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이즌 리얼 책 이외


 영화는 목성의 대적점과 같은 거대한 소용돌이를 화면 가득 채우며 시작합니다. 이윽고 소용돌이는 휘저은 커피로 치환되어 화면은 평화로운 카페의 정경으로 바뀌지요. 잠시 후, 샷건을 든 남자가 나타나 카페 안의 사람들을 모두 쏴버립니다. 우연히 시체의 모습을 본 어린 ‘루크’는 정신적 충격 탓인지 상상의 친구 ‘다니엘’과 만납니다. 어른스럽고 매사 긍정적인 다니엘은 루크의 좋은 친구가 되지만 다니엘의 말을 따른 루크가 엄마를 죽일 뻔하자 엄마는 루크에게 다니엘을 인형의 집에 가두도록 합니다. 대학생이 된 루크는 삶이 버겁고 지쳐 옛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잠갔던 인형의 집을 열고 다니엘은 언제나 옆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레 등장하지요. 다니엘은 여전히 어른스럽고 긍정적이었습니다. 루크의 삶은 다니엘로 인해 풍성하고 즐겁게 변하지만 문제는 다니엘이 어른스럽고 긍정적이고 여전히 잔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니엘 이즌 리얼’은 제목부터 뭔가 묘합니다. 요즘은 Daniel을 대니얼이라고 쓰는 경우가 잦은데 예스럽게 다니엘을 고수하네요. 그러면서도 Isn't는 이즌트가 아닌 이즌이라고 쓰고 있어요. 고풍스러운 건지 아닌지 애매합니다. 게다가 왜 문장형 제목을 굳이 번역하지 않았는지도 의문입니다. ‘더 맨 후 워즌 데어’보다는 풀풀 풍기는 번역체임에도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가 덜 이상한 것처럼 그냥 번역을 하는 쪽이 더 괜찮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번역하기가 애매했을까요? 한 번 해봅시다. 다니엘은 진짜가 아니야… 흠, 매우 이상하군요. 다니엘은 존재하지 않아, 존재하지 않는 다니엘, 다니엘은 없어, 다니엘은 없다, 다니엘은 없었다, 실체가 없는 다니엘… 다 유치하네. 그럼 좀 더 영화의 내용을 담아서 해봅시다. 상상 친구 다니엘, 상상 속 친구 다니엘, 환상의 친구 다니엘, 존재하지 않는 친구 다니엘, 이매지너리 프랜드 다니엘… 친구는 유치하니 빼버리고. 상상 속 다니엘, 환상의 다니엘, 내 머리 속의 다니엘, 이매지너리 다니엘… 내 머리 속의 다니엘은 좀 마음에 드는군요. 하지만 너무 패러디한 제목에다 내용도 전혀 다른 영화니까 패스. ‘데미안’처럼 그냥 다니엘은 어떨까요? 음, 아닌 것 같다. 좀 더 머리를 써야해! 다니엘 이즌 리얼은 아니지만 원제의 느낌은 살리고 한국 사람에게 낯설지 않은 영단어와 다니엘의 조합이 뭐가 있을까? 리얼, 리얼, 리얼… 언리얼? 언리얼! 비현실적이라는 의미니까 이즌 리얼과는 뜻이 좀 다르긴 하지만 아예 뜻이 안 통하는 것도 아니지요. 그러므로 제가 만든 제목은 언리얼 다니엘입니다. 좀 이상하지만 다니엘 이즌 리얼보단 괜찮은 것 같아요. 만족스럽다.



