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은 사람 -일본

 ‘나를 닮은 사람’은 일본의 추리소설가 ‘누쿠이 도쿠로’가 2014년에 집필한 사회파 미스터리 작품입니다. 누쿠이 도쿠로는 국내에 번역된 작품이 많은 유명 작가이지요.


 어느 날부터 일본 각지에 특정 대상을 노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벌어지는 테러 사건이 이어집니다. 주로 사회적으로 빈곤층에 속하는 인물들이 범행을 저질렀으며 별다른 계획이나 준비 없이 혼자 소규모로 벌이는 테러라고 하여 사람들은 이를 ‘소규모 테러’라고 부르기 시작했지요. 소규모 테러를 벌이는 자들은 스스로를 레지스탕스라 칭하고 불공평한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다고 주장하며 무고한 시민들을 상대로 자살 공격을 일삼았습니다. 테러를 지원하는 조직도 없고 배후도 없어 언제 비극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나날이 이어지자 경찰은 난감한 심정이지만 우연찮게 한 가지 단서를 찾아냅니다. 바로 테러범들이 모두 인터넷 상에서 ‘도베’라는 자와 채팅을 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지요.


 누쿠이 도쿠로는 하나의 사건을 등장인물들이 바라보는 각자의 시선을 통해 파편으로 나누어 독자들로 하여금 읽는 동안 조금씩 진실을 재구성하게 만드는 능력이 뛰어난 작가입니다.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사건의 파편을 하나씩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단면이나 일부가 아닌 사건 전체를 바라볼 수 있게 되지요. 이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길 반복하고 이입에 이입을 거듭한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조금은 객관적인 시선을 갖춘 채 진실을 맞이한다는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이번에 읽은 나를 닮은 사람은 이러한 작가 특유의 공식이 조금 다르게 적용됩니다. 이야기는 언제나처럼 등장인물의 시선으로 파편이 되어 있으나 파편을 모아 재구성할 큰 그림은 특정한 사건이 아닙니다. 소규모 테러라는 이름의 사건 자체를 조각낸 것이 아니라 소규모 테러, 소규모 테러가 일어나는 원인, 소규모 테러로 인한 희생자 그리고 배후로 지목된 도베라는 인물, 도베에게 감화된 사람, 도베와 뜻은 같지만 방법론은 다른 사람, 도베를 잡고 싶은 사람 등으로 조각내어 인물들의 이야기를 전부 모아도 명백하게 그림이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이야기가 감춘 진실에는 다가갈 수 있되 진실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무언가가 깔끔하게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지요.

  작중 등장하는 소규모 테러란 현실에서 벌어지는 외로운 늑대의 테러사건들과 지극히 유사합니다. 극단적인 종교나 정치 세력에 대한 추종의 자리에 도베라는 인물이 위치한다는 점만 다를 뿐이지요. 도베는 테러를 저지르는 사람들에게 지원을 하거나 계획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심지어 테러를 하라고도 하지 않지요. 그저 상대방을 향해 당신이 얼마나 불운한 피해자인지를 거듭 강조할 뿐입니다. 「당신이 취직을 하지 못한 건 당신의 책임이 아니다, 당신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것은 당신의 책임이 아니다, 당신이 지금 느끼는 좌절감과 절망은 당신 때문에 드는 것이 아니다, 그럼 무엇 때문인가? 바로 사회의 잘못이다. 빈부격차, 세대 간의 격차, 일할 자리도 없고 일을 한다고 해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사회, 사회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70, 80년대의 찬란한 거품 경제 시대를 향유한 기성세대가 모든 부를 독점하고선 그 이후 세대들에게는 아무 것도 남겨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세대의 절망을 개인의 무능으로 매도한다. 당신이 바뀔 게 아니라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운운. 솔깃한 이야기지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닌데다 특히나 저 같이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처럼 들릴 법도 합니다. 복음의 실천이랍시고 테러를 저지르는 건 한심할 따름이지만요.

  여담입니다만 아버지와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고 있는데 만나면 하는 이야기라고는 정치이야기(문재인은 빨갱이고 박근혜는 병신이다), 정치이야기 Again(문재인 부하들도 다 빨갱이고 박근혜 부하들도 다 병신이다), 아기(아버지의 손자이자 누나의 아들이며 저의 조카인)이야기, 세상 사는 이야기(텔레비전에서 아로니에라는 걸 많이 먹어야 한다더라) 정도지요. 이런 이야기들로 한 시간 정도 한 바퀴 돌고나면 그제야 찬란하고 치열했던 아버지의 젊은 시절 이야기(30분 가량의 서사시)가 시작됩니다. 아버지의 과거사에는 언제나 각종 위기와 고통이 등장하지만 단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는 어려움이 바로 취직난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직했으니까요. 임금이 부족하다고 한 적도 없습니다. 40대 초반에 4천만원짜리 아파트(28평형)를 살 수 있었지요. 아버지의 인생은 결코 쉽지 않았으며 지금도 쉽지 않습니다. 일을 너무 많이 했고 사업도 너무 많이 망했고 현재 가진 돈도 너무 적지요. 아버지는 열심히 살았고 지금도 열심히 살면 된다고 믿습니다. 아버지와 저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릅니다. 아버지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노력한 적도 있지만 제대로 시도도 못하고 관뒀지요. 뭐, 제 관점에서는 시도하려고 했다- 정도도 노력에 속합니다. 스스로에게 물러터진 인간이라서… 헤헤.

