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 해, 행복한(…) 탐정 그 다섯 번째 이야기 -일본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는 작가 미야베 미유키행복한 탐정 시리즈(행복?)’ 다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행복한 이야기가 어지간히도 나오지 않는 이 시리즈가 벌써 이만큼이나 진행되다니 세월이 참으로 빠르다는 생각이 드네요. 여담입니다만 최근 아이돌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스타라이트 스테이지(길어!) 유저의 평균 연령이 36(일본 나이니까 한국 나이로 계산하면 더 많겠지요)라는 통계를 보고 다함께 열심히 늙어가고 있구나, 싶어 감탄을 했었답니다. 저 역시 그 중의 한 명인지라 기분이 싱숭생숭아무튼, 거대 기업 회장의 딸과 결혼하고 장인어른이 시킨 일 때문에 어쭙잖게 탐정 노릇을 하다 아예 그게 직업이 되어버린 스기무라 사부로의 삶을 차근차근 따라가는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참으로 즐겁습니다. 곧 스기무라보다 더 늙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덜 즐거워지긴 합니다만.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는 세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절대영도 - 어느 날 갑자기 사위가 찾아와 아내가 장모님 때문에 자살을 하려고 했다며 길길이 날뛰더니 다시는 서로 못 만나게 하겠다며 아내를 병원에 숨깁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지요. 남편한테 상의해서 장인이 사위를 혼내주는 것도 좋겠습니다만 하필 남편은 도쿄 전력의 임원이라 동일본 대지진의 수습에 진땀을 흘리고 있어 다른 걱정거리를 더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용하다는 동네 탐정에게 찾아왔다고 하니 듣는 스기무라도 황당합니다. 황당합니다만 따님의 용태를 확인하여 걱정을 덜어드리는 선까지는 의뢰를 맡겠다고 말하는 스기무라.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어 시작한 일이지만 사건은 조사할수록 덩치가 커지고 구질구질하고 뻔하게 변해갑니다.

 화촉 - 오토바이 가게의 안주인이 스기무라를 찾아옵니다. 자기 동생의 딸이 결혼을 하는데 세 사람 분의 초대장을 받았으니 제 딸과 스기무라네 집주인과 스기무라 세 명이 결혼식에 다녀오길 바란다는 부탁을 하지요. 조카 결혼식에 사촌과 생판남과 생판남의 조합은 이상합니다. 이유인 즉슨, 옛날에 결혼하기로 한 남자를 동생에게 빼앗긴 적이 있어 그 뒤론 남처럼 지냈는데 이놈의 딸이 어찌저찌 사촌과 친해져서 결혼식에 가겠다고 바득바득 우긴다는 것입니다. 나는 가기 싫지만 딸만 덜렁 보낼 수 없으니 친한 노부인께 맡기는 것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어린 딸과 노부인만 보내기도 그러니 탐정도 하나 끼워 넣는 게 밸런스가 좋겠다 여겼답니다. 틀린 말은 아니니 따라가기로 한 스기무라. 허나 결혼식장에서 결혼보다 더 재밌는 일이 벌어질 줄은 아직 몰랐지요.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 집주인네 큰며느리 분께 이상한 모녀가 와서 의뢰를 할 지도 모르니 조심하라는 말을 들은 스기무라. 정말로 이상한 모녀가 와서 이상한 의뢰를 합니다. 입양 비슷한 걸 보낸 자기 아들이 죽을 뻔한 사건이 일어났었는데 이를 조사해서 위자료를 받아달라는 것이었지요. 딸은 옆에서 기가 죽은 채 앉아 있고요. 입양 비슷한 것? 여성의 설명은 지리멸렬하고 논리가 부족했지만 길게 들으니 얼추 이해가 갔습니다. 읽던 저도 얼추 이해가 갔는데 지리멸렬하고 논리가 부족해서 어떻게 설명할 자신이 없으니 줄거리 요약은 여기에서 멈추기로 하겠습니다.