 이 영화는 캐스팅이 재미있습니다. 주인공 루크 역의 ‘마일스 로빈스’는 대배우 '팀 로빈스'와 '수잔 서랜든'의 아들이고 다니엘 역의 ‘패트릭 슈왈제네거’는 터미네이터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아들입니다. 배우 2세들의 협연인 셈이지요. 그나저나 배우 이름은 ‘다음영화’의 표기를 따온 건데 슈왈제네거는 또 뭐지? 슈왈츠제네거에서 슈워제네거로 바뀐 것까진 아는데 언제 또 슈왈제네거가 된 거야? 심지어 미국 방송에서 들을 땐 슈워츠네거로 들려요. 거참. 아무튼 삶에 지친 찐따 대학생과 사악한 상상 친구라는 역할이니 연기력이 꽤 필요한데 둘 다 나쁘지 않게 잘 했어요. 특히 마일스 로빈스는 장래가 기대되는 연기력을 펼쳤습니다. 이 역할로 2019 시체스 국제영화제 오피셜 판타스틱 남우주연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상을 받을만한 연기력이었습니다. 다만 작중 다니엘에게 몸을 빼앗긴 뒤 빨간 양복을 입고 사악하게 변한 모습에서 스파이더맨3의 베놈 파커가 떠올랐어요. 앳되고 순한 얼굴로 나쁜 짓을 하겠다며 샤앗샤앗! 거리는 게 너무 안 어울려서 웃겼습니다. 괜찮아요, 헐리우드 배우니까 금방 다니엘 래드클리프처럼 폭삭 늙을 겁니… 얘도 다니엘이네.



 영화 내용은 사실 평범한 포제션 or 바디스내치 류의 호러입니다. 상상 친구가 몸을 빼앗으려고 든다는 내용 자체는 별다를 게 없는데 비주얼이 굉장히 직설적이라는 점이 특이합니다. 몸을 빼앗으려는 사악한 존재는 은근함이 미덕이었지요. 본체가 잠을 자거나 정신이 팔렸을 때 조금씩 몸의 주도권을 빼앗다가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이미 거의 다 삼켜졌다는 걸 깨닫는 게 정석인데 다니엘 이즌 리얼은 그 정석을 잘 따르는 듯 하다가 노골적인 묘사로 비틀어버립니다. 기껏해야 루크가 자고 있을 때 대신 채팅을 해서 여자를 꼬시는 정도로 그치던 다니엘은 갑자기 야, 몸을 내놔! 하더니 점토처럼 얼굴을 뭉개고 뭉개진 얼굴에서 촉수들이 삐져나와 루크에게 달라붙지요. 주도권을 쥐기 위한 싸움이 마치 얼굴이 붙은 샴쌍둥이 마냥 서로 달라붙어 비비는 것처럼 묘사가 되니 무척 강렬해요. 다니엘에게 몸을 빼앗긴 루크가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덤벼들자 손목이 쩍 갈라지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도 인상적이지요. 나중에는 더한 묘사도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몸을 완전히 빼앗긴 루크가 갇힌 다니엘 속의 미궁이었습니다. 음울한 빛과 그림자로 가득찬 회랑에서 괴수가 쫓아오는 미궁은 지옥을 팝하게 묘사한 것 같아 재미있었습니다. 바디스내치나 스내치된 뒤의 장면 등이 굉장히 선명하고 시각적으로 그려졌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참신하고 멋진 시도를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팝해서 약간 유치한 감도 있습니다만…



 다만 시각적으로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어도 내용이 결국 뻔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야기적으로도 상상 친구에게 몸을 빼앗겼다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긴 했지만, 아니 반 걸음 정도 더 나아가긴 했지만 그게 딱히 대단하다고 느껴지진 않습니다. 클리셰를 조금씩 비틀긴 했지만 담은 이야기까지 새로워질 정도로 비틀지는 못했어요.


 시각적 자극이 강해서 깜짝깜짝 놀라는 재미가 있는 영화입니다. 음악은 약간 과한 감이 있어서 완전히 스며들진 않지만 분위기와는 어울려요. 이야기가 너무 뻔해서 전개가 예상이 된다는 점은 상당히 아쉽습니다. 시각적 참신함을 이야기로 이어가지 못했다는 점에서 완성도가 높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보는 재미만큼은 충실합니다. 마치 히에로니무스 보스가 팝아트로 그린 지옥(실제로 보스의 그림 비슷한 게 등장합니다.) 같은 비주얼이 인상적인 영화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정도의 추천을 할 수 있겠습니다.



 여담이지만 다음영화의 소개에는 루크와 다니엘의 이름이 잘못 적혀있습니다. 마일스 로빈스가 루크, 패트릭 슈왈제네거가 다니엘 역할이지요.




덧글

  • . 2020/04/15 12:12 # 삭제 답글

    다녈은 진짜가 아녈
    죄송...
  • 정윤성 2020/04/15 20:19 #

    ...(웃어서 빈정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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