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억하니 -일본

 시바타 요시키의 소설 나를 기억하니는 얼핏 미스틱 리버를 떠오르게 합니다.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이자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로도 유명한 미스틱 리버는 세 친구가 어린 시절 겪었던 아픈 과거가 수면 아래 침잠하다가 25년의 세월이 지나자 악몽으로 되살아난다는 내용이지요. 나를 기억하니도 주인공들이 15살 때 휘말렸던 동급생의 실종 사건이 오래도록 잊혔다가 20년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떠올라 그들의 발목을 붙잡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유형의 이야기는 찾아보면 의외로 꽤 수가 되지요. 개중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스티븐 킹의 소설 그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대단히 놀랍도록 나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그것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역시 소년소녀들이 그것을 하는 부분이겠으나 저는 그것보단 최종결전에서 질색을 했지요. 그토록 긴장감 넘치고 스릴 있게 끌어오던 이야기가 마지막에 서로 혀깨물기나 하면서 파탄이 날 줄이야덕분에 저는 스티븐 킹도 그리 좋아하지 않고 그것과 비슷한 유형의 이야기들도 선호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그것은 올해 드라마로도 제작된다고 하더군요. 잔인한 건 보기가 힘들어서 볼 마음은 들지 않지만요. 그나저나 그것을 따옴표도 넣지 않고 그냥 그대로 그것이라고 쓰고 있자니 고유명사인지 대명사인지 헷갈리기 시작하네요. 내용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제목마저 날 이렇게 괴롭히다니!

 

 미스미 게이코, 아키요시 미야, 미도하라 다카코, 히가시하기 고지, 사바시마 유타카, 나가토 유키 그리고 오노데라 후유하의 일곱 명은 중학교 수학여행에서 한 조를 이뤘습니다. 조장 게이코가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한 뒤 만원버스를 탔는데 어느 순간 후유하가 사라집니다. 단순 가출에서부터 조원들의 괴롭힘으로 인한 도주 혹은 자살이라는 설까지 나돌며 사라진 후유하를 제외한 여섯 명은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후유하는 결국 찾지 못했고 시간은 흘러 20년 뒤, 잘 나가는 가수이자 소설가였다가 코카인 복용으로 나락에 빠진 미야와 가정주부 다카코에게 메일이 한 통 날아옵니다. 내용은 나를 기억하니?”라는 짧은 문장 그리고 보낸 이의 이름은 후유하. 그저 장난으로 취급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아 연락이 닿지 않는 나가토 유키를 제외한 다섯 명이 다시 모이게 됩니다. 허나 다시 모인 이들은 15살의 천진했던 중학생이 아니라 각자 사연을 지닌 35살의 어른들이었지요. 각기 품에 안은 비밀들이 후유하라는 이름의 메일을 계기로 흘러나와 늪이 되어 퍼져갑니다. 메일을 보낸 이를 찾기 위해, 찾을 수 없다면 적어도 왜 이런 짓을 20년이나 지나서 벌이는지를 알기 위해 뛰어다니는 이들은 자신들이 발목부터 서서히 잠겨간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합니다.

 

