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 - 고전부 시리즈 제 6편 -일본


「이미지의 출처는 엘릭시르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elixirmystery/)」


 과연 완결은 날 것인가, 난다고 해도 언제 날 것인가? 라는 의문이 절로 드는 고전부 시리즈의 최신작 ‘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를 읽었습니다. 오레키가 고등학교에 갓 입학해서 고전부에 입부하는 걸 본 게 벌써 6년(애니메이션 기준) 전이네요. 그런데 너 왜 아직 고2밖에 안 된 거니? 더 무서운 사실은 01년에 고전부 1권인 빙과가 나온 뒤 약 9년 8개월이 흐르고 나온 시리즈 5권 ‘두 사람의 거리 추정’에서야 겨우 2학년이 되었다는 것이고 2학년이 되고 6년 후에야 시리즈 6권이 나왔다는 점이지요.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는 인터뷰에서 오레키가 졸업할 때까지 고전부를 쓸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래서야 오레키의 졸업이 빠를까 저의 사망이 빠를까 도무지 짐작이 가질 않습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인 소시민 시리즈도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그건 일단 4권에서 완결을 내겠다고 말한 바가 있어서 상황이 조금 더 낫지요. 소시민 3권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에서 1년이라는 시간을 통째로 사용하는 대범함을 보며 감탄했고 4권에서 확실히 완결이 나겠구나 싶었는데 고전부는 소시민에 비하면 끝이 보이질 않네요.


 ‘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는 6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상자 속의 결탁 - 아저씨인 제가 초등학생일 때만 해도 무려 15반까지 있었답니다. 요즘은 몇 반까지 있을까… 고등학생 때는 이과 9개 반, 문과 4개 반이었군요. 예체능은 4반(문과의 마지막 반)에 몰려 있었는데 걔들은 야자를 안 해서 굉장히 부러웠지요.

2. 거울에는 비치지 않아 - 마야카가 호타로를 왜 개스키 취급했었는지 이유가 나오는 단편. 왕따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습니다. 15년 뒤에는 아마 더 심해지겠지. 우리 귀여운 조카가 왕따를 당하면 어쩌지 벌써부터 겁이 납니다. 만약 가해자가 된다면… 그건 더 끔찍하네요.

3. 첩첩 산봉우리는 맑은가 - 애니메이션 18화의 내용입니다. 잘 표현하진 못하겠지만 굉장한 호타로(by 치탄다)가 등장하는 이야기.

4. 우리 전설의 책 - 또 다시 마야카의 턴. 그간 비중이 적던 것을 만회하려는 듯 6개 단편 중 무려 2개에서 화자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게다가 놀랍게도 사토시는 단 1편의 화자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고등학생들의 인간관계가 얼마나 질척한지 새삼 느끼게 되는 이야기. 저는 학교에선 교우관계가 꽤 건조했는데 성당에서는 좀 끈적한 편이었지요. 둘 다 장단점이 있더군요.

5. 긴 휴일 - 처음부터 게으름뱅이는 아니었던 호타로의 이야기. 이 이야기를 읽은 분들 중에는 자고 있던 트라우마가 깨어난 분이 꽤 계실 것 같습니다.

6. 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 - 아무리 부모가 꿈을 꾸라고 거창하게 말한다 해도 인생의 목표란 결국 상황에 맞춰 설정하는 거랍니다. 많은 부모들이 그걸 몰라요.


 여전히 재미있네요. 시리즈에 대한 애정이 충만해서인지는 몰라도 모든 단편들이 다 괜찮았어요. 지금의 저에게는 한 줌의 객관성도 없답니다.

  이번 단편집에서는 고전부 부원들 사이의 거리감이 전작만큼이나 잘 드러나서 좋았습니다. 전작은 호타로가 느끼는 다른 부원들과의 거리가 중점이었다면 이번에는 각자가 느끼는 서로 간의 거리 그리고 주위에서 보는 서로 간의 거리가 그려져서 재미있더군요. 어느새 커플투성이가 된 고전부 부실을 보고 있자면 왜인지 씁쓸한 기분도 들지만 기분 탓이겠지… 만약 미국 드라마였다면 호타로가 1권에선 치탄다랑 사귀고 2권에선 마야카랑 바람을 피고 3권에선 사토시랑 뒹굴었을 거란 상상을 잠시 했는데 이제 미드는 그만 봐야겠습니다. 미드는 이래서 안 돼.

  가장 인상 깊은 단편은 역시 우리 전설의 책입니다. 수많은 청춘소설들이 모든 경험을 긍정하려고 안간힘을 쓸 때 거침없이 쓸데없는 경험도 있다고 외치는 패기가 아름답습니다. “너에게는 남은 시간이 많으니까 모든 게 너의 양분이 될 거야.” 라는, 말하는 사람도 속 편하고 듣는 사람도 속 편한 주장을 밟아버리고 아직 고등학생인 너에게도 밟고 지나가야 할 게 있다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아, 물론 학업 이외의 모든 것을 다 밟아 죽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차고 넘치게 많지만요. 너무 슬프다.

