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은 일요일 -일본


 ‘거울 속은 일요일’은 작가 ‘슈노 마사유키’의 ‘명탐정 이스루기 기사쿠’ 시리즈 세 번째 작품입니다. 슈노 마사유키는 데뷔작인 ‘가위남’으로 국내에도 알려져 있지요. 작가는 64년생으로 본명은 ‘田波正’라고 하네요. 어떻게 읽는 거지? 타나미 쇼? 모르겠다. 일본 이름을 읽어내려는 시도는 진작 포기했습니다. 후쿠이현 출신으로 나고야 대학 이학부를 중퇴했으며 99년에 가위남으로 메피스토상을 받으며 데뷔합니다. 이후 이스루기 기사쿠 시리즈 다섯 편과 ‘아이들의 왕’ 등을 집필하며 왕성한… 듬성한 활동을 벌였습니다만 13년에 4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는 발표가 납니다. 철저한 복면작가였으며 본명도 사후에 알려졌다고 하네요. 사후 ‘슈노 마사유키 미발표 단편집’과 ‘슈노 마사유키 독서 일기 2000-2009’가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죽는 건 대부분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특히 작가의 죽음은 작품의 중단을 의미하니 더욱 기분이 싱숭생숭하지요. 부디 나는 요네자와 호노부랑 아야츠지 유키토보다 빨리 죽어야 할 텐데… 그런데 유키토씨가 저보다 나이가 좀 많아서 걱정이네요. 바라건데 장수하시길. 출판사 ‘스핑크스’에서 거울 속은 일요일과 함께 가위남을 재출간했던데 부디 고인의 작품 전부를 국내에 소개해주길 바랍니다. 이하는 이스루기 기사쿠 시리즈의 목록입니다.


미노타우르스(美濃牛, 2000년 4월) : 제 1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후보작에 올랐습니다. 제목은 미노규, 즉 미노소라고 적은 뒤 미노타우르스라고 읽고 있네요. 하긴, 결국 소니까.

검은 부처(黒い仏, 2001년 1월) : 책 소개 페이지에 “찬반양론, 전대미문, 초절기교의 문제작”이라는 개요를 달고 있는 작품입니다. 어디가 개요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신기한 작품인가보다, 라는 감은 잡히네요.

거울 속은 일요일(2001년 12월), 밀 / 실(樒 / 榁, 2002년 6월) : 이번에 국내에서 출간된 작품입니다. 밀/실은 일반적인 의미의 밀실에 쓰이는 한자가 아니라 나무 목 변을 달고 있으며 발음도 しきみ / むろ(시키미/무로)라고 읽습니다. 한자 짜증나.

키마이라의 새로운 성(キマイラの新しい城, 2004년 8월) : 이스루기 기사쿠 시리즈 마지막 편입니다. 이 목록이 더 길어질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쓸쓸하네요.


 고둥처럼 생긴 ‘범패장’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때마침 그 자리에 있던 명탐정 ‘미즈키 마사오미’가 순식간에 사건을 해결하지요. 미즈키 마사오미가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범인을 향해 “죄를 지은 자는 죗값을 치러야만 합니다.”라고 선언하며 멋지게 사건을 마무리하지만 14년 뒤 그 추리를 의심하는 자(=삼류 출판사 편집자)가 나타납니다. 그가 찾아간 이는 현대의 명탐정인 이스루기 기사쿠. 이스루기는 미즈키 마사오미의 광팬이라 범패장 사건을 소설로 읽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과거 범패장 사건의 소설을 읽었을 때 이스루기가 느꼈던 이질감… 그것은 미즈키 마사오미의 추리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었습니다. 이스루기는 의뢰를 받아들이지요. 과거의 명탐정이 해결한 사건을 현대의 명탐정이 다시 도전하는 순간입니다.


 거울 속은 일요일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에서 이스루기 기사쿠가 맞아 죽습니다… 2장은 시간을 약간 앞으로 돌려 수사하는 이스루기와 14년 전 범패장 사건을 교차하며 소개하고 3장에서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지요. 1장의 화자는 치매환자라서 서술이 무척 모호하고 난해합니다. 싫어, 2000년대 일본 소설 특유의 현학적인 서술인가봐… 하며 겁을 먹었지만 다행히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2000년대 일본소설 중엔 참 이상한 게 많았지요. 신세기 초의 광기였던 걸까요? 1장의 마지막에서 화자인 치매환자는 이스루기 기사쿠의 뒤통수를 후려갈겨 머리를 깨부숩니다. 와우, 전개가 화끈하기도 하지! 70페이지에 가까운 치매환자의 무기력한 문장이 피와 폭력이라는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로 마무리되고 이어지는 2장에서 몇 주 전의 이스루기가 살아서 등장하는 구조가 참 매력적입니다. 명료하고 유머러스한 화자 이스루기의 서술과 클래식한 추리소설의 흐름을 보이는 14년 전 범패장 사건의 교차는 안정감과 풍부함을 주지요. 2장은 범패장 사건이 마무리되고 이스루기가 1장에서 죽었던 곳으로 향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흥미진진! 범패장 사건은 극중극의 위치에 있지만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꽤 완성도 있는 미스터리라 만족스럽습니다.

