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통 ~ 죽음을 보는 눈 - 읽는 내내 통증에 시달릴 지경 -일본

 생각해보면 의술이란 뭔가 요상한 구석이 있지요. 지식이란 삶에 있어서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아는 것이고 인간의 삶에 있어 가장 필요한 지식이란 삶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지식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일단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할 지식은 모국어와 의술에 관한 것이어야 합니다.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필수적인 언어의 지식과 자신의 육체를 유지하고 회복하는 지식, 기본이 되는 이러한 두 가지 지식이 있어야 삶을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겠지요. 허나 의술은 의료전문종사자들의 전유물이며 보통사람들의 실생활과 너무나 거리가 멉니다. 보통사람들이 알아야 할 의술의 지식이란 어디든 아프면 일단 병원에 갈 것과 의사 선생님이 하는 말을 잘 따를 것 두 가지뿐이지요. 이 두 가지면 충분하기도 하고 이 두 가지조차 잘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태반이기도 하고요. 의술이 일반과 거리가 생긴 것은 당연하게도 너무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은 너무 많은 이유로 너무 다양한 증상을 보이며 아픕니다. 왜 아픈지 아는 것부터 엄청난 난관인데 어떻게 치료하는지 아는 것도, 알아낸 방법으로 치료를 하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문제이지요. 그렇기에 이토록 어려운 지식을 알고 있는 의사나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전문종사자들이 중요한 것이며 존경받는 것이겠습니다. 말을 바꾸면 제대로 된 의술의 지식은 의료전문종사자들 정도만 아는 것이라서 직업소설가가 의료에 관한 작품을 쓰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한 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의료에 관한 이야기는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써야 하는 것이니 정확성이 필요한 게 당연하지요. 고로 의료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은 소설가가 의술을 차근차근 배워서 자격을 갖춘 뒤 작품을 써나가는 것보다는 의료 자격을 지닌 전문가가 자신의 지식을 기반으로 소설을 쓰는 경우 쪽이 훨씬 난이도가 낮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이 의료와 관련된 픽션이나 논픽션 작가 중 의사의 비율이 높은 까닭이겠지요. 다만 개인적으로 현직 의사가 쓴 소설에 대해서 신뢰를 잘 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 사람들 대부분 이과생이잖아요.

 고등학생 시절 시집을 읽고 시를 외우던 친구가 있었지요. 남성호르몬으로 가득 차서 정신을 반쯤 꺼내놓은 채 시장통의 강아지마냥 무슨 일이건 일단 짖어대고 보는 고교시절에 사색에 젖어 시를 읊는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때문에 저는 그 친구를 보며 깊은 감동을 느꼈고 함께 시를 외우면서 까르륵 까르륵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래봐야 1년 동안 외운 시가 5개도 안 되지만. 그나마도 지금은 다 까먹었지만. 친구는 이과로 저는 문과로 갈려서, 갈려봐야 둘 다 친구가 별로 없는 인간이었기에 3년간 잘 놀았습니다만 어느 순간부터 그 친구는 시는 물론이고 예술 전반에 대해 일체의 이야기를 하지 않더군요. 2학년 중반부터 우리가 했던 이야기의 태반이 대학 이야기였으니대학에 진학한 뒤 서로 만나는 횟수가 점점 줄어 기껏 년에 두어 번이 되었을 즈음 오랜만에 함께 영화를 보러 가게 되었지요. 그 친구랑 영화를 보러 가면 감독의 연출이나 배우의 연기 뿐 아니라 화면의 미장센이나 찰나를 스치는 감정 표현, 음악 등 세세한 부분에 대해 쉼 없이 떠들 수 있어서 아주 좋았지요. 그런데 영화관에 들어서면서부터 영화를 본 지 몇 년 된 것 같다는 말을 하더니 다 보고 나서는 이제 더 이상 예전에 보던 식으로 보질 못하겠다고, 이제는 안 보인다고 말을 하는 겁니다! 시를 읊던 문학소년이! 그 날 이후, 저는 이과를 싫어하게 되었어요. 이과생이 싫은 게 아니고 이과라는 커리큘럼이 싫어진 거지요. 내 친구의 감수성을 다 먹어치운 괴물로밖에 느껴지지 않아요. 지식은 사람이 익히는 것이지만 사람이 지식에 맞춰 변하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아무튼 이러한 경험 때문에 저는 이공계열을 거친 사람은 수학과 과학에 의해 감수성의 한 조각이 물어 뜯겼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공계열 작가 중에도 좋은 작가가 많지요. 당장 히가시노 게이고도 그렇고허나 편견이라는 건 쉽게 사라지지 않으니 편견인 것. 반례가 끊임없이 쏟아져도 제 입맛에 맞는 사례 하나만 튀어나오면 그것 봐! 라고 외치게 되는 것이 편견. 그리고 무통의 작가 구사카베 요야말로 제 편견에 딱 맞는 작가였던 것입니다! 무통 진짜 더럽게 재미없어요! 저 이렇게 격한 표현 잘 쓰는 사람 아닌데 진짜로 엄청나게, 무서울 정도로, 끔찍하게 재미없어요! , 재미없다는 말 하나 할 거라고 2000자를 쓰다니 나란 놈은 정말 글러먹었구나!