  긴 휴일도 좋지요. 저도 비슷하게 부려먹기 좋은 아이였고 부려먹히고 있다는 사실까지는 깨달았는데 애석하게도 그걸 제 탓으로 돌렸지요. 내가 어리석어서 이걸 다 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지요. 지금도 매사의 결과를 어느새 저의 문제로 돌리는 경우가 잦은데 이런 발상 자체가 에고를 뒤튼다고 여기고 있음에도 쉽게 고쳐지지가 않네요. 역시 교정은 어릴 때 하는 게 최고입니다.

  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 역시 좋았어요. 치탄다는 권위 있는 집안의 자제라서 느끼는 부담이 있지만 사실 아무 것도 없는 집의 아이들 역시 궤를 같이 하는 부담이 있지요. 우리 집에는 아무 것도 없으니까 내가 그 부담을 늘려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 같은 것 말이지요. 저도 부산에 있는 국립대가 아니면 대학에 못 간다는 생각 하나로 입시에 임했었고… 뭐, 성적도 딱 그 수준이긴 했지만! 서울의 국립대는 꿈도 못 꿨지요. 어우, 공부 너무 어려워. 아무튼 부모가 아무리 자식을 위해 뭐든 다 해줄 수 있다고 노래를 불러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이 노려야 하고 누릴 수 있는 상한선을 대충 파악하고 있어요. 그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서 허우적대기도 하고… 사람을 기른다는 게 쉽지가 않지요. 자식이라고 해도 사람이라서 뭔 생각을 하는지 절대로 다 알 수가 없으니까요.


 감상문을 쓰고 있자니 좀 과하게 몰입해서 읽었다는 걸 깨닫게 되네요. 고2한테 감정이입하면 안 되는 나이인데! 이게 다 책을 늦게 내는 요네자와 호노부 때문이다! 01년이었다면 잔뜩 이입했어도 어색하지 않은 나이였는데. 그런 의미에서 부디 다음 편은 좀 빨리 나왔으면. 허나 애석하게도 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가 나온 지 벌써 1년하고도 4개월이 지났습니다. 지금 당장 나와도 사실 빠르지는 않아…




덧글

  • LionHeart 2018/04/18 14:22 # 답글

    '만약 미국 드라마였다면' 부분에서 빵터졌습니다. ;ㅁ;
    그리고 '지금 당장 나와도 사실 빠르지는 않아...'에도 공감을...뭐, 퀄리티만 높다면야 앞으로 몇년 정도는 더 기다려줄 수는 있습니다. 부디 늘어지다 못해 절필하지만 말기를 ㅠ.ㅠ
  • 정윤성 2018/04/18 23:32 #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지요... 제발 죽기 전에 완결만 내주길.
    사실 미국 드라마는 언제나 저의 상상을 뛰어넘는 경향이 있어서 더 심하게 나갈 지도 모릅니다. 그레이씨를 보면서 병원이 환자가 아니라 연애로 과부화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 toto 2018/06/15 01:30 # 삭제 답글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ㅎㅎ
    미드에서 ㅋㅋㅋㅋ 상상하다가 한 5분 동안 웃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이젠 고전부 시리즈는 기다리는 맛에 보게 됩니다~
    제발 다음권은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아니! 나오기만 해주세요!!
    몇년이든 기다리겠습니다 요네자와 작가님!!!!
  • 정윤성 2018/06/23 05:34 #

    답글이 한참 늦어서 죄송합니다. 컴퓨터가 고장난 뒤부터 이글루에 잘 안 들어와서리... 허허허.
    어떤 등장인물끼리라도 관계의 난장판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미드의 대단한 점이지요. 좀 너무 대단한 것 같아서 부담스럽기도 합니다만. 흠흠.
    고전부 시리즈는 정말 기다림의 미학을 제대로 그리는 중이지요. 말씀대로 나오기만 해도 고마워요. 부디 자주 고맙고 싶어요!
  • 아침 2018/07/05 03:23 # 답글

    .............미드가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군요....--)

    그래도 최근에 단편인지 글을 썼다더군요. 조금씩이라도 글이 나와서 다행입니다.. 퇴부했던 오히나타 양도 다시 고전부에 들어와있다는 내용이라니 더더욱 궁금! 빨리 글의 양이 모여야 책이 나올텐데...
  • 정윤성 2018/07/06 00:42 #

    ...미드는 이래서 안 되요. 안 되는데 또 그런 맛 때문에 보고 싶기도 하고요. 변덕스런 시청자의 마음.
    오랜만이예요! 오랜만인 이유는 제가 블로그를 방치했기 때문이겠지만요...;;; 흠흠.
    오히나타 양이 다시 입부를 하다니 그것 참 궁금하네요. 얼른 읽고 싶다.. 빨리 단편들이 모였으면 좋겠습니다. 장편 하나가 턱 하니 나와도 좋고요. 뭐든 좋으니까 어서 좀.
  • 괴인 怪人 2018/09/02 16:11 # 답글

    며칠 전에 읽었습니다만,
    요네자와 호노부는 교토 애니메이션 빙과작업팀에 고급과자도 보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 정윤성 2018/09/02 21:15 #

    빙과 애니메이션이 정말 잘 나왔지요. 과자가 아니라 와규 세트를 돌려도 전혀 과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요네자와 호노부도 그렇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케이온 작가가 교토에 뭐라도 제대로 쏴야하지 않나 싶습니... 저였다면 회사용 버스라도 한 대 사서 보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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