은 발전하기도 하고 더욱 이해하기 쉽게 보완되기도 했습니다. 완성됨이 과연 발전하고 보완될 수 있는 것일까요? 야쓰다는 말합니다. 당시 부처님의 가르침은 완성되었고 지금 발전하고 보완되기에 더욱 완성되는 것이라고. 이에 마치도 깨달음을 얻습니다. 진실이 있고 진실을 알리는 BBC도 있고 CNN도 있기에 사실의 보도가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BBC가 있고 CNN이 있다고 해서 자신이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라고 말이지요. 달마대사가 있었고 흥법대사가 있었으니 승려는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는 게 아닌 것처럼요. 이 부분은 뛰어난 블로거인 의지있는 크릴새우님의 블로그(http://maidsuki.egloos.com/4309550)에도 발췌가 된 내용이니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사실을 취사선택하는 집단이 존재하지만 개인 역시 이러한 집단들을 취사선택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집단들이 취사선택한 사실을 통합하여 자신만의 사실로 재조합할 수도 있다는 관점은 일반인이 언론을 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자 가장 능동적인 자세이기도 합니다. , 결국 조선일보도 보고 한겨레도 보라는 말이나 크게 다를 바는 없습니다만아이, 둘 다 좀 이상해서 읽기 싫은데.

 라제스와르의 죽음에서부터 왕과 서커스는 추리소설의 면모를 드러냅니다. 이전까지는 마치가 고민하는 내용이었다면 이후에는 마치가 추리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전환은 제법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 기자의 자질에 대한 고민 다 했으니까 이제 추리합시다! 라는 식의 화끈한 장르 전환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니시자와 야스히코도 아니고 요네자와 호노부가 그런 짓을 할 리는 없지요. 주제의식을 그대로 끌고 가면서 추리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솜씨가 아주 근사합니다. 또한 살인 자체도 주제를 부각시키는 요소가 된 점에서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퍼즐처럼 잘 짜인 사건이 퍼즐처럼 잘 짜인 소설의 구조 속에서 벌어진 셈이니 어지간한 작가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설계인 셈이지요.

 …하고 싶은 말이 아직 한참 많은데 이미 충분히 글이 난잡해진 것 같아 더 쓸 수가 없네요. 솜씨가 좀 더 있다면 차근차근 정리를 할 텐데 그럴 솜씨도 없고 그럴 차분함도 없고, 하하하.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은 늘 제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데 이번 왕과 서커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요즘 마음을 흔드는 소설을 별로 접하지 못했는데 아, 오랜만에 너무 좋았어요.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이제 작가의 소설 중 번역되지 않은 게 가을철 한정 쿠리킨톤 사건과 진실의 10미터 앞 두 권뿐이라는 암담한 사실지금 당장 냉동인간이 되어 50년쯤 뒤에 깨어나 그동안 나온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들을 쌓아놓고 읽고 싶다



덧글

  • 2016/08/19 01:4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8/19 19:0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6/08/19 01:5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8/19 19:1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6/08/19 20:4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아침 2016/08/19 07:05 # 답글

    소설에 대한 감상문에 넋두리만 잔뜩 써놨네요. 요즘 요네자와건으로 가장 기쁜 일이라면 소시민 시리즈를 다른 판본으로 재발간 중이라는 걸까요. 밤과자 사건을 원서로 읽다 때려친 인간으로서 기쁠 따름입니다. 다작 작가가 아니다보니 겨울 디저트는 더 기다려야겠지만 국내 한정 으로 여름에서 제발 좀 빨리 계절이 지나가길 바랬거든요. 더워 죽겠어요! (응?)
  • 정윤성 2016/08/19 19:15 #