 등장인물들이 어릴 때 겪었던 사건이 긴 세월이 흐른 뒤 다시 튀어나온다는 이야기는 다루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긴 세월을 버틸 정도의 생명력을 지닌 사건이라면 심각해야 하는데 어린이들이 심각한 사건의 중심에 서긴 쉽지 않지요. 사건의 주변에 있는 정도라면 어찌 가능하겠습니다만 그러면 어른이 된 등장인물들은 되살아난 사건에서도 주변에 있어야 할 겁니다. 이런 이야기는 대칭구조를 이루어야 아름다우니까요. 결국 어린애들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겨 장래까지도 좌우할 정도의 사건이 정말로 장래에도 튀어나오더라는 무겁디 무거운 이야기를 쓸 것인가 사건에 주변에 있어서 어린이임에도 어느 정도 관련성을 지녔던 인물들이 어른이 된 뒤 되살아난 사건의 주변에서 어정이게 만들 것인가의 양자택일인 셈이지요. 나를 기억하니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후유하라는 동급생이 사라졌고 그 때문에 주인공들은 무의식적인 죄책감과 주변에서 보내는 이지메의 의혹에 괴로워하지만 내면에 깊은 상흔을 입을 정도의 충격을 받지는 않습니다. 괴롭힌 적은 전혀 없었기에 후유하의 실종에 직접적 책임이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후유하는 자기만 아는 이유로 사라졌고 같은 버스에 있었음에도 사라졌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 건 좀 미안하다는 정도의 위치가 바로 주인공들이 서 있는 곳입니다. 그렇기에 20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 후유하의 메일을 받고 주인공들이 한 행위는 회한에 잠기거나 불안에 떠는 것이 아니라 누가, 와 왜, 라는 추리지요. 주변인들이 사건의 중심을 향해 나아간다는 내용입니다. 그 과정에서 다섯 명의 주인공들이 지닌 개인사가 드러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복합적인 면모를 갖추고자 하는데 결과적으로는 후유하의 비밀과 주인공들의 비밀이라는 두 가지 미스터리가 따로 놀게 됩니다. 후유하는 왜 버스에서 내린 거야? 후유하는 어디로 간 거야? 후유하는 죽은 거야, 살아 있는 거야? 등 과거의 의문은 철저하게 주인공들의 기억에 의해 해결되어 갑니다. 옛날 문제가 옛 기억이라는 힌트에 의해 풀려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주인공들이 지닌 현재의 문제는 그냥 문제에서 그칩니다. 후유하가 보낸 메일을 받은 직후부터 주인공들 몇 명에게 악의적인 문제가 발생하지만 어느 것이고 문제 그 자체가 커져가지 않습니다. 후유하에게 메일을 받은 뒤 나에게 문제 하나가 생겼어! 문제 딱 하나! 새로이 생긴 문제는 커지지 않고 대신 20년 정도 살다보니 생겨난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문제들이 이야기의 부족한 면을 메우는데 주인공 다섯 중 별 문제가 없는 이들과 큰 문제를 가진 이들로 나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별 문제 없는 이들은 별 것 없는 문제가 그저 산발적으로 툭툭 터지다가 대충 마무리됩니다. 큰 문제를 지닌 이들은 큰 문제다보니 딱히 후유하와 연결이 될 구석이 없습니다. 제가 알아서 데굴데굴 굴러가고 비중도 잘 끌어다 씁니다. 홀로 뚝 떨어져서 존재감을 뽐내는 것이지요. 이야기의 방향은 후유하 사건과 별 관련 없이 갈래갈래 나뉘어 각기 나아가는데 주인공들은 후유하 사건 때문에 서로 얽힌 상태니 인물과 인물의 사건이 함께 역동적으로 움직이지 않게 됩니다. 사건이 인물들에 의해 발생하고 인물들이 움직여서 사건이 변화한다기보단 사건들이 인물에 그저 덕지덕지 붙어 있다는 느낌이에요.