 

 후기에도 적혀 있는 말입니다만 스기무라 사부로가 탐정이 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누군가부터 시작해서 이름 없는 독’,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희망장을 거쳐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까지 와서야 비로소 스기무라는 자신을 프로 탐정이라고 소개하지요. 게다가 잠복도 철저히 하고 주변 조사에 인터뷰까지 제법 제대로 된 탐정 활동을 합니다. 회장님의 장기말이었을 때는 어딘지 모르게 늘 주눅이 들어있다는 인상이었는데 자신감을 가지고 스스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다 컸구나싶네요. 작가는 인터뷰에서 희망장과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가 단편집인 것에 대해 스기무라가 초보 탐정이기 때문에 벌써부터 장편 분량의 사건을 해결할 능력은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는데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하긴, 탐정이 되자마자 400페이지 짜리 사건을 해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렇다고 등장인물의 해결능력이 장편과 단편을 가르는 기준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과연 미야베 미유키 여사님그래도 이번 작품을 통해 스기무라가 잘 큰 모습을 보여줬으니 다음은 장편 하나를 떠맡아도 될 것 같아요.

 작가는 스기무라의 모티브를 마이클 르윈의 탐정 앨버트 샘슨에서 얻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앨버트 샘슨 시리즈는 국내에도 두 권(인디애나 블루스, 침묵의 세일즈맨) 출간된 바가 있으니 관심이 가는 분들께선 한번 읽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아무튼 이번 단편집에 수록된 절대영도 또한 앨버트 샘슨 시리즈의 침묵의 세일즈맨을 오마주한 것이라 하네요. 침묵의 세일즈맨은 사고를 당한 동생이 입원하고 7개월이 지났는데 회사가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는 것이 걱정된 누나가 샘슨을 찾아오는 이야기인데 절대영도는 아내가 자살 시도를 했다며 몇 개월째 장모와 만나지 못하게 한다는 이야기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다만 초반의 전개 이후로는 이야기의 궤가 꽤 어긋나 여성을 업신여기는 체육계 남자들이 전면에 부상합니다만. 저는 누나한테 하도 맞고 자라서 그런가 여성을 깔본다거나 하는 생각을 딱히 가진 적이 없고 애초에 성별에 의해 더 우월하거나 더 못한 부분이 생길 수 있다는 관점에도 거부감을 가진 터라 절대영도를 읽는 내내 이런 놈들이 있단 말이야? 싶긴 했습니다만 소위 체육계열의 마초들에 대한 편견은 좀 가지고 있어서 이런 놈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일단 체육 자체가 싫어서제 주위에는 여자가 이래서 저래서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없기도 해서 성차별에 대한 케이스를 보면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사실 그렇지는 않겠지요. 며칠 전 일본의 의료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유튜브를 보던 중(왜 이런 게 추천영상에 뜬 거야? 싶었지만 눌러서 봤으니 영상을 추천해준 구글이 저보다 저를 더 잘 아는 셈이 되었습니다) 아베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영상이 마무리되었는데 마무리 멘트가 정치인과 여자 말을 믿는 흑우는 없제?” 라서 불쾌했어요. 곧장 관심없음을 눌렀는데 다음 날 보니 또 추천영상에 그 유튜브가 있어서 구글한테 모욕을 당한 기분도 들었지요. 구글 녀석 나를 가지고 놀려들다니. , 그 유튜버도 딱히 자신이 성차별을 하는 사람이라 여기진 않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이 나오는 걸보면 차별(비단 성차별뿐만 아니라)이란 게 얼마나 쉽게 스며드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앞서 제가 나는 그런 사람 아니다 운운했지만 저도 모르는 차별적인 언동이나 행위를 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게 무서운 거지요. 그러므로 차별이 스며드는 것처럼 평등에 대한 관념이나 생각도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식의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참 말처럼 쉬운 것도 아니니. 아무튼 절대영도는 침묵의 세일즈맨과 비슷하면서도 참신한 서두로 시작합니다만 이후의 전개는 불쾌하고 전형적이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걸 장점으로 받아들일지 단점으로 받아들일지는 독자 분들에 따라 갈릴 것 같네요. 스기무라가 제법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은 무척 재미있습니다만.