    소시민 시리즈 도서관에 신청했는데 구판이 이미 있다고 취소당해서 너무 슬퍼요... 구판 표지 싫어ㅜㅜ 소시민 애들이 빨리 겨울을 맞이했으면 싶고 고전부 애들도 빨리 3학년 생활을 살아갔으면 좋겠는데 작가님아...
    매년 책이 꾸준히 나오고 있으니 에잇, 게으른 작가야! 라고 말을 할 수도 없네요. 이상해... 시리즈는 멈춰 있는데 작가는 성실해...
  • 아침 2016/08/19 20:51 #

    작가가 성실하게 여러 시리즈를 쓰고 있어서.. 한 시리즈만이라도 좀 완결내고 써주세요.. 하고 싶은데 따로 쓰는 것들도 거의 다 좋아해서...ㅠㅜ
  • watermoon 2016/09/12 22:45 # 답글

    저는 소시민 새로운 판형으로 신청해서 읽었어요 ㅋㅋㅋ
    예전 그 촌스러운 표지에비해 엄청 세련된 표지더라구요 ㅎㅎ
    왕과 서커스 읽고싶은데 이상하게 근처도서관에 없네요.
  • 정윤성 2016/09/13 16:53 #

    예전 표지는 정말 심각했지요ㅎㅎ 작가가 누구인지 몰랐다면 결코 읽지 않았을 표지입니다.
    새 판형으로 또 읽고 싶어서 간만에 남산도서관까지 갔는데 하필 내부 공사를 하고 있더라구요...
    운동하는 기분으로 걸어갔는데 너무 허무해서 올 때는 그냥 버스타고 왔어요ㅜㅜ
    왕과 서커스 재미있어요. 저희 동네 도서관에는 예약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옆동네에서 빌렸지요. 역시 인기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
  • LionHeart 2016/11/06 20:21 # 답글

    고민은 사람을 성장하게 만든다고 하지만, 고민을 포기하여 성장하지 못하는 사람이 저인가 봅니다 (...)
    //
    이 작품도 시리즈인 모양인데 자살한 동료기자의 이야기가 나중에 다루어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찌만 던지고 회수하지 않진 않겠지요?
    //
    추리는 물론이요 하고 싶은 말, 주제를 멋지게 섞어내서 마지막에 맞이하게 되는 3번의 반전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초반엔 '어떻게 이 이야기가 미스터리가 되는거지?'라는 생각이 들며 지루한 감이 있었는데 마지막에 모두 보상받은 느낌이었네요.

    어느새인가 저도 모르게 요네자와 호노부 책의 국내 출판본은 다 사서 모으고 있게 되었네요. 모든 작품을 재미있게 읽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이 작가의 작품은 일단 읽어야된다는 레벨이 된 것 같아요. ;ㅁ; 무서운 작가님!
  • 정윤성 2016/11/07 15:25 #

    이제 고민만 하시면 곧장 성장한다는 의미라고 볼 수도 있으니 좋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건가? 잘 모르겠지만 좋은 거라고 칩시다!

    진실의 10미터 앞이라는 단편집으로 시리즈가 이어진다고 하네요. 거기에 자살한 동료기자의 이야기가 나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존의 줄거리 요약을 보면 안 나오는 것 같긴 하지만요. 언젠가는 밝혀질 떡밥이겠지요. 요네자와 호노부가 떡밥 회수를 하지 않는 작가는 아니니... 후속편이 잘 안 나오는 작가이긴 하지만...

    말씀대로 이야기도 사건도 추리도 모두 주제와 멋지게 어우러졌습니다. 저도 이거 추리소설이 아닌 건가? 그냥 사회파 소설인가? 했는데 뒤로 가니까 어우... 좋은 추리소설이었어요. 얼른 진실의 10미터 앞도 읽고 싶습니다.

    저도 몇몇 작품은 그저 그렇네, 라고 생각한 게 있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국내 출판본은 다 읽었더라구요. 다 읽은 지금은 더 읽고 싶다는 금단증상까지 생길 지경입니다. 으으... 요네자와 호노부, 무서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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