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리포트 -그외

 부끄럽습니다만 남자치고는 눈물이 많은 편입니다. 영화를 보다가 울고 책을 읽다가 울고 음악을 듣다가 울곤 합니다. TV를 보다가 운 적은 거의 없는데 애초에 TV를 거의 보지 않기 때문이지요. 최근에는 뉴스도 그냥 휴대폰으로 보고 있어서 집의 TV를 켠 게 언제인지 모를 지경입니다. 허나 몇 개월 전 TV 앞에 주저앉아 눈물을 주륵주륵 흘린 적이 있는데 바로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가습기 살균제 편을 봤을 때였지요.

 

 ‘가습기 살균제 리포트JTBC의 탐사보도방송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165월에 3주간 방영한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다시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내용이 방송에 나온 것과 대부분 겹치기에 이미 방송을 시청한 분들에게는 크게 새롭지는 않으나 독자들이 기사의 내용을 받아들이기 쉽도록 순서를 재배치하였고 활자로 적힌 덕에 전문적인 용어나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가 용이해졌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암만 이규연씨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한다고 해서 PHMGPGH, CMIT/MIT 같은 것들은 한 번 듣는 정도로 쉬이 이해하기는 어려우니 말이지요.

 

 책을 읽다가 몇 번을 덮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원인모를 호흡기 질환에 걸린 자식을 위해 열심히 가습기를 틀고 더 열심히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는 어느 어머니의 인터뷰를 읽고 있으면 너무 괴로워서 우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 많이 쐐 줬죠. 애가 건조하면 안 되니까. 바로 머리 위에다가. 지금도 저는 제 손을 잘라버리고 싶어요.” 지옥에서조차 존재해서는 안 될 비극이 현실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지금도 너무 슬플 뿐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리포트는 치명적인 화학물질이 어떻게 모든 규제를 뚫고 안방의 가습기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관련된 규제가 무엇인지, 그 규제가 어째서 작동하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데 결론은 기업의 욕심과 무사안일한 행정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화학물질인 PHMGPGH 등은 유해하지 않다는 정부의 인증을 받았습니다. 기업들이 카펫, 고무, 목재용 항균제로 사용할 거라고 신청했기 때문이지요. 가습기 살균제로 만들어서 기화시켜 구매자들 입 안에 처넣을 거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환경부 또한 유해성 심사를 서류 검토하는 정도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흡입되는 경우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다고 하는군요. 글쎄요, 카펫, 고무, 목재용 항균제인데 누군가가 흡입할 경우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건 그리 설득력이 없군요. 카펫 정도면 극소량이나마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들어갈 경우도 고려할 법 한데요. 그 정도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조차 기대할 수 없는 게 관료주의인 걸까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증상이 원인불명의 폐질환으로 불리고 있을 때 역시 정부의 대응은 부실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질환의 전국적인 발생에 의사들이 놀라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을 의심하고 질병관리본부에 검사를 요청했을 때 질병관리본부는 할 일을 했습니다. 검사하고 바이러스가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밝혔지요. 그리고 거기서 멈췄습니다. 질환의 원인이 바이러스가 아니었습니다, 그럼 이만! 으로 상황을 종료한 것이지요. 환자는 많은데 바이러스는 원인이 아니니 이제부터 다른 원인을 함께 찾아보자는 발상과 제안 정도는 상식 선에서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는 94년 유공(SK케미칼)의 가습기 메이트입니다. 가습기 메이트는 CMIT를 사용했고 이는 기존에 이미 있던 물질이기에 환경부는 독성 실험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허나 이 기존의 물질이 증기를 통해 호흡기로 쑥쑥 들어가는 경우는 분명 최초였겠지요. 또한 미국에서는 91년 가습기를 통해 화학물질이 호흡기로 들어가는 경우를 경고하는 매뉴얼이 발표된 바가 있었습니다. 91년 미국은 가습기로 화학물질이 퍼질 경우에 대한 우려를 경고했고 94년 우리나라 기업이 그 우려를 현실로 만들었으며 정부는 이를 용인했습니다. 한 번 뚫린 규제는 11년까지 활짝 열린 상태였고 환자들은 끊임없이 발생했으며 의사들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열려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 이번 사태에서 만약을 거론하는 건 너무 아픈 이야기니까 넘어가지요.