 소설은 이야기의 마무리를 위해 후반부에서 이렇게 덕지덕지 붙은 사건들을 하나씩 급하게 떼어냅니다. 떼어내는 방법은 등장인물의 입을 빌린 설명이지요. 누군가에 따르면 이 문제는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이었대, 누가 그러던데 저 문제는 여차저차해서 생긴 거였대, 를 몇 번이고 반복하여 간신히 인물들에게 붙였던 사건을 떼어내지요. 별 다른 과정 없이 인물들끼리 모여 앉아 이래서 저랬던 것이었더라, 는 말을 그저 읽기만 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사건이 끝나고 마니 흐지부지라는 표현 외엔 달리 쓸 것이 없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친 뒤 드러나는 후유하 사건의 전모 역시 상당히 억지스럽습니다. 워낙 적반하장 수준의 억지가 사건의 진상이라 거기에 대고 그래, 그럴 수도 있어하며 이해하려고 드는 주인공들의 태도도 억지스럽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정리하자면 나를 기억하니는 과거의 사건이 되살아나 현재의 주인공들을 뒤흔든다는 내용이지만 과거의 사건이 정말 되살아났다기보단 그저 옛 기억을 슬쩍 들추는 수준에서 멈추고 현재의 주인공들은 흔드는 것은 그간 그들이 해왔던 행위에 따른 문제인데 이 부분이 과거와 호응하지 않아 이야기를 무겁고 거추장스럽게 만듭니다. 결국 현재의 사건들은 소설의 후반부에 후다닥 정리되고 후유하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는데 이 부분 또한 상당히 억지스러운 면이 있어서 놀랍다기보단 좀 황당하다는 마음이 앞섭니다. 완성도가 높다거나 구조적으로 빼어난 이야기라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이 소설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중학생들이 어른이 되어 바뀐 관점이 종종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중학생 때는 마냥 싫어만 했던 선생들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을 때 서른다섯의 그들은 그 선생님들은 선생이라는 일이 맞지 않았던 거야.”라고 깔끔하게 이해하는 태도를 보이지요. 뭐 저런 게 선생질을 하고 자빠졌어, 에서 맞지도 않는 선생 일을 하다니 저 사람도 참 안 됐다, 라는 동질감이 섞인 이해를 드러내는 것이지요. 또한 중학생 때는 마냥 좋다고 생각했던 일이나 취미도 어른이 되자 그저 즐길 수 없게 되는 안타까운 모습들도 종종 나오고요. 등장인물들이 어른이 되어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돌아본다는 부분은 좋았습니다. 저도 가끔 어른이 되어 잃은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하지요. 얻은 건어라, 나이를 먹어서 얻은 게 뭐가 있더라? 없는 거 같은데.

 나를 기억하니는 2013년 드라마로도 제작된 바가 있습니다. 소설의 원제인 격류와 동일한 제목인 격류 나를 기억하고 있습니까?(激流~えていますか)20136월부터 8월까지 총 8회에 거쳐 방영되었다고 하네요.


 큰 기대 없이 읽기에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거창했던 시작에 비해 마무리가 엉성하다는 인상이 강하게 느껴지는 소설입니다. 그것보다는 나으려나아니 그것과는 다른 느낌으로 좋지 않아서 비교할 수는 없겠네요. 아무튼 추천하긴 힘든 소설입니다.



덧글

  • 아침 2016/10/19 12:46 # 답글

    설정만 봐서는 개인적으로 끌리는 쪽인데 말이죠.. 마무리가 깔끔하지 않다니 안타깝네요. 요번 직장에서 보내는 여행길에 들고갈 신간이 잏으려나.. 했는데 그냥 전에 사둔 소설중 안 질릴 녀석으로 골라야겠네요. 소녀지옥이 좋으려나..
    추리소설 안 읽는 블로그 시절의 자기소개글을 보고 포교하던 인간으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는데 블로그가 돌아와서 다행입니다ㅠㅜ
  • 정윤성 2016/10/19 15:54 #

    설정이 마음에 드신다니 마무리가 그냥 무던한 정도였다면 그래도 한 번쯤 읽어보셔도 괜찮지 않겠냐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그 수준조차 아니라서 도저히 권할 수가 없네요. 최소한 사서 읽진 마시라고 하고 싶습니다. 요상망측한 치정이 얽힌 적반하장의 마무리도 문제고 그 마무리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도 문제고... 유메노 큐사쿠의 소녀지옥은 재미있지요. 분위기가 마음에 들더라구요.
    양심의 가책까지야ㅎㅎㅎ 게임도 독서도 블로그도 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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