 

 작가 구사카베 요는 현직 의사입니다. 1955년생이며 03반신불수(廃用身)’로 데뷔했습니다. 솔뮤직 러버스 온리와 풍장의 교실 등으로 유명한 작가 야마다 에이미는 구사카베 요를 가리켜 이렇게 재미있는 소재로 잘도 이렇게까지 시시한 소설을 썼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마을 구석에서 조그만 진료소를 운영하는 의사 다메요리 에이스케는 환자를 보기만 해도 무슨 병인지 알아내는 천재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병을 알고 치료 가능성마저 알아내는 다메요리는 그 때문에 의료라는 행위 자체에 회의를 가지고 있지요. 나을 사람은 의사가 없어도 낫고 죽을 사람은 의사가 있어도 죽는다는 걸 알게 된 다메요리는 조그만 진료소에서 환자들 기분이나 풀어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허나 우연한 기회로 인해 임상심리사 다카시마 나미코와 알게 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얼마 전 벌어진 일가족 연쇄살인 사건에 관련되게 됩니다.

 

 추리소설 중에는 소설이라고 부르기 조금 힘든 녀석들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오직 트릭을 펼치기 위한 재료나 배경 정도로 여기는 작가도 있고 이야기를 도전해서 박살내야 하는 적으로 여기는 작가도 있습니다. 무통은 소설이기는 합니다. 허나 애석하게도 소설이긴 한데 너무 엉망진창이라는 점이 문제입니다. 등장인물과 사건과 이야기가 모두 따로 놉니다. 주인공 다메요리는 환자를 척 보기만 해도 어디가 아픈지 알아내는데 최초엔 셜록 홈스 같이 뛰어난 관찰력의 결과처럼 나오다가 후반으로 가면 그냥 관상 수준의 초능력으로 마구 격상됩니다. 얼굴을 보고 저 사람 배가 아픈가보군, 이 정도라면 과연 천재 의사라고 납득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지나가는 사람 얼굴을 보고 저 사람 사이코패스군, 곧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거야, 허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지! 이러고 있으니 이 인간 대체 뭐야라는 마음밖에 느낄 수 없습니다. 골상학이라는 과거의 유물을 들고 나와 설득력을 얻으려 하지만 미간의 짙은 M자 주름이 있으면 범죄자이라는 주장에는 끝내 헛웃음만 나올 뿐이지요. 뭔 소릴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요. 다메요리와 같은 능력을 지닌 의사 시라가미는 더욱 가관입니다. 대단한 야심가이자 주인공의 강력한 라이벌처럼 나오더니 나중에 가면 혼자 각종 추한 꼴을 다 보이고 은근슬쩍 사라집니다.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군요. 여주인공인 다카시나는 하는 건 많은데 쓸모 있는 건 없고 온갖 인물들과 접점이 있으면서도 정작 이야기와는 밀접하게 이어져 있지 않습니다.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네요. 나머지 등장인물들도 다들 하나의 파편이 되어 이야기와 따로 떨어지려 안간힘을 쓰는데 대체 뭔 짓인지 모르겠어요. 사건 역시 동기는 졸렬하고 범인은 황당하고 결말은 어이없습니다. 일가족을 전부 때려죽인 뒤 모종의 의도를 가지고 시체를 배열했다는 엽기적인 겉모습은 단 몇 페이지 만에 효과를 잃고 추락하지요. 등장인물들은 이야기와 함께할 생각이 없고 사건은 이야기를 이어나갈 힘이 없고 이야기 자체도 재미가 없습니다. 총체적 난국이라는 표현이 이 이상 들어맞는 소설을 지난 몇 년간 읽은 적이 없어요. 대단히 강력하게 비추천합니다. 이 블로그에 올린 소설들에 한정하여 골든 라즈베리 어워즈를 연다면 부동의 1위 자리에 올릴 겁니다.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더군요. 위키를 보니 주연 배우 니시지마 히데토시 최악의 드라마, 라는 기사가 링크되어 있는 걸보니 드라마도 원작의 힘을 이기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이 배우 어디서 봤는데어라, ‘크리피에서 주인공이었던 사람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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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아침 2016/10/24 21:45 # 답글

    재미없었다는 말을 위해 2000자를 쓸 수 있다니? 과연 문과!(응?)
    큭, 모든 의료인이 그러치 아나~같은 드립을 치고 싶은 이과 문과 다 해보고 최종적으로 이과 간 인간입니다만 소아과에서 일하며 주사맞고 슬피 울며 '가슴이.. 아파요 '라 표현하는 3살 아동에게 '그거 폐렴 걸려서 그런거다. 가슴 자주 두드려 주세요.'하는 삭막한 인간이 되버린지라 할말이 없습니다. 근데 그건 폐렴 치료를 위한 중요한 정보라고!