 출처는 JTBC 홈페이지(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302788)


 가습기 살균제 리포트는 원인이 밝혀진 뒤 보인 기업들의 행태와 해당 정부기관들의 발뺌도 고발하고 있습니다. 옥시를 비롯한 대부분의 기업들이 검찰의 수사가 임박하자 도의적인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는 동시에 자기들에게 유리한 보고서만 골라 법적 면죄부를 얻으려 하고 정부기관의 관료들은 구멍 난 규제를 내세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반응은 사실 뻔한 것이지요. 슬프지만 예상할 수 있는 반응입니다. 책을 읽던 중 제가 가장 화가 났던 부분은 13712일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관련 법률안을 논의하려던 공청회가 불발되었다는 대목이었습니다. 전날 홍익표 민주당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귀태라고 말한 것에 대한 항의로 새누리당이 공청회를 보이콧했고 상임위 위원 중 김상민 의원 딱 한 명만 참가했던 것이지요. 야이 미친 놈들이 하필 보이콧해도 이걸 하냐또한 국회 일정을 전부 취소해서 결국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한 4개의 법안도 무산되었습니다. 정치가들이 나를 빡치게 만들지 않는 순간은 대체 언제란 말이냐.

 책을 읽은 뒤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지금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지 검색해봤습니다. 오늘(29) 검사가 신현우 전 옥시 대표에게 20년을 구형했고 존 리 전 옥시 최고경영자, 현 구글코리아 대표에게 10년을 구형했다고 합니다. 옥시 연구소장 김 모에게는 15, 조 모에게는 12, 선임연구원 최 모에게는 5년을 구형했다는군요. 세퓨를 만든 오 모 전 버터플라이이펙트 대표에게는 징역 10, 업체에게는 벌금 15천만원을 구형했답니다. 지난 15일에는 세퓨를 상대로 소송한 피해자 또는 유족 11명에게 1천만원에서 1억의 배상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지요. 또한 비슷한 참사가 없도록 2019년 살생물제 법이 시행된다고 합니다. 대형마트는 자사의 제품에 한해 가습기 살균제 등의 제품 성분을 공개하기로 했다고도 하네요. 충분한 수준의 처벌이나 대책은 아니라 생각되지만 최순실 사태로 인해 모든 것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다행입니다. 허나 피해자를 구제를 위한 금액이 10년 간 2100억 원 가까이 필요하다는 조사도 있어서 앞으로 갈 길이 멀고 험난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위기탈출 넘버원에서(맞나? 기억이 가물가물) 가습기에 정수된 물 대신 수돗물을 넣는 게 좋다는 내용이 방영되었지요. 정수된 물을 깨끗해서 가습기 내부의 물에 세균이 번식할 수 있으니 수돗물이 낫다는 것이었습니다. 비슷한 내용이 아침 정보 프로그램에도 몇 번 나온 걸로 알고 있는데 그 기억을 떠올리며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보니 소름이 돋더군요. 가습기 내의 세균 무섭겠지요. 특히 자기 아이들의 연약한 호흡기를 생각하면 얼마나 무섭겠어요. 매번 물통을 꺼내 빡빡 닦다가 정부의 KC마크가 붙은 가습기 살균제를 보면 꼭 필요한 물건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죠, 비극이란 그런 거겠지요



덧글

  • 아침 2016/11/30 08:36 # 답글

    이 건은 여러가지로 충격적인 부분이 많았기 때문인지 병원에서 가습기치료가 필요한 환아들에게 가습기를 제공하면 꼭 소독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물이랑 칫솔로 닦는다고 해도 쉽게 믿지 못하시는 분도 계시고... 현재진행형으로 여파가 남아있긴 합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가장 놀랐던 부분이라면 그걸 만든 사람 중 하나인 세퓨의 대표도 똑같은 건으로 자신의 어린 자식을 잃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자기 제품을 자기 집에 가져가서 쓰곤 했다고 하던데요. 결국 화학물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제품을 카피해서 만들고, 또 그게 검수 통과가 가능한 세상이었기에 이런 비극이 생긴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 정윤성 2016/11/30 16:09 #

    그렇군요. 이런 사태 이후 병원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쓸 리 만무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또... 정말 여러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줬네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답이 없지만 개중 가장 말도 안 되는 게 바로 세퓨였지요. 덴마크 친환경 운운하며 광고를 했지만 정작 원료를 판매한 덴마크 회사는 자기네 제품이 친환경이라는 게 말이 되냐고 놀라고 세퓨 자체도 사장이 재료를 대충 섞어서 만든 거라 독성이 기준치의 160배에 달했다고 하고 그걸 또 자기 집에서 쓰다가... 정말이지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할 지도 모를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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