 이건 약간 스포가 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살짝 말씀드리자면 금색 코끼리(éléphant d'or)의 발음은 “일리팡 도-ㄹ" 정도이며 죽은 아이(enfant mort)의 발음은 ”앙팡 모-ㄹ" 정도입니다. 네이버 사전 최고. 발음을 들을 수 있는 사전이라니 정말 대단한 시대에 살고 있어요.

 3장에서는 드디어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고 행복한 결말로 이야기가 끝납니다. 이스루기 기사쿠 시리즈의 이스루기가 1장에서 죽었지만… 괜찮아! 미즈키 마사오미가 멋지니까! 작가는 14년 차이라는 시간을 등장인물의 등장과 미등장이라는 방식으로 트릭에 이용합니다. 14년 전 사건에 등장했지만 현대에서는 등장하지 않거나 혹은 성격이 변한 인물들을 층층이 겹쳐 독자들을 속이려 하지요. 단순하면서도 꽤 재미있습니다. 트릭을 접한 이스루기는 공정하다고 말하고 미즈키는 공정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독자인 제 입장에서는 이만하면 공정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하네요. …3장은 해답편이라 더 이상 쓸 수 있는 말이 없네. 어쩌지.


 중편인 밀 / 실은 거울 속은 일요일에 같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문고본에도 둘을 같이 실었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이제 남은 이스루기 시리즈는 겨우 세 편 뿐. 허전하다… 밀 / 실은 밀편과 실편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밀편에서는 미즈키 마사오미가, 실편에선 이스루기 기사쿠가 등장하지요. 중편이라 짧은데다 그마저도 덴구니 스토쿠인 천황이니 하는 걸 설명하느라 분량을 엄청나게 잡아먹어서 별로 읽을 게 없습니다. 연작단편 두 개를 읽는 느낌이며 추리소설로의 완성도보단 등장인물들의 매력을 맛보는 정도의 재미가 있네요. 거울 속은 일요일에서 만난 미즈키와 이스루기를 다시 볼 수 있어 반갑고 반가우니 됐지, 싶은 소설입니다.


 거울 속은 일요일의 참고 문헌을 보면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가 죽 나열되어 있습니다. 작중 미즈키 마사오미가 해결한 사건 목록(홍련장 사건, 우쓰보 저택 사건, 수우관 사건, 자광루 사건, 아수라사 사건, 범패장 사건)이 관 시리즈의 패러디인 것 같은데 정작 각 사건 중 관 시리즈에 대응하는 부분은 없습니다. 작중 언급된 각 사건의 내용을 보면 홍련장 사건은 붉은색 산장에서 화가가 죽었다, 우쓰보 저택 사건은 중세 성곽 같은 저택에서 쌍둥이 당주와 사는 우쓰보 일가가 몰살당했다, 수우관은 난에 미친 집주인이 온실에 지하로 통하는 입구를 만들었고 한글(“온”이라는 글자) 다잉메시지를 통해 그걸 찾아냈다, 자광루 사건은 미즈키 마사오미 시리즈의 대걸작이며 교환살인을 동반자살로 꾸몄고 전화로 피해자에게 독을 마시게 했으며 기가 막힌 방식의 사체이동이 있었다, 아수라사 사건은 산속 사원에서 다섯 사람이 잇달아 살해당했는데 네 번째까진 사실 살인이 아니었다, 라고 하네요. …관 시리즈랑 아무런 연관이 없잖아? 그런데 왜 참고 문헌에 관 시리즈를 적어놓은 거야? 사실 이건 작가의 특징 중 하나로 일본의 한 평론가는 슈노 마사유키의 작품 중 하나의 참고 및 인용 문헌을 전부 읽어봤는데 정작 작중 등장한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작가가 생각하기에 참고한 것 같고 인용한 것 같다 싶으면 그냥 다 적었다고 하네요. 이는 대학생이 갖춰야 할 미덕이지요. 안 적는 것보단 다 적는 게 나아! 허나 대학원가서도 이랬다가 욕을 엄청 먹었던 기억이… 으으으.


 거울 속은 일요일에는 제가 일본 추리소설에 바라던 모든 것이 담겨 있었습니다. 지적이고 풍부한 이야기, 유머러스하고 허를 찌르는 전개, 멋지고 정이 가는 등장인물들 그리고 예상 밖의 반전까지. 제 2회 본격미스터리대상 2위에 오를만한 가치가 있는 소설이었어요. 1위는 뭐길래 이렇게 멋진 소설을 이겼지 싶어 찾아봤는데 ‘야마다 마사키’의 ‘미스터리 오페라’… 안 읽은 거라 뭐라 할 말이 없네요. 참고로 3위는 ‘오노 후유미’의 ‘흑사의 섬’입니다. 이것도 재밌었지. 공동 4위는 ‘아시베 다쿠’의 ‘그랑기뇰의 성’과 ‘사이토 하지메’의 ‘단 하나의’. 아무튼 오랜만에 이래서 일본 추리소설을 읽는 거라는 느낌을 받아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고 작가가 이미 타계했다는 사실에 급격히 기분이 가라앉았습니다. 그저 작가의 다른 소설이 읽고 싶을 뿐이에요. 스핑크스 출판사 힘내라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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