  나를 닮은 사람은 소규모 테러와 소규모 테러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사회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우리 아버지와 비슷한 관점, 저와 비슷한 관점 또는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관점 등등. 현재의(2014년도의 일본) 사회와 이 사회가 낳은 소규모 테러 그리고 소규모 테러를 방법론으로 삼은 도베라는 인물. 사회는 단순하지 않으니까 매일같이 다양한 이슈들이 생성됩니다. 하나의 이슈 안에도 복잡한 인과관계가 성립되어 있고 심지어 인과를 무시한 것 같은 관계가 아무렇지 않게 자리 잡을 때도 있습니다. 이슈의 밖에서는 이슈의 핵심까지 파고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암만 매스컴의 심층취재가 이어져도 시청자의 관심이 흐려진다 싶으면 그 순간 분석은 끝나지요. 이슈의 안에서는 이슈 바깥에 존재하는 다수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잘못인 줄 모르고 저지른 잘못이거나 잘못한 줄 알고 저지른 잘못이라도 그건 당사자의 판단이라는 이름의 기준이라 객관성은 없지요. 심지어 이슈 내부에 있으되 당사자는 아닌 인물들의 흐름에 휘말려 판단하고 실행하는 경우도 너무나 많으니 하나의 이슈란 그것이 아무리 사회적이라고 하더라도 사회 자체와 완전한 접점을 이룰 수 없게 됩니다. …음, 문장이 지저분해지고 있다.

  아무튼 그렇기에 나를 닮은 사람은 소규모 테러, 현재의 사회, 도베를 전부 다룹니다. 전부 다루되 등장인물 개개인에게는 이 하나로 묶인 이슈 중 해당 인물이 바라보고자 하는 부분만 뽑아내지요. 말을 바꾸면 하나의 이슈에 대해 이슈를 벌인 인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 이슈의 과정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 이슈의 결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 등으로 나누어 등장인물들을 배치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테러를 저지른 사람들을 이해해.”, “테러리스트들은 다 찌질이야.”, “도베의 말이 맞아.”, “도베는 체포해야 하는 범죄자야.”, “소규모 테러를 통해 사회가 바뀌긴 할 거야.”, “무슨 짓을 해도 절대 바뀌지 않아.”,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진실을 향해 나아갈 길잡이로 보였던 등장인물들의 관점은 어느새 책을 읽고 있는 독자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의 역할을 합니다. 소설의 제목과 같이 등장인물들 중에 나를 닮은 사람이 하나쯤은 있을 법한 거지요. 이러한 구조가 소설 나를 닮은 사람의 백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500페이지밖에 안 되는 분량에 10명밖에 안 되는 주요인물로는 아무래도 충분한 깊이가 우러나지 않지요. 이 정도로는 나를 닮은 사람, 내가 닮고 싶은 사람, 나는 되고 싶지 않은 사람 모두를 다 소화할 수가 없습니다. 좋은 내용이긴 한데… 이 또한 어느 정도 겉핥기에 불구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또한 10명 중에 나를 닮은 사람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나를 약간 닮은 사람, 정도는 분명 있을 법도 합니다만 그 정도라면 영 아쉬움이 남지요. 아주 아름다운 구조를 갖춘 소설이긴 합니다만 반대로 구조 상 어쩔 수 없이 단점이 생겨버렸다고 보입니다.


 재미있고 읽을 가치가 충분한 소설입니다. 추천하기에 거리낌이 없을 작품이에요. 다만 누쿠이 도쿠로를 처음 읽는 분께는 이 소설 말고 ‘난반사’를 먼저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네요. 난반사 재밌어요.




덧글

  • 취한배 2018/03/16 00:54 # 답글

    제 어머니는 곧 전쟁 날 것 같다고, 라면 사놓으라 하셔서 알았다고 했어요. 정치 얘기하면 싸우게 돼서 피하는 수법만 는 것 같습니다.ㅜㅜ
    <나를 닮은 사람> 독후감을 읽었는데 보관함에는 <난반사>가 들어가네요?ㅎㅎ 오랜만입니다!
  • 정윤성 2018/03/16 19:06 #

    저도 피하거나 듣고 흘리기만 하는 편입니다. 싸우기 싫고 싸워도 아무 소용도 없고요ㅜㅜ
    난반사 재밌어요! 나를 닮은 사람을 읽고 난반사를 추천하지만 재미있으니까!
  • 방울토마토 2018/03/16 09:18 # 답글

    정신없긴 하지만 다양한 관점을 보여준다는게 좋긴 하더군요.
    난반사가 그리 재밌나요? 누쿠이 도쿠로 작품 다 읽고 그거 하나 남았는데 허허...
  • 정윤성 2018/03/16 19:13 #

    네, 다양한 관점이 필요한 사건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보여준다는 게 근사하지요.
    난반사 재미있어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요. 방울토마토님은 맛있는 걸 마지막까지 남겨두셨다고 여기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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