    아무튼 의료인의 의학 소설은 저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의료인의 판타지가 어느정도 가미될 수밖에 없는게 그런 소설인데 그런 판타지를 즐겁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후자라.. 현실의 트라우마들이 떠올라 못 보겠더군요..ㅠㅜ
  • 정윤성 2016/10/24 23:28 #

    재미없었다 다섯 글자면 되는데 굳이 둘러둘러 가는 것이야 말로 문과!(응?)
    병원이야 아픈 거 나으려고 가는 거지 함께 아파해줄 사람 찾으러 가는 건 아니니까요! 아니, 함께 아파하면 그것도 그것대로 곤란할 것 같네요! 그나저나 폐렴에 걸리면 가슴을 자주 두드려야 하는 거군요. 제 친구가 중학생 때 폐렴에 걸려서 입원했다가 결핵에 걸려서 입원했다가 기흉에 걸려서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병명도 그렇고 순서도 그렇고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아무튼 나오더니 다시 들어가길 반복했지요) 매일같이 병문안을 가서 그 애가 선물로 받은 과자랑 음료수를 먹어치우곤 했었지요. ...가슴이라도 좀 두드려 줄 걸. 그때도 참 빼빼 마른 애였는데 지금도 빼빼 말랐습니다.
    이 소설도 의료 판타지가 있긴 한데 그게 무슨 관상학 수준이라... 얼굴만 척 보고 어, 저 사람 죽을 병이군. 치료하지 말아야겠다! 어, 저 사람 살 수 있는 병이군. 치료하지 말아야겠다! 같은 말을 읽고 있으면 그저 어안만 벙벙하더군요. 현직 의사 작가가 의료 자체를 부정하는 것도 웃겼지만 좀 말이 되게 부정을 해야 고개라도 좀 끄덕일 건데 말이지요. 아침님이 읽어셨다면 손발 오그라드는 것 정도로 끝나지 않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 아침 2016/10/25 01:10 #

    굳이 따지자면 아마 진짜 가슴이 아팠다기 보단 (폐렴이 아주 심하진 않았습니다) 주사의 고통에 대해 문학적 표현성을 보인 아동에게 그냥 이과적 해석을 이야기한.. 뭐 그런거였습니다만.. 아무래도 글을 잘 못 썼던 듯^^;
    뭐 애기라서 심호흡을 못하니까 가슴 두드리라고 하는거지(그리고 두드리는 것도 나름 방식이 있어서 그냥 두드리면 효과는 없고 상대가 아파서 주먹을 부르게 합니..) 크면 그냥 심호흡만 잘 해도 충분합니다. 하라고 해도 안해서 문제지..
    죽을병이라고 치료 안하는건 도대체 어떤 의사랍니까.. 호스피스 간호가 괜히 나온게 아니고 그렇게 따지면 안 죽는 사람이 어딨다고..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치료가 얼마나 많은데 그런 소린 하다니 과가 궁금한 의사로군요. 틀림없이 외과일거야!(편견)
    라고 생각하고 과 찾아보니 외과&마취과... 진짜였냐!?
  • 정윤성 2016/10/25 18:36 #

    아... 오늘따라 흉부의 특정부위에 통증이 느껴지는군요, 라는 말이 아니었군요. 하긴 화자가 3세 아동이었으니 충분히 예측 가능한 부분이었는데... 제가 부족했습니다^^;;
    외과! 말슴대로 사람은 살다가 죽는 사이에 삶이라는 과정이 있는데 주인공은 정말 그 부분은 신경쓰질 않더라구요. 퀄리티 오브 라이프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과연 외과...(편견이 전염되는 순간)
  • 무통 검색 2017/01/01 03:02 # 삭제 답글

    전 완전 재밌게 봤는데,, 좀 찝찝하긴 하더라구요.. 결말도 그지같고 ㅠㅠㅠㅠ
  • 정윤성 2017/01/01 19:08 #

    제 눈에는 단점이 더 많이 들어와서 글을 약간 험하게 썼지만 무통 검색님께서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다행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결말이 참 그지같긴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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