 화촉은 좀 더 시대착오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환갑이 넘은 남자가 이십대 초중반의 여성과 결혼을 대가로 여자 집안의 금전적인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음? 물론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매매혼이라는 게 없었던 것도 아니고 없어진 것도 아니니까요. 게다가 작중 여성의 부모는 남자 나이가 많아 곧 죽을테니 버티면 네가 재산을 다 가지는 거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관점으로 볼 수도 있지요. 그래도 좀불쾌한 소재네요. 화촉은 부모의 인과를 자식이 끊는다는 내용이 인상적입니다. 저주처럼 달라붙은 인과의 망령을 반복하는 것으로 제거한다는 발상은 클래식한 부분이지요. 다만 그러한 발상 외에는 딱히 눈여겨 볼 부분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 스기무라가 마치 홈스처럼 추리하는 장면도 볼 만 했네요. 좀 오그라드는 맛도 있고요.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는 주변에 있으면 골치 아프지만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을 처치 곤란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런 인물을 가감없이 제대로 표현했다는 것만으로도 작가의 실력을 알 수 있지요. 미야베 미유키 여사님께 실력 운운한다는 것부터가 웃긴 이야기입니다만. 처치 곤란한 등장인물의 존재감이 너무 커서 이야기 전체가 그 인물을 중심으로 돌아가다가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진다는 게 이 단편의 특징입니다. 마치 단점처럼 적어놨지만 단점은 아니에요. 어린 인물이 휘두르는 인생에 말려든 사람들이 핵심이기에 말려들었다가 내팽개쳐진 뒤의 피로감이 독자들에게도 전달된다는 점에서 대단히 잘 쓴 이야기입니다. 앞서 화촉에서 인과를 끊는 이야기가 나왔다면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는 인과에 먹혀버린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역시나 꽤 불쾌한 내용이지만 곱씹어볼 만합니다.

 

 행복한 탐정 시리즈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단편 세 개에 전부 불쾌하다는 표현을 썼네요. 대체 어디에 행복이 있는 거지? 파랑새는 집에 있을 지도 몰라, 스기무라씨. 그냥 탐정 하지 말고 집에 다시 가면 안 돼? 그래도 이왕 행복하겠다며 집을 나온 스기무라니까 밖에서도 행복을 좀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얼른 다음 작품을 읽어보고 싶네요.




덧글

  • watermoon 2020/04/30 15:05 # 답글

    올해는 미미여사님 현대물 에도물 다 나와서 코로나로 집콕하는 시기에 그나마 위로가 되더라구요 그나저나 저는 절대영도를 읽으면서 어어어 설마 설마 하다가 진짜 뒷맛이 안좋았어요.
    미미여사님 현대물 봐도 그렇고 요즘 일본 현대 추리물보면 아직도 수직관계 서열관계 끼리끼리 조직문화에 머물러있는 듯 해요. 저희도 예전렌 그랬지만 그래도 이정도는 아닌것 같거든요.
  • 정윤성 2020/04/30 19:59 #

    집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 게 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날이 올 줄은 저도 몰랐어요. 게다가 맨날 집콕하며 사는 줄 알았었는데 정작 집에만 있어야 한다고 의식을 하며 지내니 의외로 힘드네요. 스스로 집돌이라고 칭했으면서 꽤 돌아다녔었구나, 싶기도 하고요. 우리나라가 수직관계나 서열 같은 부분에 있어선 정말 많이 좋아진 편이라 생각해요. 허나 절대영도에서도 대학 선후배 출신에 체육계열인 인간들이 모여서 뒤틀린 것처럼, 좋아졌다 싶지만 또 잘 안 보이는 구석에선 구질구질하게 서열을 내세우며 거들먹거리는 관계가 여전히 있을 거란 생각도 들어요. 저는 군대에 있을 때도 예전 직장에 있을 때도 힘들지만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같은 생각을 했는데 좋은 선임이나 상사라고 생각했던 그 사람들도 제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겐 거들먹거리거나 갑질을 하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거든요. 그때는 안 믿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은 기분도 들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한텐 잘 해줬는데 그런 기분이 드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참 복잡합니다.
  • 방울토마토 2020/04/30 15:31 # 답글

    한때는 미야베 미유키 책이면 다 읽었는데 에도시대 배경으로 한건 이제 못 읽겠고,
    그래도 이쪽은 괜찮다 싶었는데 탐정이 되고나서는 말씀하신대로 불쾌해서 그런지 몰라도 읽는 맛이 영..
  • 정윤성 2020/04/30 19:59 #

    저도 에도시대 배경의 작품은 진도가 좀 더디네요. 코로나 이후로는 좀 읽긴 했는데. 제대로 탐정이 되기 전인 이름 없는 독 같은 것도 꽤 불쾌한 내용이었는데 그래도 작중 스기무라와 사건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었다면 지금은 거리감이 많이 줄어든 상태지요. 그래서 더욱 불쾌함이 선명해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마 작가가 의도한 바겠습니다만… 영 무서워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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